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주필)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말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음성으로 의사와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할 수 있었기에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동물도 음성으로 약간의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은 지능이 높기 때문에 음성으로 훨씬 정교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모든 인종이나 민족이 말을 사용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휘가 풍부한 민족일수록 문화민족으로 보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말이 민족에 따라 왜 달라졌는지에 대해 성경에서는 바벨탑을 쌓기에 하나님이 흐트려 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말이란 인간의 음성표현이 처음에는 단순한 것으로부터 점점 발달하고 세련되고 그 가운데 공통된 표현으로 수렴되어 특정시대 특정지역의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말은 지리적인 제한성을 가지고 있어 인종과 민족에 따라 다르다. 말이 얼마나 다른가에 따라 인종과 민족의 거리가 결정된다.
우리말은 우랄알타이어 계로 몽고어, 만주어, 일본어와 한통속이나 중국말과는 거리가 멀다. 어순으로 볼 때 중국말은 오히려 서양말과 가깝다. 그런데 말은 음성의 표현이므로 곧 사라지게 되며 멀리까지 도달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말이 가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생긴 것이 글이다.
인류최초의 문자는 5,000년전 중동지방에서 일어났던 수메르인들의 설형문자와 중국 은나라 시대의 상형문자이다. 수메르인들이 점토 판에 새겼던 설형문자는 중동과 지중해 지역을 거쳐 오늘날 서양 알파벳의 기초가 되었다. 중국 은나라 때 거북 등에 새겼던 갑골문자는 많은 발전을 거쳐 한자를 탄생시켰다.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말을 가지고 있었으나 글이 없었다. 그래서 중국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한자를 글자로 썼다. 한자는 표의문자이므로 우리말과 달랐고 한문의 어순은 우리 어순과 달랐다. 그래서 한자의 뜻과 소리를 차용해서 쓴 이두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나’라는 표현은 나오(吾)자를 쓰고 ‘...을’할 때 ‘을’이라는 토씨는 한자의 음과 같은 을(乙)자를 써서 문장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두는 시대에 따라 변천을 했지만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는데 불완전하고 어려워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선시대까지 지배층과 상류층에서는 한자를 썼다.
그러다가 우리 글을 갖게 된 것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15세기 때부터이다. 세종대왕은 국방을 강화하고 정치와 민생을 안정시키고 학문과 예술, 과학을 진흥시킨 명군이지만 그를 우리 민족사의 최고 성군으로 만든 것은 우리 글을 만든 업적 때문이다. 집현전 학자들을 동원하여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한 우리 글은 ‘훈민정음’이라고 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란 뜻이다. 훈민정음은 무식한 백성이나 여성들이나 쓰는 ‘언문’이라고 천대를 받았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꾸준히 보급되어 결국 국문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1913년 주시경 선생이 붙인 한글이란 이름이 오늘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말과 글은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며 특정 언어와 문자는 특정 민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말과 글은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름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일제시대 일본은 우리말과 글을 없애기 위해 그렇게도 탄압했다. 민족의 통일성이 없는 미국에서는 영어가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의 경우 한국과 수십년간 단절상태에 있었어도 말과 글을 유지했기 때문에 동포적 유대감을 잃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우리말을 잊어버리고 중국말을 했다면 그들은 중국인이었을 뿐이다.
미국의 한인들도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우리말과 우리 글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실생활에서 필요하지만 우리말과 우리 글을 잊어버린다면 한민족과는 끈이 끊어져 버리고 말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후세들에게 우리말과 우리 글을 가르쳐야 하는 까
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행히 요즘 미국에서 한국어 교육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곳곳에 한국학교와 교회의 주일학교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의 정규 중.고교에서 한
국어반이 늘고 있다. 이러한 한국어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우리말과 글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고 한국어 보급을 위해 일선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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