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종종 거론된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가 나빠지는 데도 물가는 올라가는 현상을 말한다. 70년대 초 스태그플레이션을 처음 경험하기 전까지는 고용과 물가상승률이 역관계에 있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소위 필립스 커브로 불리는 고용과 물가상승의 상반관계는 경제가 나빠지면 물가는 떨어지고 줄고 경제가 좋아지면 물가는 올라간다는 이론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을 경험하기 전까지만 해도 경제의 사이클이라고 하는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원인을 주로 수요 측면에서 설명했다. 수요를 늘리기 위해 돈을 풀면 경제가 성장하는데 돈을 늘리다 보면 자연히 물가가 올라가는 어려움이 생기고 반대로 물가를 잡기 위해 돈을 줄이다보면 수요가 줄면서 경제성장이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라고 받아들였다. 즉 한 쪽이 좋으면 다른 쪽이 나쁜 상반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순환의 촉발이 공급 측면에서 시작되는 독특성을 지닌다. 총수요가 같은 상태에서 갑자기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공급 측의 가격이 인상한다. 공급이 줄어드니 경제는 후퇴할 수밖에 없는데 물가는 올라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물가와 고용이 상반관계에 있지 않고 둘 다 나빠지는 아주 안 좋은 결과가 된다.
이 관계를 원유의 예로 설명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된다.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원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원유가가 오른다. 이 경우는 수요의 증가가 유가를 올린 것으로 경제도 성장하고 물가도 오르게 된다. 이러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수요가 줄어들면 전체 물가와 함께 원유가도 낮아지게 된다.
반면에 수요는 같은 상태에서 갑자기 중동지역의 전쟁으로 유전이 대량 파괴돼 전세계적으로 원유의 공급이 대폭 줄어들게 되면 원유의 부족으로 경제활동이 위축되면서 원유가격은 올라간다. 이렇듯 수요가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급의 대폭 감소가 일으키는 경제위축과 물가상승의 이중고 현상이 스태그플레이션이다.
현재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의견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물가가 상승하는데 경제성장률은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금년도 1·4분기의 경제성장률이 5.6%를 기록한데 반해 금년 하반기 경제성장률의 예상은 2.6% 정도고 내년에도 2.7% 정도에 머물 것으로 돼 있다. 이렇게 경제가 현저히 연착륙 하는데 반해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연방 은행의 한계선인 2%를 넘어서고 있으니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해가 된다.
여기에 덧붙여 유가의 핵심 축인 중동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이 커지면서 공급 면에서 큰 위축이 올 수 있다고 보이니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 가능성이 상당한 타당성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 경고는 너무 지나친 염려인 점이 있다. 우선 경제가 오랜 기간 성장하다 하락하기 시작하면 바로 당장 물가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어느 정도 시차가 필요하다. 경제가 불황에서 성장기로 접어들 때도 물가가 바로 따라 올라가지 않고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 올라가듯 반대로 경제가 하향 조정될 때도 물가가 내려갈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때 잠시 교차되는 시점에서의 시간차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단순화한 감이 있다.
중동지역의 문제가 원유 공급 부족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현재 전세계의 경제상황은 70년대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우선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원유 의존도가 많이 낮아졌다. 둘째로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금의 국제 경제구조로 인해 세계 금융당국이 처음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던 때보다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준비가 많이 돼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보면 최근 일어나는 물가상승과 경제하락 현상은 스태그플레이션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보이나 경제 과열성장의 고삐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고 세계 경제의 유기적 대응 능력을 볼 때 스태그플레이션을 방지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 만큼 아직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치리라고 결론을 내릴 때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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