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리로 와 봐요!”
아내는 나직이 그러나 겁에 질린 소리로 나를 불렀다. 찌는 더위에 잠은 안 오고 서재에서 책을 읽던 나는 책을 놓고 일어섰다. 아내도 더위 때문에 잠이 오질 않는다는 건가? 혼자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침실은 불도 꺼져 있었다.
서재로부터 댓 발자국 길이의 현관을 지나면 베드룸이 있었다. 나는 서재의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캄캄한 쪽을 향해서 나아갔다. 나는 흡사 동굴 속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침실 문을 열자 침대 위에 있는 아내는 이불을 목에까지 둘러 감고 겁에 질려 앉아 있었다. 방은 서재로부터 비치는 불빛 때문에 어렵잖게 모든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아내는 역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에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어요. 밖이 훤하기 때문에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단 말이에요.”
아내의 호들갑에 나는 금방 더운 밤인데도 머리가 쭈뼛 서고 등골마저 오싹해졌다. 나는 긴장된 가슴으로 말없이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커튼이 늘어진 틈 사이로 밖을 응시해 보았다. 자정이 가까운 밖은 불빛도 없고 인기척마저도 없었다. 맞은 편에는 차고가 어둠 속에서 커다란 입을 벌리고 열려 있었다. 그 곳에는 자신의 승용차가 침묵하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안 쪽으론 너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이런 또 잊었군, 차고 문을 닫는다는 걸…’ 나는 혼자 생각했다.
차고에 뭐 값진 물건이나 재산 될 만한 게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승용차가 값이 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직은 도둑들이 차를 훔치러 집안까지 들어온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아내가 한 말처럼 차고가 열려 있으면 도둑이 들어와서 숨을 수 있는 은신처를 제공해 주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일리가 없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참동안 수상한 점을 유심히 보았지만 그 안에선 아무런 미동도 잡히질 않았다. 그제야 나는 어깨를 쭉 펴고 아내가 있는 방으로 다시 돌아 와서,
“왜 너무 더워서 잠이 오질 않아? 들어오긴 누가 들어왔다고 그래.”
“아니에요, 정말이란 말이에요.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걸요.”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겁먹은 표정을 조금도 펴지 않을 심산이었다.
“아니 당신두-, 이 어두운 밤에 누가 있는 것이 어떻게 보인단 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것도 커튼이 내려져서 밖은 보이지도 않는데-.”
“그림자가 비취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저 틈으로 검은 그림자가 분명 지나갔어요.”
“그렇담 왜 옆 집 개가 짖지를 않았겠오? 그 사나운 개가.”
“짖었어요. 단지 두어번 으르릉 대다 그쳤지만요 짖긴 짖었다구요.”
“나는 못 들었는데-, 좌우간 내가 나가서 차고 문을 닫고 오지.”
“아, 안돼요! 이 밤중에 어딜 나간다고 그래요! 당신 생명이 몇 개라도 된단 말이요?” 아내가 내 허리춤을 단단히 부여잡고는 결사적으로 매달렸다. 나는 아내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누가 들어왔건 아니었건 이런 밤중에 밖엘 무방비로 나간다는 것은 현명치 않았다. “알았소, 알았소! 승용차가 생명보다야 싸다는 것을 알았단 말이요. 당신 말대로 나가지 않겠소. 그리고 나도 덥지만 당신 곁에서 잘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걸 놓으란 말이요. 서재에 불이나 끄고 올 테니-.”
서재로 가서 스위치를 내린 후 나는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얼른 잠옷을 걸치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자, 어서 잡시다. 벌써 자정이 넘었구료.” 그는 아내에게서 홑이불을 끌어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리곤 말했다.
“당신이 본 것은 개나 도둑고양이의 그림자를 본 것일 거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아무렴 사람과 짐승도 구별 못하고 법석을 떨까봐 그래요?”
“하여튼 개든 사람이든 염려할 것이 없소. 우리 집은 창마다 쇠창살로 철옹성처럼 막아 놓지 않았소? 하긴 내 원 이 세상에서도 집 창문을 감옥처럼 해놓고 살아야 하는 곳은 이 미국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한탄 조로 중얼대며 눈을 감았다.
“쇠창살로도 충분치 않아요. 총을 사야 돼요, 총을…” 아내는 한 수 더 떴다.
그렇다. 그 놈의 쇠창살을 생각하기란 기분 내키는 일은 아니다. 어쩌다 좋은 날 햇살을 받으며 양지에 앉아서 창 밖을 내다보며 차라도 한 잔 들고 싶어 커튼을 올리기라도 하면 그 손가락보다 굵은 시커먼 쇠창살이 필경 감옥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총을 사야 되요, 총을, 우리도-.” 아내는 돌아누운 채로 거듭 강조해서 말했다.
“그런 소리 말구려. 총 가진 자가 총으로 망하는 법이오.”
아내는 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지 않았다. 총을 소지한다 해도 그것을 허리에 차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차고 있다 해도 막상 범인과 마주 칠 때 내가 무슨 서부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 존 웨인도 아닌 바에야 총기를 쓴다고 서툴게 굴다가 오히려 이 쪽이 봉변을 당하고 말 것은 보지 않아도 자명한 노릇이 아닌가.
그러나 아내는 나와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내 생각은 말하자면 대단히 소극적이고 겁쟁이 태도라는 것이다. 나쁜 도둑놈이 들어와서 여자를 강간하고 남자를 해치려 할 때는 이판사판 총을 들고라도 결사적으로 싸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었다.
아내의 주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니 언제고 아내의 말처럼 총기를 구입해서 영화에서 보는 개척자 카우보이처럼 이민생활을 할 날이 올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총기를 구입할 때가 언제가 될지는 나로서도 막연할 따름이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가 겨우 더위를 잊고 잠에 빠져들려고 할 때쯤, 아내의 다급한 음성은 다시 나를 잠에서 깨워놓고 말았다. 막 꿀 같은 단잠이 들려다 깨워진 나는 은근히 부아도 치밀었고, 또 눈도 시리고 아파서 짜증이 났다.
“저기 봐요! 저- 저 창의 불빛을…”
나는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맞은편 창을 보았다. 두 개의 창 중에 왼쪽 창이 프레시 불빛 같은 선연한 빛으로 쓸 듯이 번쩍 비치다가는 사라져버렸다. 다시 나도 머리가 쭈뼛하며 올라섰다. 잠결이라 영문을 모르던 나도 부지부식간에 두려움이 전신을 엄습했다. 말문조차 막혀 버렸다. 아내는 계속 나를 채근했다.
“봤지요? 저 불빛, 당신도 봤지요?”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불빛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더위와 놀라움에 아내와 내 몸은 땀으로 잔뜩 눅눅해져 있는 참이었다.
“이상하지요? 하늘엔 떠 있는 헬리콥터도 없는데.”
“글세…” 나는 겨우 아내의 말을 받았다. 정말 헬리콥터 소리조차 없는 고요하고 무더운 밤이었다. 허긴 이 더운 밤에 헬리콥터까지 하늘에 떠서 붕붕대고 서치라이트를 비춰댄다면 잠들기는 더 힘들 것이었다.
잠시 후 내가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비실비실 침대에서 내려서려 하자 아내는 꽉 잡은 팔을 놓아주려 하질 않았다.
“그냥 계세요. 움직이지 말고-.”
나도 못이기는 체 그냥 자리에 주저앉았다.
불빛은 좀처럼 다시 나타나 주질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다시 잠도 들지 않았다. 기후는 습도 때문인지 찌고 더워서 가만히 누워 있어도 목이며 등에 땀이 배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아무리 낮에 해가 뜨겁다가도 해만 지면 선선해지던 이 곳 날씨가 웬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이게 다 인재 때문이라니 당장 앞으로 에어컨 설치라도 하든지 무슨 변통을 대야 할 것만 같았다. 도둑 걱정, 더위 걱정, 이런 저런 걱정으로 우리 부부는 그날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본래 나는 일정한 시각을 놓치고 나면 잠을 못 자는 나쁜 습관이 있다.
아침이 되어 나는 어젯밤 아내와 나를 공포로 몰았던 그 불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분명 내 눈으로도 확인한 불빛이었다. 나는 아내가 아침준비를 하는 동안 조용히 침실로 가서 어제 불이 비쳤던 창에 커튼을 제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뒷집엔 정원이 있고, 그 뒤에 자동차 두 대가 들어와 주차할 수 있는 드라이브웨이 통로가 있었다. 그 곳엔 다름 아닌 낡고 조그만 4기통 일제 승용차 한 대가 얌전하게 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의 주인도 아마 더우니까 집에 늦게 귀가했음이 틀림없었다. 차가 들어 올 때에 낡고 희미한 헤드라이트 하나는 내 집 창을 비추었고, 다른 하나는 벽을 타고 멀리 빠져나갔을 것이다. 나는 허탈해져서 침대로 돌아와 벌렁 누웠다.
아내의 신경과민증과 무더위 때문에 손해 본 잠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아니면 오늘 하루도 틀림없이 무덥고, 짜증나고, 피곤한 긴 하루가 될 것이다.
이성열
■94년 미주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바람은 하늘나무’ ‘하얀 텃세’
번역 시집 ‘루미의 입술 없는 꽃’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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