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이 불과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국회의사당에 행차하는 일은 드물다. 그런 부시가 체니 부통령과 함께 그저께 의사당을 찾은 이유는 ‘적군전투원’들을 심문하고 재판하는 방법의 제안을 부시의 뜻에 맞게 통과시킨 하원 군사위원회를 격려하고 상원 군사위원회도 그리하라고 ‘로비’를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 일정 등을 위해 백악관으로 돌아간지 불과 몇 시간만에 상원 군사위원회는 부시 안을 일축하고 부시가 반대하는 존 맥케인 의원의 대체입법을 15 대 9로 승인하여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를 당황케 만들었다. 11월 중간선거전에 있어서의 공화당 전략은 부시가 지지하는 법안의 통과를 이룩하여 민주당과의 (대 테러전에 있어서의)차별화를 강조하고자 했었던 것인데 그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상원 군사위원회는 13명의 공화당 의원들과 11명의 민주당 의원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당리당략대로만 투표했다면 부시가 선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 법안에 대한 반대에 베시 등 전 합동참모의장과 같은 퇴역 장성들만 아니라 심지어는 부시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 장군까지도 동조하는 가운데 네 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에 가세했기 때문에 생긴 이변이다.
애리조나 출신 존 맥케인, 버지니아의 존 워너,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린지 그래함, 그리고 메인의 수잔 콜린스 의원이 그 네 사람이다. 그들은 전쟁포로에 대한 국제조약인 제네바 조약(Geneva Convention) 중 제3조를 미국법에 의해 희석시키거나 변경시키려는 부시 행정부의 노력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적국들의 미군들에 대한 흡사한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인권존중 전통의 미국의 가치관을 뒤엎어 미국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기 때문에 국익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다.
9.11 사변이라는 미국 초유의 대사건에 직면해서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부터 알 카에다 테러분자들과 탈레반 정권의 무장병들이 생포되면 전쟁포로라 부르지 않고 ‘적군전투원’이라 불러 1950년부터 발효한 제네바 조약 제3조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예를 들면 3조 1(a)나 (c)항에서 금지되어 있는 잔인한 대우와 고문,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학대가 일부 군인들의 소행이라고는 하지만 이라크의 아브 그라이브 감옥에서 자행되었던 게 폭로되었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도 4년 이상 변호사들의 접견마저 금지된 상태에서 아직까지 재판도 없이 구금되어있는 테러 혐의자들이 몇백 명 된다는 사실이 미국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
부시 정부는 CIA가 운영하는 외국 감옥에서의 테러 혐의자들 심문과정을 미군의 테러 혐의자들의 심문과는 달리 죽이지만 않는다면 waterboarding 이라고 물에 빠트려 죽이려하는 느낌을 주는 심문수법이나 발가벗겨 수치감을 느끼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심문하는 것을 의회에서 법으로 허용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에 9월15일자 워싱턴 포스트 사설의 부제목은 ‘대통령이 고문을 위한 로비를 하기 위해 의사당에 가다’라고 되어 있다.
맥케인 의원은 월남전 당시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기 추락으로 월맹의 포로가 되어 5년을 고생한 사람이라 제네바 조약을 어기는 나라들이 포로에 대해 얼마나 가혹할 수 있는가를 몸소 체험한 사람이다. 또 워너 의원도 2차대전과 한국전 참전용사로서 해군 장관을 지냈었고 상원의원을 거의 30년 가까이 역임한 군사전문가다. 그래함 의원은 공군 법무관 출신의 대령으로 미국 대법원이 관타나모 수감자들 사건에서 얼마 전에 판시 했듯이 부시 정부가 의회의 입법도 없이 테러 혐의자들을 군사재판단에 의해 재판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진작부터 주장한 사람이다. 수잔 콜린스 여 의원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의 뜻을 어기고 매케인 의원이 주도한 대체법안에 찬표를 던짐으로써 큰 용기를 보였다. 의회의 휴회 일정 등으로 11월 선거까지는 안 되겠지만 이 문제의 궁극적 귀결은 포스트 사설의 제목처럼 “미국을 정의 내리는 순간”이 될 것이다. 부시의 선호하는 바가 법이 되면 파월의 주장대로 미국이 테러리즘과 싸우는 도덕적 근거를 세계가 의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맥케인 법안이 성공한다면 미국은 불량국가들을 흉보면서 닮는다는 비난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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