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10년 정도 되었을까. 유능한 동포 2세 청년 하나가 잘 나가던 변호사를 그만 두고 직종을 바꾸었다. 그의 아버지를 잘 알던 터라, 왜 그랬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아버지는 “아, 글쎄 그렇게 잘 나가던 변호사직을 그만 두고 허름한 직업을 다시 잡았어요. 그래서 아들에게 물어 보았지요.”
아들은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변호사란 직업은 유망한 직업이다. 잘하면 명예도 얻고 돈도 많이 버는 직업이다. 또 누구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직업이다. 그리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직업이다. 평생 직업으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직업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변호사가 되려고 해도 실력이 모자라 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렇게 변호사 직업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은 그 아들은 자신이 왜 변호사직을 그만두게 되었는가를 말하더란다. “아버지, 첫째로 변호사직은 저의 적성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에게 수임을 맡긴 의뢰인이 ‘분명히 잘못이 있음’을 알고도 그를 변호하여 그가 법정에서 이기게 하도록 하는 게 변호사입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을 더욱 괴롭히는군요.”
한국의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변호사들의 서류는 대개 사람을 속여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것이다.” 그는 또 “검사가 밀실에서 받은 진술조서가 어떻게 법정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 검사의 수사기록을 던져 버려라.” 파격적인 발언이다. 법조계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이런 말을 했으니 한국의 검찰과 변호인단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 말에 대해 천기홍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사법 질서를 부인하는 발언이다. 자진 사퇴하라”고 했으며 정상명 검찰총장은 “검찰의 기능과 역할을 존중하지 않는 뜻으로 비쳐질 수 있어 유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리 밉게 보이지 않음은 웬일일까. 그가 한 말이 변호사란 직업에 대한 아주 아픈 부분을 속 시원하게 찔렀기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이 말로 한국은 법원과 검찰·변호사협회가 서로 갈등을 빚게 되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변호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2000년 대법관을 그만 둔 뒤 법원 밖에서 변호사, 서울대 강사 및 정부공직자윤리위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할 말은 하고, 본인의 신념을 가감 없이 말하는 사람”이란 게 중평이다.
성철스님이 입적하기 전, 그가 남긴 말이 있다. 자신은 “지금까지 사대부중에게 모두 거짓말을 해왔다”고. 감히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국 불교계의 거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철 스님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죽기 전 남긴 말로 인해 한 때 불교계가 술렁일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솔직히 할 수 있는 자가 곧 성철 스님이었음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장자’에 보면 나비와 장자가 서로 꿈을 교환하는 장면이 나온다. 장자가 나비 꿈을 꾸었는데, 그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구분이 안 간다는 내용이다. 즉 장자가 나비가 되어 장자를 꿈꾸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되어 나비 꿈을 꾸었는지, 한 마디로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럴 때 장자가 나비가 될 수 있고 나비가 장자가 될 수 있는 허상, 즉 거짓이 성립된다.
“내가 진짜인가?”라고 자문해 볼 때가 가끔 있다. ‘나’라고 하는 ‘개념’ 속에 분명히 ‘내’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없고 나의 껍질만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는 누구인가?”란 철학적 질문의 기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정말 “내가 살아 있는 ‘나’인지, 아니면 ‘나’는 없고 ‘나의 껍데기’만 살아 움직이는 ‘나’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다.
“사람을 속여 먹으려고 말로 장난치는 변호사”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해 왔다”란 말의 여부. 장자가 꿈속에서 나비를 보았는데 “그 나비가 장자인지, 장자가 나비인지”, 속임수 가운데 있는 허상의 것. ‘내’가 ‘나’가 아니라 ‘빈 껍데기’만 살아가는 헛것. 즉 “속고 살아가는 ‘나’의 ‘내’가 아닌지”는 더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김명욱
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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