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주 대법원 판결이 특히 마음에 와 닿았다. 97세 독거 노인이 남긴 시가 45만여 달러 집 한채를 받기 위해 마지막을 돌봐 준 간병인 커플과 서류상 친지들이 만 5년간 법정싸움을 벌인 결과였다. 유언은 간병인 커플에게 각각 50%씩 전체를 준다고 했지만 엎치락 뒤치락하며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케이스는 친지의 승리로 끝났다.
대법원은 고인이 임종전 3개월동안 3번의 수정과정을 거쳐 간병인에게 재산을 준다고 한 유언은 타의나 강압등이 없었다는 입증이 되어야 효력이 있다고 판시했다. 1993년 노인들의 사기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주법을 근거로 간병인의 상고를 기각했고 자녀도 없이 살았던 노인의 재산은 오래전 상속인으로 거명됐던 여동생에게 넘어가게 됐다.
고인이 마지막 때까지 자신을 돌봐 준 간병인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상속분을 조금씩 늘려가느라 3번에 걸쳐 유언을 고쳤다면 이처럼 억울한 판결이 어디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노인을 돌봐주고 대가도 도난 당한 채 노인 재산을 훔치려 했다는 누명만 평생 쓰게 되는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 금치산자가 되어 가는 노인들이 돈벌이 미끼나 사기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어쩔 수 없이 받아야 하는 수발을 빌미로 직간접 협박을 받기도 한다. 노령 인구가 증가해선지 자녀들이 늙은 부모 재산을 차지하느라 법정 혈투를 자주 벌인다,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한 노인을 위해 법원이 지정하는 보호인(conservator)들의 학대나 권한남용이 심해지니 주의회는 보호인도 면허제로 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혼자 사시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수백 달러나 되는 건강식이나 약품을 사들이고 들기도 무거운 청소기나 건강 이불등에 그동안 절약하며 모았던 수천 달러씩을 지출하셨다. 나빠진 건강을 회복시켜 준다는 그럴듯한 사기망에 계속 걸려 드는 것이다.
그뿐인가 노인의 메디칼 혜택을 최대한으로 빼먹으려는 의료관계자들은 자꾸 불러내 무엇인지 모르는 서명을 하게 했다. 가본 적도 없는 엉뚱한 병원에서는 진찰을 받았다는 기록이 날라들고 있었다. 따질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내돈이 나가지 않으니 그냥 넘어가는 노인들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유언서 효력까지 제한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독버섯같이 번져 가는 노인대상 사기 퇴치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판사들도 이중 삼중의 노인보호를 위해 고심 끝에 내렸을 이 해석이 왠지 명쾌하지 않고 씁쓸하다.
타인이지만 노인과의 오랜 우정으로 자발적 간병을 하게 됐고 병세가 악화된 시점에서는 아예 집안으로 이주시켜 임종까지 돌본 그들이 진정한 굿 사마리탄일 수 있어서다. 반대의사를 표했던 한 판사가 지적했 듯 굿사마리탄을 오히려 벌주는 법이 되어 그렇지 않아도 찾기 힘든 굿사마리탄의 씨를 말릴까 걱정되서다. 굿사마리탄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무섭고 절망적인가.
배우자나 자녀들조차 간병인이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벌 목적이라도 인간에 대한 사랑이나 자비심, 연민이 없이는 노인 돌보기를 오래 할 수 없다. 생계 때문에 하인으로 들어간 후 안방마님이 된다던가 또는 생각지도 못한 거액 유산을 상속받는 경우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아시안 여성이 늙은 독신 남성 집에 입주가정부로 살다가 수백만 달러 유산을 받았다고 했다. 그 행운(?)을 부러워하던 사람들도 병들고 외로운 노인 옆을 24시간 지키는 것은 너무 어려워 못하겠다고들 입을 모았다.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래서 노인문제는 절대 남의 일이 아니다. 노인이 되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자녀가 한둘인 세대도 지나가고 무자식 부부 세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는 누구나 핏줄이 아닌 타인이나 정부의 간병 및 관리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시점에서 모두가 굿사마리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노인으로 향하는 길도 그다지 절망적이지 않을 것 같다. 굿사마리탄 되기 캠페인이 필요한 시기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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