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익장의 여인으로 프랑스 조세핀 미술관에서의 전시회를 꿈꾸어본다. 제목은 ‘백살의 알리사’. 몰려오는 기자들에게 할 말도 준비해 놓았다. “안 늙어서 미안해요.” 오! 아름다운 내일이여.
“목사님, 늙은이가 와서 죄송해요.”
“아니, 권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교회에서 늙고 젊고가 어디 있습니까. 기도 많이 해주시고 젊은이들의 신앙을 이끌어 주셔야지요. 환영합니다.”
친교실을 지나가는데 새로 나오신 권사님과 목사님의 대화가 들렸다. 교회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권사님은 친구도 모시고 와서 매주 나란히 예배를 드리고 계신다. 주름지고 메마른 얼굴들에서 왠지 좋은 구상이 떠오른다. 그림의 색 조화는 반듯하고 화려한 것 보다 희미하고 어긋나며 또한 칙칙한 색깔 배합이 사람들의 영혼을 만족하게 한다. 몇 백년된 그림의 중후함이 화가 자신도 남도 이해 못하는 현대판 추상화에 비할까? 그 나이에 걸맞게 배열된 얼굴의 주름들이 인생 특별 훈장처럼 보인다. 말씀은 안 하셔도 “나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힘들었어”라는 소리 없는 언어가 전해진다.
권사님은 어느 교회를 찾아갔다가 젊은 사모가 다리까지 꼬고 앉아 반기기는커녕 멀뚱히 쳐다보기만 하여 민망했다고 한다. 늙는 것은 자연이치인데 어째서 미안한 것인가? 그런 것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나 미안한 시간은 꼭 오고 말 것이다. 본인이 늙기 전까지는 노화가 과연 어떤 것인지 젊은 사람들은 알기 힘들다. 그러나 교회에서까지 노인들을 먹다 남은 찬밥덩이로 취급하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사람의 평균수명은 점점 늘어나고 젊음이 경쟁요소가 되어 피부 나이를 되돌리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주름이 자리잡지 못하도록 성형수술도 날로 진보하고 노화방지를 위한 신약개발도 더욱 박차를 가해 그 성과 또한 놀랍다. 외모지상주의의 일환으로 최근에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이 각광받으며 열풍으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연륜이 묻어 있지 않은 동안에만 집착하지만 세월의 지혜, 삶의 수준 깊은 통찰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멋지게 나이 들어감은 어떤 것일까?
여든 한 살에 그림을 시작하여 백세가 넘도록 왕성하게 활동했던 화가 해리 리버만을 생각한다.
1896년 폴란드 출생인 그는 1905년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살았다. 미술공부는 공립학교가 개최한 10주간의 성인을 위한 미술교실에 참가해 레슨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부터 하루에 열네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을 들여 동시에 세 개의 이젤 앞에 앉았었다고 한다. 그가 20여년 동안 완성한 작품은 유화, 수채와, 아크릴화를 합치면 수백 점에 달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성 높은 화랑에서만도 스물 두 번이나 개인전을 열었고 백 한 살 때의 전시회에서는 400명이 넘는 미술 수집가와 애호가, 신문기자들을 맞았다. 나이에 관한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그는 “백 한 살의 늙은이가 되었다는 식으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백 한 살, 남자의 한창 때를 맞았구나 하고 살지요. 칠십이나 팔십, 구십 정도에서 나이를 먹었다고 기가 죽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런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습니다. 연령이란 나이가 많다는 기분에 좌우되면 안됩니다. 지금부터의 인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것만 생각하면 족한 것입니다. 단지 행동이 있을 뿐, 그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라고 말입니다.” 꾸밈없는 또 하나의 샤갈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큼 그의 그림에는 평생 살아온 긴 얘기가 있다.
늦깎이로 그림 그리기를 시작한 나는 그에 비하면 햇병아리쯤으로 여겨도 좋을 듯 싶어 용기를 갖게 되었다. 그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소중히 가꾸면서 피어나는 봉오리로 자라고자 간절했던 세월은 물밑작업으로 수 십년이 걸렸다. 다행히 그 꿈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내 나이 오십이 되어서였다. 리버만처럼 노력한다면 나는 앞으로 45년은 더 그림을 그리면서 아름다운 삶을 영유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백살의 그저 미안하기만 한 할머니가 아닌 노익장의 여인으로 프랑스 조세핀 미술관에서의 전시회를 꿈꾸어본다. 제목은 ‘백살의 알리사’. 몰려오는 기자들에게 할 말도 준비해 놓았다. “안 늙어서 미안해요.” 오! 아름다운 내일이여.
알리사 홍
화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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