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연재/신예선
“나는 어떻고? 그림은 상상도 못했다. 피아노를 치고 싶었다. 연희가 노래를 부를 때 반주도 해주고. 그런데 나는 게을러서 매일매일 연습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의 길은 맞지 않는다고 막았다.”
“결국은 선택을 잘하라고 외치면서 우리에겐 선택의 자유가 없었다.”
“혜성이 말대로 그걸 아름하여 ‘운명’ 이라고 한다. 운명이 아니고는 이렇게 평생을 묶여 살 수 있겠니. 헤어지면 멸망할 것 같다니까. 하나님께서도 다 생각이 있으셔서 혜성을 만들어 내셨을 게다. 하나님의 각본을 믿고, 선지자 같이 떠드는 혜성이 말을 들으며 다음 장을 기다리는 거다.”
나의 선택은 옳았다. 나는 이 친구들을 선택했고 우리들은 평생을 이렇게 우정을, 사랑을 키우며 삶을 함께했다. 나는 곧 너였고, 너는 곧 내가 되어 함께 웃고 함께 아팠다. 이런 친구들을 선택할 수 있는 예지는 어디로 부터 온 것일까, 나는 때때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를 했다. 그리고 때때로 생각했다.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일까 하고. 전능하시 분이 내게 보내주신 귀하디 귀한 나의 천사들을. 나의 선택이 아닌, 전능자의 선택이었음을. 그리고는 숙연해진다. 왜 보내셨을까.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하는가를.
“마음이 아프죠?”
지점장이 물었다.
“삶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흰구름 일까요, 석양에 물든 구름 일까요, 장대비를 몰고 오는 먹구름 일까요?”
지점장과 나는 갤러리 마당에 한동안 서있었다. 안개비가 내리는 뿌연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었다 세찬 바람만이 구름의 여운 같은 안개를 이리저리 몰며 불어오고 있었다. 돌담이 입구까지 정원을 이룬 갤러리 마당, 흙으로 빚은 토우와 방사탑처럼 돌탑이 쌓여있는 김영갑 갤러리. 맑은 날보다 바람불고, 비가 오는 악천 후 속을 주로 사진에 담은 작가의 모습과 같은 일기 속에서 지점장과 나는 한동안 있었다. 성산읍 삼달리에 있는 김영갑 갤러리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마음은 어두웠지만 서귀포의 이중섭 미술관에도 들렸다. 김영갑과 달리 ‘소’와 ‘닭’과 ‘집 떠나는 가족’을 주로 그린 이중섭 역시 지점장과 나의 구름 낀 마음에 위안은 되지 않았지만 그의 미술관은 그래도 온기가 있었다. 권옥연, 박고석, 김병기 등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과, 절친했던 시인 구상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중섭도 고인이다. 우리 모두도 떠난다. 그러나 아니다. 천년만년 살 것같이 들 산다. 오래 남을수록 흉터만 늘어나는데, 먼저 떠나는 것이 차라리 평온한 길인데 나의 죽음은 멀고 실감 할 수 가 없다. 오래 지상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먼저 떠난,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리움으로, 슬픔의 시간을 더 갖게 될 뿐인데도 우리는 되도록 이면 오래 살기를 원하고 있다. 다시는 지상에서 볼 수 없는 서글픔에 천국에서의 재회를 그리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래 이승에 머무르려 한다. 생이란 고도의 희극이다.
“김영갑 작가에 비하면 이중섭 화백은 그래도 행복한 것 같습니다.”
미술관을 나오며 지점장이 말했다.
“두 분 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생활은 고달펐을지 모르나 하고싶은 일을 했고, 일찍 떠난 것이….”
그게 무슨 알이냐고, 지점장이 나를 바라 보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한 분 한 분 내 앞에서 떠나는 것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요.”
미술관 앞에 서니 바다가 펼쳐졌다. 어디를 가도 바다다. 모퉁이만 돌아서도 바다고, 작은 언덕 위에 서면 바다다.
“이런 섭섭한 말씀을 하시다니요. 저를 위시하여 선생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몇 개의 사단을 이루고 있는데, 떠난 분들만 그립고 남은 자들은 상관 없다는 말씀같이 들립니다.”
김영갑 갤러리에 내리던 비는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멎어 있었다.
“그래서, 떠난 분이 그리운 마음을 달래려고 제주도까지 온 거지요. 달래야만 현존한 사랑하는 이들과 삶을 이어 갈테니까요.”
“다행입니다. 그러셔야죠.”
이중섭 미술관에서는 김재훈에게 줄 기념품을 구입했다.
“오늘 가본 세 곳 모두 벼르고 있던 장소인데, 정선생님과 함께 봐서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겠습니다.”
호텔의 바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지점장이 말했다.
“같은 장소라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더군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과 관계인 것 같습니다.”
물론이죠. 나는 고개를 절대의 힘으로 끄덕였다.
“사람이예요. 모든 것이 사람이죠. 아무리 아름다운 유채 꽃도, 벗 꽃도, 별과 바다도 사람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함으로,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바라보기 때문에 아름다운 거죠. 아름다움의 완결은 사람이예요.”
나는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또다시 포도주로 물들였다. 떠난 하동 땅의 거인도 함께 있었고 생존한 예산의 꼬마 친구들도 나와 있었다. 제주도에서도 밤은 젊었고 나는 이 젊은 밤을 포도주에 취하도록 마셨다. 바의 창으로도 풍차는 보였고, 풍차는 돌고 있었다. 바다는 별빛과 달빛을 받아 은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산 자들의 특권, 저 아름다움에 취하고 포도주에 취하고….”
나는 주정하듯이 말했다.
“정말로 고마워요. 나를 위해 지금 제주도에 계신 것 같아요. 절실했던 시간에….”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제가 그 대상이 되어 위로가 되셨다면….”
풍차는 유유히 돌고 은빛 바다는 유유히 물결을 계속 이루었다.
“제가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때 송별연에서 낭송하신 시 두 편을 제주도까지 갖고 왔습니다. 이번에도 시 한 편 남겨 주실 수 있으신지요.”
샌프란시스코의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는 지점장의 송별연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사람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이게 되어있다. 총영사를 위시하여 한국에서 파견되어 나온 사람들은 임기가 끝나면 귀국한다. 그러나 떠나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역에 사람의 발자국을 남기며 관계를 맺은 아름다운 사람들. 3년 평균의 시간동안 이지만 내 교향 같이 지역 사람들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 온 사람들은, 떠나도 우리와 함께 하게 되어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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