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의 무한한 잠재력
대신 해주지 말고 키워야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느 부락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행렬의 맨 앞에 자동차가 가고 있고 부락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차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차 뒤에 여러 부락 사람들이 차를 밀면서 가고 있어서 이상히 여기고 현지인에게 물어 보았더니 차를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중요한 행사 때마다 추장을 차에 태우고 부락 사람들이 뒤에서 이렇게 차를 밀고 다닌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만들어낸 얘기이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지만 우리 자녀들을 키우면서, 특히 자녀들에게 관심이 많고 열성이 많은 부모들 중에 자녀들에게 이와 비슷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우리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력과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아이들이 아직 어릴 때 한국에 한달만 보내 보라. 한국말을 사투리까지 섞어 가며 재미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그렇게도 배우기가 힘든 언어인데도 어렸을 적에는 문법책 하나 없이 쉽게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키우며 우를 범하는 것은 아이들의 이런 놀라운 능력을 백분 활용하지 못하고 부모가 꼭 아이들이 해야 할 일마저도 맡아서 해주다가 아이들도 손해를 보고 부모는 부모들대로 허리가 빠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다섯 아이들을 키웠는데 첫째 아이는 어려웠을 때이라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데리고 다니면서 다른 손주들과 같이 학원이다 도장이다 개인지도다 하며 많은 정성을 쏟아 부어 주셨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전혀 열매를 맺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감이나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오히려 나머지 네 아이는 우리가 신학교를 다니며 작은 교회의 전도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키우느라 도장은 물론 학원도 못가고 개인지도는 물론 받아보지도 못했는데 훨씬 하면 된다하는 의욕에 차 있고 성취감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의도적이라기보다도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방목’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결과는 상상 밖으로 좋았었던 것이다.
둘째인 큰 딸은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했고 리더십이 있어서 독서클럽을 창설했다. 또 학교에서 갓 이민온 학생들이 적응을 잘 못할 때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도와주기 시작한 것을 아주 제도화해서 유명 무실했던 방과후의 공부교실을 활성화 시키고 학생들 중 자원해서 도와주는 ‘개인 지도교사’들의 모임의 회장을 역임했다.
또 학생회의 일도 열심히 해서 중3때는 Secretary, 고1때는 부회장, 고2 때는 학년회장으로 점점 눈에 띄게 활동을 하더니 고3 때는 전체 학생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공부는 모든 힘든 과목을 했는데 B가 몇개 있어서 최우수성적은 아니었고 원래 머리는 수재는 아니라서 SAT 성적도 전혀 높은 성적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학도 한군데도 안되면 어떻게 하냐며 모두 아홉군데를 보냈다고 했다.
공부하며 학생회 일, 클럽활동, 교회일, 또 방학 때면 단기선교 full time job도 했으니 분초를 쪼개서 쓰는 형편이면서도 대학입학 신청에 필요한 모든 일들, 즉 신청서 작성, 에세이, 여기저기 장학금 신청, 또 그 많은 곳에 그 많은 추천서 부탁, 또 추천을 부탁하면서 자기가 조그만 선물들을 만들어서 나눠주며 성의를 보이는 등 정말로 늘 아주 바쁘게 동분서주하며 지냈었다.
그래서 고3 때는 매일 밤을 꼴딱꼴딱 새다시피 하는 것이 옆에서 보기에도 너무 안타까웠을 정도였다. 그래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말릴 수도 없었지만 입학원서를 낸 9개 대학에 모두 합격했고 장학금도 여기 저기서 너무나 풍성히 받는 것을 보고 얼마나 고마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누나의 발자취들을 따라 그 다음 아이도 쉽게(?) 자기가 원하는 시카고 미술대학에 갔고 또 그다음 아이는 자기 누나처럼 여러 대학에 응모하지도 않았는데도 올해 자기 누나가 있는 하버드대학으로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맞은 여름방학도 그전처럼 많이 일을 해서 용돈을 두둑이 챙겨가겠다고 일찍부터 서둘렀지만 방학도 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초청을 받아서 한국, 텍사스, 멕시코 등등 방학이 끝날 때까지 쉴새도 없이 불려다니는 것을 보고 대견하다 못해 부모로써 샘까지 느꼈다고 하면 조금 과언일까. 이제 하나 남은 막내도 언니 오빠들의 전통을 따라 지금부터 자기가 여기저기 입학원서들을 내느라 분주하다. 물론 누가 옆에서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다 자기는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분명한 의지와 목적들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달랑 막내 아이만 집에 남아서 나간 애들이 남겨두고 간 짐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세월의 흐름을 새삼느끼고 있는데 그러던 중 짐속에 있던 여러 가지 추억에 어린 물건들을 상자에 차곡차곡 넣어 주면서 전에 못보던 일기장들을 보았다. 아니 이런 것들을 다 적어 놓았었구나 하며 “보아도 되겠지, 부모가 안보면 또 누가 본담”하고 읽어 보니 아니 이런 고민과 갈등과 유혹들이 있었고 이렇게 처절하게 싸움을 했구나 하면서 섬뜩했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읽어보니 다 그 어려운 고비를 잘 극복한 것을 본다. 우리는 ‘방목’을 한다고 했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은 월요일 저녁마다 꼭 챙겨준 가정 예배시간에 같이 나눈 성경의 구절 구절들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고 또 그들의 마음 속에 각자들의 삶의 의미와 목표를 가르쳐 주고 사랑의 불을 붙여 놓아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불이 그들이 겪고 있는 모든 일에서 하면 안되는 일과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구별해 주었고 또 어려운 유혹을 이겨 나갈 수있는 힘이 되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이제껏 이들을 통해서 받은 기뻤던 순간 순간들을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이제는 이 조그만 동네에서 조금 더 큰 곳으로 나가게 되었으니 그 마음의 불을 좀 더 크게 불붙여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 해 주기를 가슴속 깊이 빌면서.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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