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극작가 주 평
통쟁이 집안에서 자라면 누가 통 매우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아도 통을 매울 줄 알듯이, 그리고 서당(書堂) 언저리에 서성거리는 강아지가 어느 세월을 지나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처럼, 글쟁이인 나와 같이 산지가 48년 세월이 지난 우리 마누라는 이제 서당개가 아닌 글방 선생님이 되어 나의 글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한지 이미 오래다.
결혼 초기에는 내가 쓴 작품을 한번 읽어 보라고 던져 주면, 읽고는 그저 “좋다!”라고 말하더니, 날이 가고 해가 거듭 될수록 그 ‘좋다’라는 ‘Good’이 요즘에 와서는 그저 그렇다, 더 심하게는 “이 작품(글) 내지 마소! 이 글 발표하지 않는게 오히려 당신 이미지에 먹칠하지 않을거요”라는 판정을 내릴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내가 매달 한번 (전에는 한달에 두번) 발표하는 이 ‘수필산책’이 신문 지상에 활자화되기까지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이유는 문명의 이기이자 특히 글쓰는 사람에게는 밥 숟가락과 같다는 컴퓨터에 대한 나의 거부반응 때문에, 나는 50년을 두고 글을 써오면서 타이프 라이터나 컴퓨터에 의지하지 않고 대학노트에다 초고(初稿)의 글을 쓰고, 그 초고를 빨간 펜으로 고치고는 원고지에다 옮겨 쓴다. 그리고는 원고지에 옮겨진 것을 다시 읽고 퇴고(고침)하고는 또 한번 다른 원고지에 정서(整書)하고는 신문사에 E-mail로 송고하기 위해 내 원고를 컴퓨터에 입력해주는 분에게 가져간다. 그리고 워드 프로세싱된 것을 보며 최종적으로 고치고는 신문사로 보낸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관문이 앞서 말한 마누라의 검열 통과다. 그 검열의 해당 종목은 첫째가 문맥이 통하지 않는 주제의식 부재의 지적이고, 둘째는 전에 발표했던 글 내용을 재판하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가 지나친 자기 자랑 대목의 삭제이고, 넷째가 상스럽고 유치한 자구(字句) 수정, 다섯째가 닭살 돋는 문장의 삭제등이다. 이러한 마누라의 지적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가 주제가 되고 자기의 모습을 거울이란 피사체(被寫體)에 비쳐 보는 글이 곧 수필이란 점에서, 마누라의 지적은 수필 쓰는 원론(原論)의 한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마누라의 검열없이 신문사와 잡지사에 글을 보낼 수 없는 이 글쟁이의 체면이나 입장에서 본다면 돈벌이도 안되는 글을 왜 써야하나 하는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글에서 잘못된 부분을 쪽집게같이 집어내고 어느 대목의 삭제로 그 글이 크게 살았던 사실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마누라의 지적을 마다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달의 수필산책에 나는 곧 연습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고있는 극단 금문교의 제 7회 공연 작품인 나의 신작, 성인희곡(成人戱曲) ‘소쩍새’에 대한 글을 탈고하고 마누라에게 보여 주었더니, 작품의 내용 수정 문제가 아니라 아예 이 글을 발표하지 말라는 폐기처분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이 글 ‘서당개의 충고’라는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그 폐기 처분의 이유는 소쩍새 공연이 만일의 경우 나의 뜻대로 성사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글은 신뢰성을 잃은 사문(死文)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내가 쓰는 글의 신뢰성도 의심받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 남편이 한번 마음 먹은 일은 90% 성사시켜온 지금까지의 뚝심을 모르지 않는 마누라의 이러한 지적이 백번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더이상 우길 수가 없었다.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서는 추호도 나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나의 성미에도 불구하고, 글 쓰는데 있어서는 자식들이나 마누라 또는 글 쓰는 동료, 그리고 독자들의 지적이나 의견을 그대로 깔아 뭉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들의 냉혹한 지적이 내가 좋은 글을 쓰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글 쓰는 작업이 수월하지 않고 ‘글쟁이 = 배고픔’이란 등식이 형성되고 있는 이 마당에 문인이 되고자 혹은 작가로 인정 받으려 애쓰는 사람이 왜 많은지 모르겠다. 이러한 현상이 문인이란 특권(?)의식 때문에서 일까?
한국문인협회의 발표에 의하면 협회 회원으로 가입된 회원수가 9천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은 문인을 합하면 그 숫자는 엄청난 숫자가 아닐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민사회에서도 가깝게는 LA에 200명이 넘는 문인이 있고 이곳 San Francisco 지역에도 70명에 가까운 문인이 있다고 한다.
나는 언제나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축구선수는 발로 승부하고, 권투선수는 주먹으로 승부하듯이 적어도 글 쓰는 사람이라면 좋은 글로 승부하라 !’ 고. 이런 점에서 나는 한갖 서당개에 불과한 마누라의 충고일 망정,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글의 발표는 엎질러진 물같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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