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쿠바는 반세기 동안 철천지원수로 지내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가장 근접해 있으면서 쿠바는 중장거리 미사일 위협(1961)을 가했고, 대통령을 암살(1963) 했으며, 중남미의 반미 좌파세력을 선동하면서 치명적 타격을 가해왔다.
미국 정부의 보복은 은행송금과 경제제재로 맞대응 했으며 반 카스트로 방송과 국제적인 고립을 압박했다. 눈엣가시 같은 카스트로 제거를 위해 CIA는 시거에 폭탄을 장치했고, 밀크쉐이크에 독약을 투입하고, 공습 등 638번에 달하는 집요한 암살계획을 수행해왔다.
‘9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라는 별명이 붙은 80세의 그 카스트로가 장출혈 수술을 받은 후 위암 치료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이다.
쿠바의 이미지는 곧 카스트로이고, 카스트로는 쿠바다. 절대 독재자의 카리스마로 지난 47년간 공산주의 해방운동가로 널리 알려졌다. 카스트로의 퇴장은 반미 지도자의 거취문제일 뿐 아니라 공산주의 혁명 1세대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바둑이 불계승으로 끝나는 것과 같다. 쿠바의 정권이양이 눈앞에 다가왔으나 장래는 예측불허다.
역사적으로 쿠바는 미국과 우호적인 동맹관계였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두 나라를 발견한 후 스페인의 통치를 받다가 합병(1898)한 적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서도 동맹국으로 일본 독일 이태리를 향해 선전포고(1941. 12.9)를 하고 피를 흘리며 싸웠었다. 쿠바가 부패정부로 병들었던 것도 미국(1948)의 부유한 투자가들의 도박, 범죄조직, 흥행사업 등이 경제적 빈곤으로 타락시킨 때문이다.
쿠바의 자주독립(1956)은 카스트로가 망명지였던 멕시코에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바티스타 정권을 축출한 카스트로는 수도인 아바나에 입성(1959. 1.1), 다음달에 수상이 되었다. 그의 철권정치는 초장부터 부패경찰관 500여 명을 처형했고, 도박장들을 폐쇄했으며, 공공시설의 운영을 국유화하고, 미국인들의 조직범죄단을 처벌하는 한편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카스트로는 1961년 5월 자신을 맑스-레닌주의자라고 선포하고 소련으로부터 무제한 경제원조를 보장받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가장 인접한 두 나라가 돌이킬 수 없는 적대관계로 갈라서는 순간이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U2 첩보사진으로 소련의 장거리 미사일 핵기지가 쿠바에 설치된 것을 확인하고 ‘핵전불사’라는 단호한 태도를 니키다 후르시초프에게 통보했다. 250척의 함정과 전투기 1,000대, 지상군 병력 25만명을 동원, 쿠바 섬을 포위하고 10월 29일 오전을 기해 공격한다는 명령을 2일 전에 내렸다. 소련은 공격 몇 시간 전인 28일에 항복했다.
케네디는 이 사건 2년 후 달라스에서 암살(1963. 11.22) 당한다. 저격범은 리 하비 오스워드로 맑스주의자였으며, 쿠바 비밀경찰에 포섭되었고, 소련에 3년간 거주하면서 정보부(KGB)의 사주를 받고, 소련여자와 결혼했다.
지금 카스트로는 사경을 헤매면서 한 달 전(7월31일) 임시 정권이양을 공포하기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의 휴고 차베스 대통령은 몇 주 전 병문안을 하면서 오일 원조 8만 배럴을 약속했고, 대신 쿠바의 농산물을 교환하기로 했다.
카스트로의 딸 하나는 현재 CNN 방송에 근무하면서 마이애미에서 다른 친척들과 반 카스트로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카스트로의 조강지처였던 마르타 디아스 발라르트(78)는 스페인에서 조용히 돌아왔다. 그녀는 결혼(1948)한 이듬해 아들 피델리토를 낳았으며 혁명운동에 분망한 카스트로와 7년 뒤에 이혼했다. 카스트로는 4명의 여자들 사이에 8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공식적으로 결혼한 여성은 마르타 한사람뿐이다.
미국의 쿠바 전략은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와 카를로스 쿠디에레즈 상무장관을 주축으로 한 ‘자유쿠바지원위원회’(USAFC)가 준비한 ‘쿠바 국민과의 협정’을 성사시키는 과업이다. 이는 합법적이며 민주적인 쿠바정권 수립을 돕기 위해 다음 2년간 7,000만 달러에 추가로 8,000만 달러를 지출한다는 것이 골자다.
미국 본토의 뒷마당인 중남미 대륙에서 민중혁명의 산파역을 해온 카스트로가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앓던 이가 빠지는’격이다. 팽배한 반미정서도 잠재울 수 있다. 카스트로의 퇴진으로 석유자원을 앞세워 반미노선의 선봉이 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이 자연스럽게 무력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카스트로는 과연 애국자인가, 아니면 반역자인가. 차세대의 역사적 판단에 달렸다.
김현길 /지리학 박사.연방공무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