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의 악몽인 9.11 사변의 5주년이 되었다. 기껏해야 종이상자 찢는 도구인 박스 커터를 소지한 알 카에다 테러분자들이 그날 아침 미국 기술의 최고 상징 중 하나인 제트 여객기 넷을 점령하여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드 트레이드 센터 쌍둥이 빌딩을 뚫고 들어가 폭삭 주저앉게 만드는 동시에 미국 국방력의 총 본산인 펜타곤의 한 벽을 박살나게 했고, 불행 중 다행이라고 백악관 아니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던 네 번째 비행기는 승객들의 저항으로 펜실베니아의 시골에 추락한 상상을 절하는 사건이라 사변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소방관들을 포함한 사망자들만도 3천 가까이 되는 이 참사 이후 미국은 완전히 달라졌다.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전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알 카에다 분자들에게 근거지를 제공했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한 2002년 부시의 전쟁은 명분도 뚜렷했고 탈레반 정권의 조기 몰락으로 결과도 뚜렷했기에 미국인 대다수의 지지를 받았었다.
그러나 부시가 2003년 사담 후세인 지배하의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결정한데 대해서는 애당초부터 반대와 회의를 표명한 사람들이 있었다. 부시가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사담의 대량살상무기(WMD) 생산 및 보유설과 알 카에다와의 관련설의 증거가 박약한 때문이었다. 부시 정부는 국론과 의회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정보 부풀리기까지 서슴지 않았었지만 WMD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서는 사담 독재에 종지부를 찍어 이라크의 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는 명분으로 바꿈질을 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 부시는 기자들의 질문에 신경질적으로 답하면서 이라크와 9.11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음을 시인했다.
이라크 전쟁을 처음에는 열렬히 지지하던 보수층 논객들 중에서도 그 전쟁을 실패로 규정하면서 속히 미군 철수가 있어야 된다는 사람들마저 생겼다. 문제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면 이라크가 시아파, 수니파, 그리고 쿠르드 족속들의 세 나라로 분열되면서 지금보다도 더 심한 유혈의 전쟁터로 변모될 가능성에 있다.
워낙 근본적으로 2003년 미국 점령 이래로 미군들만 거의 3,000에 육박하는 사망자들을 보게된 것이 아니라 4만인지 5만인지로 추산되는 이라크 사람들의 희생자들 수가 알려주듯이 이미 이라크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내전에 가까운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의 잠행지와 훈련기지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소위 진퇴양난의 어려움이다.
민주당이 적어도 하원에서는 다수당이 될 것이라는 금년도 중간선거 예상 앞에서 부시와 체니 등은 이라크 전쟁을 이슬람 파시스트들에 대한 전쟁의 일환으로 묘사하면서 조기철군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히틀러와 유화하자고 주장한 사람들과 비교하는 등의 다분히 선동적 공세를 가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국내 생활 여러 부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이사하면서 운전면허증을 발부 받아본 사람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또 국가안전기관(NSA)에서는 테러방지를 명분으로 시민들의 전화를 도청하고 있다. 물론 모든 시민들의 통화내용을 도청하는 것은 아니고 외국의 테러 지지기관들이나 개인들과의 미국시민들의 전화만 그리 한다는 것이지만 법원의 명령 없이 대통령령으로만 도청하는 것이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을 위배하는 것이냐는 이슈가 법원에 계류중이다.
또 알 카에다 테러분자들이라지만 CIA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외국 감옥에 오랫동안 분산 수용하면서 고문 아니면 고문에 가까운 방식으로 심문한 것에 대해서도 미 국내법과 국제법을 어긴 것이라는 비난도 있다.
부시가 노동절 전후에 그 같은 혐의자들 14명을 쿠바의 관타나모 소재 미군 운영 수용소에 이감시키면서 적어도 미군 당국이 혐의자들을 심문하면서 고문이나 가혹행위는 않겠다는 펜타곤 지침을 같은 날 발표케 한 것으로 보아 이 문제도 9.11 사변 후유증의 하나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9.11과 비슷한 악몽의 재발이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있다.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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