북한 핵실험의 후 폭풍이 강하게 몰아치고 있다. 문제는 모두가 설마 하거나 우려하던 일이 막상 터지고 나니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군사제재를 가하자니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이 지금 그럴 여력이 없다.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져버린 미국 행정부가 또 다른 곳에서 군사작전을 편다는 것은 군사적으로도 힘들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북의 핵실험후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의 제 일성이 북한에 대한 군사작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발언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기껏해야 더욱 강한 경제제재를 가하자고 하는데 이미 고립될 대로 고립된 북한이 이를 겁낼 리 만무하다. 결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초강경 정책은 용두사미가 되어 버렸다.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시작한 북한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 있어야하는 미국의 조야에서는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온 책임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다.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목되는 공화당의 존 맥케인 상원의원은 모든 것이 북한에 지속적으로 당근만 주고 채찍을 가하지 못한 클린턴 행정부의 과오에서 비롯된 일이라며 민주당 책임론을 제기하였다. 그러자 역시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자신의 남편을 옹호하면서 모든 것이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반박하였다.
한국의 국내사정 역시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 것이 맹목적인 북한 퍼주기를 수반한 햇볕 정책 내지는 포용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여당과 진보진영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강경주의가 빚어낸 결과라고 반론을 펴고 있다.
특히 햇볕 정책을 고안한 김대중 전대통령은 미국의 대북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리고 여당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비롯한 북한과의 경제협력및 교류관계가 현 상태로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책임론 공방은 무의미하다.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마당에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더 큰 문제다. 우선 미국의 입장에서는 당장 군사적인 대응을 할 수는 없다고 하나 국제 관계상, 그리고 체면상 북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 핵확산금지와 테러방지를 새로운 국제전략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 ‘악의 축의 하나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것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은 당분한 국제여론을 대북한 강경론으로 끌고 가려고 노력할 것이 자명하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강경론에 동조하면서도 북한과의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려는 줄타기를 할 것이 분명하다. 결국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좋게 말해서 균형자 역할을, 나쁘게 말해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태가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미국의 입장에서 볼때 한국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핵보유사실에 대해서 일본 같이 위협을 느끼거나 강경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만큼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미군의 주둔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을뿐더러 미국의 전시 작전통제권을 수치로 간주하고 회수를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핵을 억지하는데 있어서 주한미군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북핵의 인질이 되어 버릴 수 있다.
결국 일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한국과 미국은 합의 이혼의 절차를 이미 밟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북한의 도발이 한미동맹의 결속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북한의 강력한 도발은 오히려 한미동맹의 부실과 허상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 부상하는 중국과 우경화하는 일본, 오일머니로 무장한 러시아, 그리고 핵 무장한 북한 사이에서 미국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미간의 합의 이혼의 사유가 과연 합당한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냉철하게 짚어 보면서 더 늦기 전에 동맹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함재봉> USC 한국학 연구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