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최규용 <메릴랜드대학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금년 여름 약 2개월간 대전에 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AIST)을 초빙교수로 방문하여 대학원 특강을 하고 화학기술연구원 30주년 기념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하여 ‘한국화학산업의 성장동력을 찾아서’라는 주제의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전세계는 바야흐로 국제화의 도도한 파도가 거의 모든 나라에 몰아쳐서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특히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변화는 현기증이 날 정도이며 특히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은 주변 국가들은 물론 전세계의 경제 판도를 머지않아 뒤집어 놓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가 주변국, 특히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니 그 원인은 한국의 산업 구조가 고유의 원천핵심 기술에 기반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외국에서 도입했거나 모방한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중국의 저가 공세와 일본 및 미국의 고도 기술 공세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와 산업체에서 최근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여 나노기술과 생명공학 기술 분야에서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다소 위안이 된다 하겠다. 정부나 산업체, 연구소, 대학 등에서 앞으로 한국의 경제 성장을 유지할 동력(Growth Engines)을 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어서 화학산업만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화학산업은 이미 중국 등 제3세계 국가로 이전하기 시작한지 오래이고 전자 및 소재 산업 역시 한국, 일본, 중국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미국에서는 생명과학, 의료과학, 에너지, 국방 기술 등을 새로운 국가산업 성장동력화 하고 있다. 이밖에 다른 나라들 역시 산업 및 경제 발전을 위한 국가 정책은 오십보 백보일 뿐 그리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 필자의 관찰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들의 사활을 건 경쟁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적자원의 수준과 역량이 경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이 과학과 기술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은 전세계적인 추세이며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 공학을 공부하기보다는 미래가 보장되는 의사, 변호사 등을 선호하게 되는 경향의 결과인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여전히 이공계 대학의 학생수는 많으나 과거에 비하여 학생들의 질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는 것이 한국 대학들과 대학 졸업생들을 고용하는 산업체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점점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과학 기술인력의 질적 저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향상의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 공교육에 절망한 부모들은 막대한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면서 자녀들을 미국, 호주 등 영어권 국가로 유학 보내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그러한 능력이 없는 부모들은 자녀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우울한 소식이다.
한국의 대학과 연구소, 산업체의 국제화(Globalization) 정도 역시 전혀 만족스러운 상태가 아니며 정부나 다른 기관들 역시 대동소이할 것이다. 현대식 건물과 고급스러운 자동차, 식당, 명품 바람, 영어 잘하기 등이 국제화가 아님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영어마을이라는 것을 만들어 원주민 영어교사(한국에서는 백인 영어교사를 이렇게 부른다)들을 고용하여 학생들을 하루 종일 영어로 생활하게 하여 국제화 시대에 대비한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백인들로만 구성된 도시나 사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 피상적인 개념의 영어마을이라 하겠다.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유럽인, 인도인 등이 적절히 섞여 있는 영어마을을 만들어야만 진정한 국제화 영어마을이 될 수 있으련만 ‘영어는 오로지 백인에게서 배워야 정통이다’라는 비 국제화적이고 평면적인 사고가 빚어내고 있는 다소 희극적인 결과가 아닌가 한다. 앞으로 국제화에 대한 인식을 보다 넓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러한 힘든 국가적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지금 조기유학의 형태로 미국에 와서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다니는 우리 2세들에게 큰 희망을 걸고 싶다. 왜냐하면 그 동안 이들 조기 유학생들은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1.5세, 2세와 함께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이공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그 숫자 또한 매년 늘고 있는 추세이며 놀랍게도 이들은 탁월한 성적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은 극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한국 부모들의 희생적이고도 열성적인 교육열 앞에 공부를 게을리 할 자녀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기업들도 다국적기업이 아니면 생존하기 어려운 본격적 국제화시대가 올 것이므로 이들 우리의 2세들이 공부를 마치고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활동하게 되면 이들이야말로 고급 인력으로서 큰 활약을 하게 될 것이다. 즉, 한국은 미래의 고급 인력을 미국에서 조용히 기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수천 명에 해당하는 이들 학생들이 고국을 떠나 열심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이들을 위하며 수많은 부모들이 이산가족이 되어 큰 희생을 하고 있다. 한국에 가보니 소위 기러기 아빠가 도처에 수없이 많이 있는데 이들이야말로 인생에서 아이들과 부인들과 함께 재미있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나날들을 외로움과 경제적 부담감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들은 말도 잘 안 통하는 미국에 와서 오로지 자식의 미래를 위하여 개인적 즐거움을 모두 뒤로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러기 가족들의 자녀는 앞으로 모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크나큰 인재로 발전할 것이니 거기에서 큰 위안을 받게될 것이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기러기 어머니들은 앞으로 모국의 경제성장 동력을 길러낸 공로로 언젠가는 애국자상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인만큼 더욱 힘내시기 바란다. choi@eng.umd.edu
최규용 <메릴랜드대학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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