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식어간다. 물가도 떨어지는 추세다. 주택시장은 심상치 않게 조정되는 모습이다. 몇 달 전까지의 경제 여건과는 판이한 현상이다. 이런 상태로 조금만 더 유지하면 그동안의 물가상승의 위험이 사라질 전망이다. 연착륙을 시도한 연방은행이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는 흐르고 있다.
이제는 경기침체가 염려다. 물가의 위협을 막기 위한 긴축 금리정책으로 인해 경기침체의 위험이 부수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경기의 앞날을 보여주는 데 큰 의미를 지닌 채권시장은 장기 이자율이 단기 이자율보다 더 높은 역전현상을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역전된 이자율 상황은 경기침체로 이어졌기에 경기침체의 우려를 지나치다고만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면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경기침체까지 각오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물가상승 즉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얼마나 크면 경기침체라는 희생도 불사할 정도인가 하는 질문이다. 먼저 지적되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은 부의 재편성과 이에 따른 상실감에 의한 반감이다. 물가는 일률적으로 오르지 않기 때문에 먼저 오르는 분야의 부가 빨리 상승하고 늦게 오르는 분야는 상대적으로 부가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 원자재가 주로 먼저 오르기 때문에 원자재에 속하는 산업이나 개인들의 부가 빨리 오르고 반면에 임금은 대체적으로 늦게 오르므로 봉급생활자의 부는 뒤쳐지게 되는데 이런 식으로 부의 재편성이 일어난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부의 재편성은 실질적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단순히 돈의 가치하락 과정에서 오는 반사적 이익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뒤쳐진 계층의 상실감에 의해 사회적 반감이 생겨난다는 사실이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정유회사의 이익이 급상승했을 때 누구도 정유회사의 경영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폭리를 취한다고 비난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이러한 상실감은 실제로 이익을 보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인플레이션의 피해자라고 생각하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증폭된다. 실제로 물가가 오르면 손해 보는 경우와 거의 같은 정도로 이익을 보는 경우가 생긴다. 단지 돈의 가치의 변화로만 재산이 변할 뿐 실제 있는 실물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누군가 손해면 누군가 이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익을 보는 사람들까지도 물가가 오르면 내가 손해를 본다고 느낀다. 세입자의 경우가 좋은 예다. 역사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급속한 인플레이션 기간에 임대료는 다른 분야 특히 임금보다 늦게 오른다. 오른 임금에 비하면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싸지는 데도 입주자는 자신의 임대료 인상을 더 민감하게 때로는 유일하게 느끼면서 인플레이션을 원망한다. 자신의 아픔만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인플레이션이 가져오는 또 다른 위험은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불안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라 부가 재편성되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쌓이게 된다. 이 불확실성은 지금의 내 재산가치가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연결되면서 가격상승이 빠른 분야로 부를 옮기거나 가격상승이 낮은 분야를 정리하는 재테크의 관심을 일으키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투기 분위기가 지배하게 된다. 실질적 생산에 집중되어야 할 노력이 부의 보호를 위한 노력으로 허비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실감과 불확실성 및 이를 피하기 위한 투기심리가 조성되면 사회적으로 반감과 불신이 만연하면서 전체적인 사회제도에 대한 신뢰가 깨지게 된다. 자본주의 성공의 근간은 사회질서 즉 게임의 법칙에 대한 뿌리 깊은 신뢰인데 인플레이션은 바로 이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폐해를 가져오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국가들이 심한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겪는 현상이 좋은 예이다.
이렇듯 인플레이션을 방치하면 사회불안과 경제질서 파괴까지 이를 수 있기에 모든 국가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의 안정적 유지를 정책 목표의 최우선에 두고 있고 미국의 연방은행은 이러한 인플레이션 강경론에 있어 가장 앞장서 있다.
설령 어느 정도의 경기후퇴를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인플레이션의 위험은 막겠다는 연방은행의 의지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 할만큼 중요하다고 하겠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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