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음회·와이너리 방문때 맛보는 요령
주는대로 마시다간 금방 취해… 한모금 입에 넣고 맛 평가후 삼키지 말고 발사
얼마나 멋지게·깨끗하게·확실하게 타구에 명중시키는지 전문가끼리 경쟁도
와이너리의 테이스팅 룸을 방문하거나, 와인 시음회에 가보면 테이블 위의 와인 병과 글래스들 옆에 반드시 큼직한 통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와인을 시음한 후 남은 것을 따라버리거나, 삼키지 않고 뱉어내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타구(spittoon)로 어떤 시음회에서든 절대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도구이다.
‘아니, 피 같은 와인을 아깝게 왜 버리지?’ 혹은 ‘와인을 뱉어내면 어떻게 맛을 느끼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왕초보 아마추어. 우리는 모든 음식의 맛(단맛, 짠맛, 신맛, 떫은맛, 매운맛 등)을 혀로 느끼기 때문에 꼭 목으로 넘기지 않아도 맛을 평가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는 사실과, 시음회 같은 곳에서 따라주는 와인마다 모두 다 마신다면 아무리 술이 센 사람도 얼마 못 가 취해 버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파 밸리를 방문하여 와이너리들을 돌아다니게 되면 한 곳에서만 보통 5~6가지의 와인을 맛보게 된다. 각각 아주 적은 양을 따라주지만 그래도 알콜에 약한 사람은 5~6모금에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식으로 서너군데를 돌면 만취하는 것은 물론이요, 더 이상 와인 맛도 잘 못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음주운전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LA일원에서는 전문가 혹은 애호가들을 위한 시음회가 자주 열리는데 수십 혹은 수백 종류의 와인이 등장하는 이런 행사에서는 훨씬 더 전문적으로 와인 버리기를 수행해야 한다. 이때 우리 같은 반전문가들은 한 모금 맛보고 나머지를 따라버리지만, 와인 판매상이나 소믈리에 등 진짜 전문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와인을 맛본 후 목으로 넘기지 않고 뱉어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다 뱉어낸다 해도 어느 정도 입안에 남아있는 와인 때문에 완전히 취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서, 한 전문가에 의하면 30회 시음하고 나면 와인 한 글래스를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느끼게 된다.
따라서 와인을 얼마나 잘 뱉어버리느냐 하는 기술이 또 전문가들 사이에선 연륜을 따지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도 한다. 시음할 때 서로 안 보는 척 하면서 곁눈질로 얼마나 깨끗하게, 멋지게, 확실하게 타구에 명중시키느냐를 잰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종의 와인을 맛본다는 유명한 와인비평가 로버트 파커와 잰시스 로빈슨 같은 사람들은 이 방면에서 ‘장인’ 평가를 받을 만큼 예술적인 경지에 달했다고들 한다.
그러면 어떻게 뱉어야 잘 뱉는 것일까? 잰시스 로빈슨은 그녀의 책 ‘맛보는 법’(How to Taste)에서 와인을 뱉는 일은 침 뱉는 일과는 달라서 전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므로 스타일리시 하고 우아하게, “긍지를 갖고 뱉으라”(Spit with pride)고 말한다. 충분한 양의 와인을 한모금 입에 머금고 맛을 고루 느낀 후 타구를 향하여 거침없이 발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타일리시 하고 우아하게 뱉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입가에 흘리기도 하고, 사방으로 튀기도 하고, 심한 경우 목표물에 명중하지 못하는 낭패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집에서 물이나 다른 음료수를 가지고 연습하는 일이 업계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와인을 뱉을 때 나 개인적으로 가장 불편한 부분은 수많은 사람이 뱉어낸 와인 위에 나도 뱉어내야 하는 약간의 역겨움이다. 재작년에 히트한 영화 ‘사이드웨이즈’에서도 가장 엽기적인 장면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주인공 마일스는 자기 책의 출판이 거부된 사실을 들은 후 한 테이스팅 룸에 들어가 시음용 와인을 따라주는 대로 벌컥 벌컥 마시고는 더 달라고 한다. 와인 서버가 안 된다고 하자 “돈 내면 될거 아냐”라며 분노를 폭발시킨 그는 옆에 놓여 있던 와인 타구를 집어들고 마구 들이켜 얼굴과 온 몸이 와인 범벅이 되는 장면… 으~~ 다행히 와이너리에 있는 타구는 보통 입에서 뱉은 와인보다는 잔에서 따라버린 와인으로 채워지게 마련이지만 어쨌든 대단히 끔찍했던 씬이다.
한편 타구는 특별한 용기가 아니다. 그릇, 통, 병, 무엇이든 와인을 버리기 쉽게 입구가 넓은 용기면 된다. 혹은 각자 작은 컵을 준비하여 필요할 때 사용해도 되고, 심지어 시음 테이블 가까운 곳에 싱크대가 있다면 거기에 직접 버리거나 뱉어도 상관없다.
그리고 한가지 기우에서 덧붙인다면 아무리 취했더라도 보르도 그랑크루 샤토 마고나 오브리옹 같은 와인을 시음할 때 뱉어내거나 따라버리는 일은 와인세계에서 ‘범죄’에 해당된다는 사실이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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