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도 이방인들도 어른들도 어린이들도
우리춤 우리가락에 “얼씨구!” “원더풀!”
제14회 한국의날 민속축제
소리는 천둥처럼 우렁찼다. 간간이 풀잎을 간지럽히는 가는 비처럼 섬세했다. 율동은 무사처럼 활기찼다. 이따금 숨마저 막힐 듯한 동작그만, 그러나 그 순간정지는 묘하게도 천군만마의 질주보다 더한 무엇을 남겼다.
국악분야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앙국악예술단이 있어 더욱 빛난 제14회 한국의날 민속축제는 얇아지고 잊혀지는 그 무엇에서 화들짝 깨어나 그 순간만이라도 하나되게 하는 용틀임과 어울림 한마당이었다. 역시 풍고, 과연 중앙국악예술단이었다. 이밖에도 별미는 푸짐했다.
<제1부> 대화합 대합창 뜻깊은 마무리
16일•SF유니온스퀘어에서 오전 11시30분쯤부터 오후 3시30분쯤까지 이어진 이날 축제는 노상 “또 그 말”의 릴레이가 되기 쉬운 제1부 내용부터 튼실했다. 특히 양진석 코테마데라 시장은 축사를 통해 “102년전 여기(유니온스퀘어)는 ‘개와 동양인’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많은 한인들이 당당하게 태극기를 내걸고” 한국의날 민속축제를 하게 된 감격을 되새겼다. 지난 37년동안 UC버클리 무도프로그램 책임자로 봉직하면서 태권도의 세계화에 큰 족적을 남기고 최근 은퇴한, 그러나 한인사회에서는 왠일인지 제대로 챙기지 않았던 민경호 박사에게 한인들의 감사하는 마음을 모아 공로패를 증정한 것도 의미있는 진전이었다. 샌프란시스코시와 바크위원회 등이 겹치기로 이날을 한국의날로 선포한 것도 한국의날에 대한 바깥의 대접이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였다. 게다가 북가주 3한인회장(샌프란시스코 김홍익, 새크라멘토 강상만, 몬트레이 오영수) 등 한인단체장들과 정상기 총영사, 전현직 평통회장(김우정 정에스라) 등이 무대위의 노랫꾼이 되어 소년소녀합창단의 선창에 따라 도라지와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함께 부른 대화합 대합창은 하나됨을 추구하는 축제의 뜻을 잘 보여준 명장면이었다. 합창에는 양 시장와 민 박사를 비롯해 마크 레노 주의원, 홍 챙 주지사실 국장, 이정순 전 한인회장, 박정희 SF커미셔너 등도 두루 참여했다.
<제2부> 축제의 꽃 중앙국악예술단 특별공연
우리춤 우리가락의 우수성을 다시금 확인하는 무대였다. 수평움직임과 수직움직임이 교차하며 절제와 조화를 그려낸 제천무에 이어 나라와 겨레의 태평성대 기원을 담은 태평무, 불교적 토속적 음악이 깔리는 가운데 꽃을 든 낭자들이 꽃의 바다를 이룬 화현, 앉은반 사물놀이패의 경쾌한 소리빚기가 이어졌다.
때로는 얼음을 밟듯 느리게 때로는 천둥번개가 치듯 빠르게 무대를 휘어잡으며 빚어진 장고춤, 서민의 애환을 한으로 삭여두지 않고 해학적으로 풀어헤진 엿가위춤이 펼쳐질 때는 객석은 들썩들썩 어깨춤이 살랑이고 웃음꽃이 만발하기도 했다.
북가주에서 지난해 첫선을 보여 선풍적 인기르 모았던 풍고춤은 올해도 경탄을 자아냈다. 지난해 낭자군 8명으로만 구성됐던 풍고춤은 올해 청년 넷이 가세, 12명으로 그 규모와 울림을 더했다. 고정된 북을 중심으로 사람이 움직이는 전통적 북춤과 달리 북을 움직이며 소리를 실어나른 북춤의 묘미에 청중들은 쉴새없이 박수를 치고 탄성을 질렀다. 마무리 때는 북의 낭자들과 청년들이 객석앞 청중들 손을 이끌고 무대로 올라가 한바탕 어울림 춤으로 신명만점 2부순서를 맺었다.
<제3부> 북가주 한인사회 문화지킴이들의 신명잔치
예년과 마찬가지로 제3부는, 중국계 소림무술 찬조출연 말고는, 북가주 한인사회판 우리들의 솜씨자랑 형식이었다. 그 첫 마당을 장식한 이스트베이한미노인봉사회 합창단은 선구자를 불렀다. 마치 말달리는 만주벌판의 옛 우리여인들의 풍고공연에 뒷장단을 맞추기라도 한 선곡이었다. 우레같은 박수에 이어 찬송가 이 믿음 더욱 굳세리를 부른 뒤 하단하자 KAWAWA 어린이들의 태권도시범과 고전무용 공연이 펼쳐지고, 쿵후시범을 지나 절반의 코리안 미국방외국어대 군인학생들을 부채춤으로 시선을 모았다.
이어 북가주 젊은 코리안 힙합듀오의 진짜 빠른 랩으로 영 파워 쪽으로 쏠린 축제장 모드는 대학최강 UC버클리 태권도시범단의 시범으로 그 절정을 이뤘다. 뒤이어 옹경일 정혜란 김일현 씨가 손수 또는 지휘아래 고전무용 세마당을 펼친 뒤 강강술래로 4시간여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연인원 약 2,500명 운집
○…매번 그렇듯이 이번에도 축제참가자 숫자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그냥 지나친 과객들(?)을 제외하고 한두 프로그램이라도 즐기단 간 유동청중까지 합치면 대략 2,500명가량 될 것으로 추산된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특히 중앙국악예술단이 무대를 장악한 2부 순서에서는 줄잡아 1,200명정도가 일제히 시선을 무대에 고정시키는 등 매우 높은 집중도를 보였다. 한국의날 민속축제 초기부터 10년이상 빠짐없이 참가했다는 S씨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올해 참가자가 가장 많은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채양순 교수가 인솔하는 중앙국악예술단(의 중앙대가무단)이 이번 축제에 참가하기까지는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채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이달초 중국 순회공연을 마친 뒤 15일(한국시간) 개막된 서울무용제 개막공연을 했으며, 바로 다음날 SF행을 강행했다. 무용단은 16일(SF시간) 오전 8시쯤 SF공항에 도착해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분장을 시작하는 등 공연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단원들은 특히 항공기가 기류변화로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등 파김치 상태였음에도 행사장으로 직행, 리허설을 하고서야 탈의실로 향하는 프로근성을 보여줬다. 이들은 행사뒤 오후 4시에야 점심을 먹었다.
○…일본의 타이꼬를 능가하는 풍고는 채향순 교수가 기마민족 한국여인상을 되살리기 위해 오래전에 고안해 4년전부터 1년6개월가량 피눈물 나는 훈련끝에 2년반 전에 비로소 무대에 올렸다. 풍고는 광야를 바람처럼 질주하는 여인상을 연상하도록 ‘바람 풍’ 자를 넣었다. “남자처럼 말 타고 활 쏘고 활기있게 살았던 우리 (선조)여인들의 기상을 북춤으로 재현하기 위해” 고심하다 이 착상을 하게 된 채 교수는 “타악기 연주자는 움직임에 좀 문제가 있고 해서 아예 무용하는 학생들에게 북을 가르치기로 했다”며 “대고와 중고가 베이스를 깔아주면 더 좋은 데 여건상 옷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도 풍고 인기가 대단해 21일 공연이 예정돼 있고, 10월13일에는 경주에서 열리는 신라문화제에 100명이 풍고춤을 공연한다”고 귀뜀했다. 한편 채 교수의 제자이자 단원대표인 이혜경 양(중앙대 무용학과 4학년)은 체력훈련을 따로 하느냐는 질문에 “연습 자체가 훈련”이라며 “선생님 작품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상항한미라이온스클럽(회장 유석희) 부스에서는 라이온스클럽 소속 의료진 유고명 내과전문의, 최은환 한의사, 서명수 약사, 류원석 척추신경전문의 등과 UCSF 치과대와 약학대에 재학중인 한인 학생들이 공동으로 당, 혈압 측정, 독감주사 등 당일 한국의 날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무료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당일 행사는 예년과 비교해 원활한 진행이 돋보였다는 평가다. 프로그램과 프로그램 사이의 연결이 차질 없이 진행됨으로써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이 계속적으로 교체되면서도 자리가 메워져, 오후 3시경 행사가 끝날 무렵에도 빈 객석이 거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또한 예년에 비해 외국인 관객들의 비율도 눈에 띄게 증가해 한국의 날 민속축제가 한인들만의 축제가 아닌 명실공히 한인의 존재와 한국의 문화를 미 주류사회 속에 알리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특별취재팀-정태수•김철민•신영주 기자>
특집(제14회 한국의날 민속축제)
한국의날 민속축제 ‘옥의 티’ 셋’
지난해 대규모 중앙국악예술단의 특별공연으로 단숨에 수준이 업그레이된 한국의날 민속축제는 올해도 그 상승기류를 이었다. 대화합 대합창 같은 깊은 뜻이 담긴 프로그램도 마련돼 마냥 놀자판 축제가 아니라 의미있는 여운이 남게 한 것도 좋았다. 그러나 몇가닥 아쉬운 구석들은 이번에도 재연됐다.
우선 한인들의 자발적 참여가 역대 어느때보다 많았지만 주최측의 기대보다는 적었다. 9월 어느 토요일에 한국의날 민속축제가 열린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미므로 새삼스레 홍보부족을 탓할 수는 없다. 국악분야의 대한민국 국가대표 중앙국악예술단이 2년 연속 특별 무료공연을 한다는 사실 또한 알려질 만큼 알려져 이제와서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인 줄 알고…” 식으로 둘러대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그 탓의 가장 큰 몫은 한인들의 자발적 참여의식 결여로 돌릴 수밖에 없다. 축제참여 외면이 갖는 의미는 그저 “노는 자리에 빠진 것” 차원을 넘어선다. 김홍익 SF한인회장은 “외국인들(타커뮤니티 사람들)이 예년보다 많이 와줘서 숫자는 (역대 한국의날 축제 중) 가장 많았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인들이 2, 3천명은 모여야 되는데…”라며 “지금은 우리가 주의원이다 시장이다 주류사회 인사들을 초청하려고 애를 쓰고 하지만 (한인들이) 그렇게 많이 모이면 (그들은) 초청 안해도 제발로 찾아오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한인사회의 권익신장도 이뤄지는 것 아니냐”고 아쉬워했다.
둘째는 안정적 재원확보 문제다. 이 역시 고질적인 숙제다. 이번 행사 총예산의 8만달러 중 16일 현재 확보한 예산은 6만5,000달러가량이다. SF한인회 김신호 부회장은 “약정된 후원금 중 미수금이 1만5,000여달러정도 된다”고 밝혔다. 모두 걷힌다면 겨우 적자를 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축제의 꽃 중앙국악예술단의 무료공연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이는 수만달러 적자가 불기피한 상황이다. 한인회의 고질적 재정난은 한인회 임원들이 보다 큰 그림을 갖고 봉사하기보다는 닥치는 행사 재원마련을 위해 활빈당(?)처럼 돌아다니게 만드는 등 제구실의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는 단체간 사전조율을 통한 겹치기행사 지양 문제다 다른 행사는 몰라도 한국의날 민속축제와 같은 큰 행사 때는 다른 단체들이 행사를 자제하는 등 힘 모으기 풍토조성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행사의 분산이 참여인원 축소를 불러오고 나아가 각 행사의 집중도를 떨어뜨린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특별취재팀-정태수 김철민 신영주 기자>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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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고를 울려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한국의날 민속축제(16일•SF유니온스퀘어)에서도 풍고(風鼓)춤 공연이 압권이었다. 말달리며 활쏘며 바람처럼 광야를 질주했던 태초의 한민족 여인상을 북치는 소리와 북치는 동작에 담아낸 풍고춤은 광장을 가득 메운 청중을 단숨에 사로잡으며 이날 축제 하이라이트인 2부 중앙국악예술단 특별공연의 대미를 화끈하게 장식했다. <정태수 기자>
깨어남 위한 용틀임
제14회 한국의날 민속축제(16일•SF유니온스퀘어) 성황
★관련기사 및 화보 3,4,5면
하나됨 위한 어울림
▼대화합 대합창 1부 마지막 순서 대화합 대합창 또한 별미였다. 이런 류의 행사에서 주로 근엄한 인사나 축사를 한 뒤 객석의 구경꾼에 머물곤 했던 단체장 기관장 등 유력인사들이 무대의 노랫꾼이 되어 한국어로 <도라지> 영어로 <갓 블레스 아메리카>를 함께 부르며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인 ‘우리는 하나’임을 웅변했다. SF소년소녀합창단의 선창속에 이뤄진 이 깜짝화음에는 마크 레노 주하원의원 등 외빈들도 기꺼이 합류해 그 깊은맛을 더했다. <김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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