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 국제무도연 후임소장에 안창섭 박사
8일 저녁 이취임식
미국 대학태권도의 아버지•태권도 세계화의 일등공신•태권술(術)을 넘어 태권도(道)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온 ‘참 무도인’ 등으로 불리는 민경호 박사(영어이름 켄 민•UC버클리 국제무도연구소 소장•사진 왼쪽)가 37년만에 일선에서 물러난다.
1969년부터 UC버클리 체육학과 실기교수가 된 직후부터 국제무도연구소(UCMAP)의 탯줄격인 마샬아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를 맡아 최근까지 37년동안 이끌어온 민경호 박사는 그사이 UC버클리 태권도팀을 31차례 미 대학선수권대회 중 27차례나 챔피언에 올려놓는 등 부동의 최강사단으로 단련시키면서 태권도를 미 전역 대학가에 뿌리내리게 한 공로자다. 그는 또 미 태권도협회 창설과 팬암(범미주)대회 정식종목 채택에 앞장서는 한편 김운용 전 대한태권도협회장 등과 함께 태권도의 올림픽종목 채택과 유지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난 7월1일부로 UCMAP 소장직을 후임 안창섭 박사(사진 오른쪽)에게 넘겨주는 공식절차를 끝내는 등 2선퇴진을 위한 준비를 단계단계 밟아온 민 박사는 각종 무도대회에서 UC버클리팀이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뿐만 아니라 동양무도의 기본철학을 정립하고 보급하는 등 이론적 교육적으로도 UC버클리의 명예를 드높인 공로가 인정돼 은퇴이후에도 종신명예교수 대우를 받는다.
태권도 9단, 유도 9단, 용무도 9단, 검도 3단 등 도합 30단의 민 박사 일선은퇴는 본인의 의사에 따라 소리없이 진행돼왔으나 제자를 비롯한 태권도인들과 국내외 체육계 인사들, UC버클리 등 미 대학체육학계 선후배들의 ‘강권’으로 오는 8일 오후 5시 UC버클리 하스파빌리온 클럽룸에서 UCMAP 이취임식을 갖기로 함에 따라 최근에야 외부에 알려졌다. 이취임식은 초청인사 약 1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촐하게 치러진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인생 70년 무도 60년
’참 무도인, 큰 무도인’ 민경호 박사
◇주요 경력 : UC버클리 마샬아츠 프로그램 코디네이터(69년-06년), UC버클리
국제무도연구소장(02년-06년), 환태평양 체육학회 코디네이터(90-06년), 미 태권도협회 사무총장(71-73년), UC계 연합 체육고문회의 주도(72-74년), 가주태권도협회 창설 및 초대회장, 미 대학태권도협회 창설 및 초대 포함 2차례 회장 역임(70-72년, 79-86년),
전미태권도선수권대회 창설, 전미태권도협회 창설 및 1, 2대 회장 역임, 미 올림픽위원회의 태권도공인(78년) 주도, 범미주 태권도연맹 창설 및 초대사무총장 기술위원장 회장 등 역임, 88서울올림픽 국제평가위원, 세계태권도협회 홍보위원 및 대학위원장(79-05년), 입법위원장 및 집행위원(현), 국제심판시스템 개선위원장(현), 미 올림픽위원회 유도분과위원,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86년) 및 07방콕 유니버시아드 정식종목 채택 주도, 세계용무도협회 미주담당 부회장…
◇주요 연구 : 제1회 국제체육학회(2000년) 특강 등 500여차례 강연. 태권도 사범 지도교안 발간(3회) 등 숱한 저술활동…
◇주요 수상 : 미 대학태권도협회 ‘올해의 감독상’(4회), 미 대학유도협회 ‘올해의 감독상’(1회), 용인대 ‘뛰어난 동문 50인상’(03), 민경호 박사 기념 UC버클리 석좌제도 시행(한국정부 주관, 95-0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02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 표창 ‘활동적 삶의 상’(06년), 전미고단자협회 제정 제1회 명예의 전당상(06년), 북가주무도인협회 제정 제1회 명예의 전당상(06년)…
지도자로 학자로 행정가로, 스포츠 분야에서 그는 선수 말고는 안해본 것이 거의 없다. 가주협회에서 미국대학협회에서 미국협회에서 미주협회에서 세계협회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태권도에 관련된 단체에서 그는 발을 딛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북가주무도인상 미주무도인상 미국대통령상 대한민국국민훈장 등 안받아본 상도 거의 없다.
자연나이 70년, 무도인생 60년을 살아오면서, 특히 미 대학최강 UC버클리 무도프로그램 책임교수로 37년동안 봉직하면서, 그는 숱하게 언론지상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아직도 덜 알려진 일화들이 주렁주렁이다. 그만큼 많은 일을 겪고 헤쳐온 삶의 궤적 탓이다.
태권도 9단(91년) 유도 9단(04년) 용무도 9단(06년) 연도까지 까마득한 검도 3단 등 도합 30단의 ‘참 무도인, 큰 무도인’ 민경호 박사-.
’태권도의 모든 것’ 또는 ‘모든 것이 태권도’인 듯한 그의 타고난 무도혈액형(?)은 본래 유도였다. 일본유학생 출신이었던 그의 부친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유도사나이였다. 1935년 황해도 신천 태생으로 10세까지 일제하, 한국 고유무도(술)를 억압하던 시대였다. 인천고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처음 만난 무도 역시 유도였다.
이후 그의 55년 삶에서 전부도 아니면서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 태권도와의 만남 또한 유도부 가입 덕분이었다. 태권도부와 한 도장을 쓰게 돼 ‘소년 민경호’의 무도호기심을 더욱 자극한 것이었다. 유도 태권도 실력이 느는 만큼 합기도(또는 한기도, 지금의 용무도) 실력도 쑥쑥 자랐다, 용인대(당시 유도대학)에서도, 군대에서도.
‘유도혈액형’ 안고 태어나 월드태권도 거인으로 우뚝
UC버클리 제자만 2만5천여명…“무술 아니라 무도”설파
1963년 조지아주로 유학을 오면서 학비벌이 밑천으로 맨주먹 무도실력만 가져온 그가 허허벌판 몬태나로 옮겨 체육행정 공부와 ‘무도 알바’를 계속한 끝에 UC버클리 무도담당 실기교수로 채용된 것은 본인 표현을 빌면 액시던트(accident•우연한 사고)였다. UC버클리 체육학과 무도담당 실기교수직은 당시까지 일본계의 아성. 그래서 일본계 교수는 설마 하며 귀국했는데 하필 일본계의 든든한 ‘빽’ 학과장마저 안식년 휴가로 신경을 놓은 상태. 그 사이에 민 박사가 동부 어느대학으로 가다말고 명문 UC버클리라니까 안되겠지 하면서 여차로 원서를 넣어봤다가 덜컥 붙은 것이다.
민 박사의 회고.
몬태나에서 나한테 태권도를 배운 교수한테 부탁해서 추천서를 받았는데 이 양반이 그걸 아주 잘 써준 모양이야. 나중에 알고보니까 이 양반하고 버클리 학과장대리가 아주 친한 사이야. 그래서 인간관계란 거 그거는 아는 거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뭐를 하든 정직하게 노력해야겠다, 그런 걸 실감했어요. 나야 그때 그거 말고 더 있었나, 연줄이 있어 뭐가 있어.
UC버클리에서 길러낸 무도제자들암 2만5,000여명을 헤아린다. 변호사 금융가 교수 등등 세계 각국각처에서 활약하는 제자들도 세월의 때를 타 “나보다 더 늙어보이게 머리가 희끗희끗한 친구들도 많아. 오래 하긴 했나봐”라는 민 박사의 말 그대로다. 제자들은 지난해 칠순잔치를 그냥 넘기려는 민 박사의 고집을 꺾고 미국 각지에서 몰려들어 근사한 생일상을 차려올렸을 만큼 도복 띠보다 더 단단한 사제간 정의 띠를 졸라매고 있다. 민 박사가 입만 열면 강조하는 무도지론에서 그 숨은 그림이 살포시 드러난다. “태권술이다 유술이다 안하고 길 도(道)자를 붙이는 이유를 생각해봐. 싸움질하는 걸 가르치는 게 인간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의미가 거기 함축돼 있어요.”
태권도의 팬암게임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 태권도 세계화(현재 182개국에서 수련생 1억명 육박)에 끼친 그의 공적은 나열조차 어렵다. 유도인으로 출발해 태권도로 세계가 주목하는 큰 획을 그은 그는 바로 그점 때문에 서울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앞만 보고 여기까지 달려왔지. 이제는 좀 정리를 해야겠어. 안그래도 자료를 뒤지다보니 내가 그때 이런 생각도 했었나, 이런 일도 했었나 하는 게 많더라고. 그리고 동서양무도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도 좀더 공부를 해야겠고…”
여전히 빡빡한 계획표를 갖고 있는 민 박사는 유학시절 만난 부인 앤 D. 케일러 여사와 함께 엘소브란테에 살고 있다. 스탠포드의대를 졸업한 맏딸 재선 씨는 미해군 항공모함 소속 조종사담당 군의관으로 복무했으며, 사위는 핵잠수함장(대령)이다. 민 박사의 아들 관홍 씨는 UC버클리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기업•언론사 등에 근무하다 늦깎이 법학공부를 시작해 올해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편 민 박사로부터 UC버클리 국제무도연구소 지휘봉을 넘겨받은 안창섭 박사(태권도 6단)는 용인대 를 졸업한 태권유학생 출신으로 화와이대에서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 11년1개월만인 지난해 12월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해나가면서 크레딧을 쌓겠다”며 손사래를 저었다. 좀체 입에 발린 소리를 못하는, 그래서 너무 깐깐하다는 소리를 듣느 민 박사는 그를 보고 “안 선생 만나면서 내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 잘 할 거야”라며 껄껄 웃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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