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구름에 달 가듯이 흘러가는 세월 속에 구름 사이로 살금살금 얼굴을 내미는 해맑은 달같이 지나간 세월의 사연들이 내 상념(想念)의 바다에서 파도처럼 힐끔힐끔 넘실댄다.
한국을 떠나올 때 이민 보따리와 함께 내 머리 속 화폭(畵幅)에 색칠해온 오색가지 추억들이 어찌 잊혀지겠느냐마는 그래도 내가 철이 들어서 살아온 한국 땅에서의 세월보다 마흔일곱 살이란 장년(壯年)으로 이민와 산 30년 세월이 더 길기에 비록 한국 쪽만 바라보면서 살아온 이민생활이기는 하지만, 한두 가지의 추억이 없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그 추억의 한 토막은 내가 이 땅에 옮겨와 산지 2년 만에 Cupertino에 마련했던 어엿한 내 집 ! 그리고 그 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던 사실이다. 또 다른 한 자락은 내가 걸었던 그 집 언저리의 길 ! 그 길에 대한 추억들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직장 관계로 내가 사는 동네와 꽤 먼 거리에서 살고 있는 큰놈 집에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큰놈 집에서 빠져나와 El Camino를 거쳐 Lawrence Express Way에서 우회전하여 곧바로 오면 내 집까지는 시간이 단축되지만 그 길을 타지 않고 내 차는 Local인 오솔길로 접어든다. 그 길이 내가 지난날 20년 가깝게 가게를 운영한 가게에서 3분 거리에 자리 잡은, 19년 동안이나 살아온 내 집 쪽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9년 전에 떠나갔던 그 집 맞은 편 길가에 차를 세우고는 차창을 통하여 멍하니 그 집을 바라보고 있다. 갖가지 사연들이 머리에 떠오른다. 저 집을 사고 들어갔을 때 나의 네 자식들은 햇병아리 같았었는데 저 집에 사는 동안 모두가 장닭으로, 암닭으로 커서 우리 곁을 떠나가 버린 사연 말이다. 한편 이민 올 때 분명 버리고 오기로 했던 그 지긋지긋한 연극의 돗자리를 다시 깐 자리도, 또 많은 수필을 쓴 곳이 바로 저 집이란 생각이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내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1989년 이 북가주에서는 처음으로 시작한 극단 ‘금문교’의 창단(創團) 모임이 저 집에서였다. 뒷뜰에 환하게 불을 밝혀 놓고 질펀하게 이루어졌던 그 밤의 광경이 17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13년 전에 창단된 아동극단 ‘민들레’의 <콩쥐팥쥐> 연습이 바로 저 집 지붕 밑에서 수없이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내가 집을 산지 5년 만에 겁도 없이 집을 대대적으로 수리한 사실이다. 나의 집 고치기 취향(趣向)은 대학시절부터의 취미였고, 결혼해서는 마누라와 내가 똑같이 집치장에 유별났던 탓이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나를 위시해서 많은 이민자들이 그랬듯이 한국에서 좁은 생활공간(生活空間)에서 살던 답답함을 땅 덩어리가 넓은 이 땅에서는 보다 넓게 살아보자는 욕구충족(欲求充足) 심리에 비롯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집을 고친 후에는 <콩쥐팥쥐> 연습 때마다 어린 꿈나무들과 그들의 자모들 70~80명이 리빙룸과 다이닝룸 그리고 새로 달아낸 2개의 방등 7개방의 이 방 저 방에 모여 앉아 어린이들은 대사 연습하고, 자모들은 담소(談笑)하던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온 세월 ! 그리고 한국에서 방문 온 문인들이나 화가들 뿐 아니라 이 지역의 문인들을 불러서 때때로 파티를 열며 법석을 떨던 지난 사연들이 주마등(走馬燈)같이 내 눈 앞을 스쳐간다.
자녀들의 성장과 연극 연습 그리고 집 고치기에 대한 숱한 추억을 남겨둔 채 그 집 속에서 연극하던 어린이들과, 더러는 서로가 친척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기도 한 자모들, 그리고 성인연극 동지들이 이제는 내 곁에서 떠나가 버렸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내 눈에 서물거리고 있는 그들의 얼굴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집 주인 차 인듯한 차 한대가 그라지 도어를 열고 들어간다. 나는 무엇을 훔쳐 먹다가 들킨 사람처럼 황급히 차를 몰고 그 집 앞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이민 초기부터 20년이란 세월동안 내 발자국과 자동차 바퀴자국이 뭍은 그 길을 달려 지금의 집이 있는 Campbell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길과 그리고 그 집에 쏠리는 나의 이러한 집념(執念)은 어쩌면 흘러가 버린 세월을 다시 되돌려 보려는 부질없는 갈고리질인지 모른다. 자동차 핸들을 잡고 집으로 향하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또 하나의 사연은 내가 청소년기에 살았던 내 고향 통영을 30년 만에 찾아 갔을 때 너무도 변해버린 도시의 변모 때문에 내가 살던 집을 찾지 못하고 발길을 돌리고 만 그 사실과 이민 온지 15년 만에 내가 살던 수유리의 집을 찾아 갔을 때, 마천루(魔天樓) 같이 높이 솟은 아파트의 숲이 내 앞을 가로막아 섰고 또 아파트 사이사이에 뻗은 길들이 미로(迷路)같이 나의 발길을 헛갈리게 하여 끝내 내가 살던 집을 찾지 못하고 돌아 섰던, 내 과거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버린 듯한 서글픈 사실에 비하면 100년 앞을 내다보고 길을 닦고 집을 짓는다는 미국인의 그 계획성 덕분에 이민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거닐었던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의 그 길과 그리고 그 모습의 그 집 앞을 땀땀이 기웃거릴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르겠다 ! 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는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