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젊은 날의 초심으로 돌아가자”
문인·동호인 120여명 참여
지난 26·27일 팜스프링스 미라클 호텔에서 미주한국문인협회(회장 송상옥) 주최 여름 문학캠프가 열렸다. 마종기 시인과 황충상 소설가가 강사로 초청된 1박2일 일정의 이 문학캠프에는 97명이 접수하고 가족과 강사를 합하면 참가인원은 120여명에 이르러 문학열기가 달아올랐다. 이 자리에서 마종기 시인은 40~50년에 이르는 그의 시력을 되돌아보며 왜 문학을 하는가에 대해 토로하고, 시를 쓰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어서 소설가 황충상씨는 소설과 수필쓰기에 대한 깊이 있는 문학적 담론을 폈다. 두 강사의 이야기중 시와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간추린다.
지난 26·27일 열린 미주문협 1박2일 문학캠프에 참석한 문인들 중 일부가 한 자리에 모였다.
◆마종기 시인
문학은 내가 낯선 미국에 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깊은 어둠 속을 헤맬 때, 또 불안과 당황과 절망의 늪에서도 크게 낯설어 하지 않고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사람답게 생각하고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내가 매달린 신명나는 놀이였고, 황홀이었고, 진심이었다.
여러분은 정말 시를 쓰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한 편의 완벽하고 좋은 시를 위해 밥을 잊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살아 보았나? 나는 시가 안 써지거나, 시 쓰기가 귀찮아지거나, 문학자체에 회의가 들 적에 젊은 날 문학을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을 여러 번 되풀이 해 왔다.
우리 모두는 싫어도 좋아도 ‘교포시인’이고 ‘해외시인’이다.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빛과 그늘’에 대해 잠시 생각 해 보자. 우선 우리들의 ‘그늘’은 무엇일까? 문학적 자극을 얻기 힘들고 좋은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없다는 것은 그늘이다. 그보다 큰 그늘은 아마도 주위에 문학하는 친구가 많이 없어 서로 격려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모국의 고유 문화와 산천을 벗어나 다른 언어를 생활언어로 써야 하는 것도 그늘이 될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미주 동포 문인을 싸잡아 얕잡아 보기도 한다. 교포 시인들은 공부를 안 한다, 시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 70년대 고국을 떠난 시인들은 아직도 70년대 언어로 70년대식 시를 쓴다고 한다. 이런 비판은 우리의 게으름 탓이다. 사업이 바빠 책 읽고 공부 할 시간이 없다면 아예 당분간 시를 쓰지 않아야 한다. 재주만으로 글을 쓰던 시대는 종친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생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 부었나? 그 정도의 노력과 정성도 없이 세상의 그 누구를 감동시키겠다는 것인가?
우리 공동체에 그러면 ‘빛’은 없을까? 나는 빛이 있다고 확신한다. 우선 색다른 문학적 소재와 신선한 자극을 모국보다 더 받고 즐길 수 있다. 고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풍경과 이색적인 생활 풍습도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앞서가는 예술과 접촉함으로 문학적 자극을 적극적으로 받을 수 있다.
모국의 그 문학적, 예술적 획일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것을 찾고, 경험해 보자. 문학의 질료가 되는 천혜의 선물은 시인들이 노력하고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거두지 못하고 씨를 뿌리고 찾아 헤맨 만큼 확실한 수확을 약속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철칙이라고 했다.
◆황충상 소설가
소설은 이야기다. 소설의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논픽션)가 아니라 허구(픽션)의 이야기라야 한다. 소설이 뭐냐고 묻는다면 마음을 그리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을 문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형체 없는 것을 구체적인 형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가끔 소설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너희들 속에는 끌어내고 싶은 이야기 몇 마리나 갖고 있느냐?’고.
진실한 이야기를 갖고 있으면서도 소설을 쓰는 방법이나 작가가 천착해있는 이론에 오염되어서 그 이야기가 갖고 있는 진실성을 상실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작가 자신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주제성’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단한 수련을 통해 문장을 갈고 닦아야 한다. 단편소설 속에서도 그 이야기를 압축해 표현할 수 있는 소설 詩 한 편을 뽑아낼 수 있어야 한다. 소설에도 시적인 문장을 구사하라고 말하고 싶다.
쉽게 쓰여져서도 안 되고 쓸 수도 없는 게 소설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내 생애에 마지막 작품이다 하는 처음 심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기법으로 시도하기를 반복해야만 하는 험난한 길이다.
좋은 이야기를 제대로 쓰려면 너무 소설론이나 이론에 매이지 않고 작가 자신의 ‘비상의 자유’ 즉 자기의 벌거벗은 영혼의 울림을 자유자제로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의 질서나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에서부터 새로움이 시작된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재미있어 끝까지 잘 읽혀져야 한다. 소설을 잘 쓰자면 그냥 이야기(논픽션)를 허구(픽션)로 바꾼 뒤 인용한 이야기로 각색하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그것은 오로지 숙련이다. 문학의 신은 숙련을 통해서만 창작 속에 임하게 된다.
<정리-한길수/시인·미주문협 사무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