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세대가 아닌 나는 그동안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지나침은 미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는 의미로 생각해 왔다. 지나친 것보다는 모자라더라도 겸손하라는 의미라고 억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 사는 지나치고 제자 상은 미치지 못하나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고 한 말이었다.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한 것이나 다 나쁘다는 의미로 같다는 말이다. ‘과유불급’의 ‘유’가 ‘같을’ 유였다. 컬럼비아 대에서 나온 영역판 논어에도 ‘as bad as’로 나와 있다.
얼마전 청와대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난상”토론을 벌였으나 결론을 못 내렸다’는 발표를 했다. 이때 ‘난상’을 ‘어지러울’ 란(亂),‘평상’상(床)으로 생각하고 ‘책상이 어지러워질 정도로’ 얘기했으나 결론이 없었다…운운했다. 현 정부의 난맥상을 연상 시키는 그럴듯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난상’이라는 말은 ‘난만할’ 란(난), ‘장사’ 상, ‘爛商’으로 ‘상인끼리 충분히 흥정하는 것’으로 잘 논의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난상’토론을 벌였다면 ‘결론을 내렸다’가 순리에 맞다. 무질서하게 이야기만 하고 결정이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난상’이라는 표현은 틀린 것이다.
삼국지에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쫓았다(死諸葛能走生仲達)’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선생이 ‘죽은 제갈공명이 도망가면서 사마중달을 낳았다’로 해석한다. 이에 한 학생이 ‘어떻게 죽은 제갈공명이 사마중달을 낳습니까?’물어 본다. 그러자 선생은 ‘그러니까 제갈공명이지’하고 태연히 대답한다. 과연 ‘멋있는’ 선생이다. 박지원의 ‘호질(虎叱)’에 나온다.
‘Moral hazard’가 ‘도덕적 해이’로 표현되어 IMF사태 이후 한국에서 풍미되고 있다. 예컨대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회생시킨 기업들이 그 운영 상태가 엉망이고 그 임원들에게는 과도한 보수가 지급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원래 도덕적 해이는 보험이론에서 나왔다.
불, 바퀴(차)와 함께 인류의 3대 발명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는 보험이지만 보험에 들고 나면 안심이 되어 상대적으로 부주의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예컨대 애지중지하던 밍크코트도 보험에 들고나면 그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이젠 잃어 버려도 보험회사가 물어 주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사람의 도덕성과는 관계없고 보험제도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래도 이를 도덕적 해이 현상으로 본 경제학자들이 그렇게 명명했다. 고객 입장에서는 보험에 들고 나서는 ‘도덕적 해이’ 현상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그러려고 보험에 든 것이다. 보험에 든 후 나타나는 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이 있고 또 보험에 들기 전에는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보험료를 책정하여야 하는 소위 ‘역선택(adverse selection)’ 문제가 보험이론의 최대의 관심사이다. 이제 이런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문제는 모든 금융기관에 적용된다. 은행의 경우도 융자 이전의 역선택 문제와 융자가 나간 후 융자조건의 준수 여부인 도덕적 해이 문제가 따 른다.
1960년대 후반 미 대도시 내의 화재 급증은 대도시의 건물 시가보다 화재 발생시 보험에서 지급하는 금액이 더 많았던 것과 유관하다(1966년과 1970년 사이 미 전국 화재손실액이 55퍼센트 증가했다). 이것이 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그렇게 될 경제적 유인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물론 ‘고의’인 경우 불법이다. 그러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문제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도덕적 해이 운운은 도덕적 해이와는 관계없는 횡령 등 법의 문제이다. 도둑을 ‘양상군자(梁上君子)’라 부르며 지적 과시를 하고 있다.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공적자금을 사적자금으로 쓸 수 있게 된 도덕적 해이의 막강한 유인을 이미 제공해 놓고.
‘난상’이 그리 된 연유는 잘 모르겠으나(옥편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음에도), 난상 같은 현상이 도덕적 해이에도 나타난 것이다. 경제나 경영 이론에 대한 식견을 갖추기 보다는 경제나 경영을 구호화 시키는 소위 전문가들 때문이다. 식견이전 경제이론에 대한 적확한 이해도 하지 못하고 전문가연하고 있는 현실이다. 수학이나 물리학 등과 달리 외견상으로는 그러한 전문가들이 가능한 곳이 경제학이나 경영학이지만.
정요진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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