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성 가주문화대학 학장(왼쪽)과 버클리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문열 작가.
“작품속 주인공은 전부 나 자신”
정치적 시비 피해 온 버클리서 8개월간 작품활동 몰두
요즘 관심사는 ‘구원’… 이스라엘 전쟁사로 결말볼 것
이문열 작가는 마감에 쫓기고 있었다.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하고 있는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처형자로서의 인간이란 뜻의 라틴어)의 마감을 10일 뒤로 미루고도 마음이 편치 않은 듯했다. 1년간 피난차 온 이곳 버클리에서도 그는 작가의 짐을 벗어놓지 못한 채 ‘나 때문에 계간지 발행이 늦어졌다’며 미안해했다. 차학성(가주문화대학) 학장과 마주앉은 작가는 최근의 관심사를 쏟아놓으며 한 걸음 멀리 떨어져 바라본 한국사회와 민족주의의 위험성을 논했고, 속내를 보이며 버클리에서의 생활을 풀어놓았다.
▲‘시인’ 전율이 오는 작품
차학성 학장의 손에는 작가의 91년 작품 ‘시인 The Poet’(Harvill 출판사)의 영국판이 들려 있었다. “흥분되고 전율이 오는 작품이다. 김삿갓을 패러디한 이 소설은 시와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이 작품은 작가가 만족도 성취도 면에서 꼽는 세 작품 중의 하나. “내 삶에 아프게 닿아 있는 부분이 많다. 먼저 펴낸 ‘영웅시대’의 출간과 관계된 시비(반공소설이다, 사회주의를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아버지를 부인했다)로 김삿갓이 떠올랐다. 8여년 자료조사 끝에 내놓은 작품이나 한국에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오히려 프랑스, 영국, 스페인, 그리스, 네덜란드, 중국에서 번역 출간됐고, 독일에서 곧 나올 예정이다.” 차 학장은 곳곳에 잘못된 번역을 지적했고 작가도 ‘백수’(白手, 벼슬 없이 지내는 한량)란 뜻이 ‘흰머리’(gray hair)로 오역됐다며 웃었다.
▲버클리에 있는 건지, 한국에 있는 건지…
작가는 버클리에 온 지 8개월이 다 가도록 작품활동에만 몰두해 “내가 버클리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요세미티 국립공원도 못 가봤단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동포들과 첫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적이 있다. SF 한글사랑(회장 윤무수) 주최 강연회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문학과 인생에 대해 털어놓았다. 누구는 커밍아웃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고, 누구는 처음 작가에 듣는 이야기라며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떠했을까. “서먹했다. 감정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날 서로 모른다는 경계심이 해소됐다.”
적잖은 정치적 시비에 말려 버클리로 피난 왔다는 작가는 “내가 정치할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끼어들었다”며 “작가로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뻔한 말들이 생각이 안나 사전을 뒤적인다는 그는 50대 후반, “제대로 작가하기에 10년이나 남았을까…”
▲여기까지 와서 뭘
그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버클리로 왔다. 와 보니 거리가 생긴다. 신문 방송에서 대여섯번 시비와 간섭에 휘말릴 유혹을 해왔지만 사양했다. “여기까지 와서 뭘” 하는 마음이 그를 주저앉혔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부인의 자수전 전시 관계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일침을 놓기도 했다. 가까이 가서 보면 흘러가는 모양새에 심기가 불편해지는 가보다. 그가 미국으로 날아온 부차적인 희망들은 2, 3년 투자해서 통역 받는 답답함에서 벗어나자(그것이 무리라는 것을 여기 와서 알았다)였고, 동양학 해석 기류가 양명학에서 주자학으로 바뀌고 있는 하버드대 동양학연구소에서 주자학 연구(자신의 고향 안동에서 번성)에 몰두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그래서 올 12월까지 버클리에 머물면서 한국으로 돌아갈지 몇 년 더 미국에 머물지를 고민하고 있다.
▲이 곳은 문명의 중심
Pen 문학지 번역을 위해 한국에 한 달간 다녀온 차 학장은 트레이드마크인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네 긴 머리 때문에 더 늙는다”고 하신 어머니의 한마디에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한 효심의 발로였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 있는 듯했다. 지난 2월 UC버클리와 가주문화대학이 공동 주최한 ‘한미시인 교류전’에서 이문열 작가를 만난 후 6개월만. ‘을화’(김동리) ‘북간도’(안수길) 작품을 번역할 계획인 차 학장은 이국 땅에서 모국어로 창작하는 로컬 문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작가는 “SF 문인들은 한국의 10만 지방도시 문인들과는 다르다. 언어적으론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진보적이고 첨단적인 문명의 핵심에 살고 있어 감수성은 중심에 있다. 그런데 살고 있는 곳의 강점을 반영하지 못하고 권위를 부여받기 위해 한국 중앙문단만 바라본다. 글쓰기의 사조는 이 곳이 앞서간다”며 오히려 이 곳의 문학이 한국에 영향력을 미치길 기대했다.
▲우리 역사 다시 보는 계기
올해로 등단 26년째(197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부터 치면 29년째인데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관심은 ‘구원’에 닿아있다. 79년 ‘사람의 아들’의 주제이기도 한 구원은 이제 유대 전쟁사(호모 엑세쿠탄스의 소재)와 만나 결말을 볼 예정이다. 유대 전쟁으로 죽은 숫자 100만, 그 중 로마군은 10만이 죽고 90만은 내전(유대민족끼리의 학살)으로 죽었다. 작가는 “구원(현 문제의 해결) 이 정치적으로 될 때, 더욱이 민족주의란 가면을 쓸 때 위험하다. 오히려 민족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많았다”며 꿰뚫은 유대사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책 장례식’은 지나쳐
작가로서 그를 좋아한 사람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고 해서 돌아서는 것은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한다. 하지만 책 장례식까지 한 것은 지나치다고 했다. 그가 다양한 미국사회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은 넥타이 맨 사람이 없다는 것. “한 달간 지켜봤지만 넥타이 맨 사람을 한 명 봤다. 그것도 장례식에 가던 사람이었다.”
작가도 나이를 들어가는지 화내는 일이 적어졌다. 그리고 그와 반대입장에 섰던 저들도 옳다고 아직 인정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럴 수 있겠구나’ 하며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작품 속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배역은 누구였을까. “전부 나지 뭐. 샤르트르도 보봐리가 나였다고 한 것처럼.”
그는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초한지’를 정리하고 80년대를 개괄할 새 작품도 곧 연재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담=차학성 가주문화대학장
정리/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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