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해더미가 우릴 영원히 가둘 순 없어”
9·11 두 소방관
‘인간승리’ 예찬
서전트 존 맥더플린(니콜라스 케이지)이 콘크리트 잔해에 깔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World Trade Center)
★★★★(5개 만점)
5년 전 9월11일 테러 당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던 중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에 갇혔다 구출된 2명의 뉴욕 항만경찰의 끈질긴 생명력과 용기를 예찬한 드라마다. 소위 ‘음모론자’로 낙인이 찍히다시피 한 올리버 스톤(인터뷰 섹션 I ‘주말산책’ 칼럼) 감독했는데 그는 이번에 전연 정치색을 띠지 않은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를 만들었다.
스톤은 인간적으로나 작품 스타일이 모두 격정적인 사람인데 이 영화는 감정을 철저히 절제해가며 사실에 충실하게 그렸다. 그의 장인적 솜씨가 역연히 표현된 준수한 영화이지만 문제는 영화적 재미가 모자란다는 점.
우선 두 사람이 끝에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 긴장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근 절반 가량을 잔해에 갇혀 얼굴만 노출된 두 경찰의 모습으로 채워 얘기가 폐쇄성을 감출 수가 없다. 이 두 사람의 모습과 이들의 가족의 초조와 불안에 떠는 모습이 교차되는데 두 경찰보다 오히려 자유롭게 활동하는 그들의 아내의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아내역의 배우들이 돋보인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출근한 사전트 존 맥러플린(니콜라스 케이지-인터뷰 ‘위크엔드’판 ‘엔터테인먼트’면)과 경찰 윌 히메노(마이클 페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화염에 휩싸이면서 급히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때만 해도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둘은 건물이 붕괴되면서 콘크리트 덩어리에 깔려 지하 수십피트에 꼼짝없이 갇힌다. 둘은 잠들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가족얘기와 개인얘기들을 나누며 상대방을 격려하면서 버틴다.
이들이 자기 가족얘기를 하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존의 아내 다나(마리아 벨로)와 자식들 그리고 윌의 만삭인 아내 앨리슨(매기 질렌할)과 가족들이 각기 두 사람의 구출소식을 안타깝게 기다리는 모습이 묘사된다. 두 경찰은 시간이 지나도 구조대에 의해 발견되지 않자 지쳐 환상을 목격하고 죽음에 대비해 기도를 한다.
둘을 찾아낸 사람은 전 해병 데이브. 그는 테러소식을 듣고 군복을 입고 코네티컷으로부터 현장으로 달려온다.
데이브에 의해 둘이 발견되고 구조대의 작업이 진행되면서 스톤은 구조대원들의 목숨을 내던진 영웅적 활동을 감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존과 윌은 잔해에 갇혔다 구출된 20명 중 18번과 19번째였다.
케이지와 페냐가 얼굴과 내면 연기를 잘 하고 벨로와 질렌할의 절박한 연기도 좋다. 기술적으로도 완벽한 영화로 스톤의 모처럼의 차분한 솜씨가 느껴지는 정신을 고양시키는 작품이다. PG-13. Paramount. 전지역,
20년전 연인 재회 그린 2인 드라마
여자와 남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말의 대결을 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과의 대화’(Conversations with Other Women) ★★★★
두 남녀가 나와 처음부터 끝까지 재치와 야유를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2인 드라마로 에릭 로머의 영화를 생각나게 만든다. 대사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두 배우의 연기와 조화가 좋아 즐거운데 달곰씁쓸한 사랑을 나눠 본 사람들에겐 절실할 내용이다.
과연 한번 엎질러진 우유를 다시 퍼담을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뒤 긴 세월이 지난 후 재회했을 때 묻는 이 질문에 관한 특이하고 쓸쓸해지는 사랑의 영화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을 중간에서 둘로 나눠 양쪽에 남녀를 배치해 놓고 대사를 나누게 했다. 때로 주인공들이 움직이면서 경계선을 넘어 상대방 쪽 공간으로 들어가는데 이런 기법이 얘기 진행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재미있는 수법이나 왜 그랬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일종의 성의 전쟁에 관한 영화는 뉴욕의 하룻밤 새 진행된다. 30대 후반의 남자(아론 에카르트)의 여동생 결혼식 파티가 열리는 호텔 볼룸에서 거푸 술을 마시는 이 남자가 거푸 담배를 태우는 자기 나이 또래의 여자(헬레나 본햄 카터)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이렇게 시작된 두 남녀의 성과 말의 대결과 희롱이 이튿날 새벽까지 계속된다.
둘이 서로의 주위를 맴돌면서 계속해 대사를 나누는 모습이 짐승이 적을 만나 상대를 가늠하는 것 같다. 여자는 남자의 접근을 거절하는 듯 수락하는 듯 하는데 남자는 집요하게 여자에게 다가간다.
이 둘이 나누는 대사의 내용은 장면이 과거로 돌아가면서 명확해진다. 둘은 20년 전 대학생 때 동거했던 연인들. 그러나 헤어져 여자는 런던서 남편과 자녀들과 살고 있고 남자는 섹시한 연인과 동거 중이다.
둘은 볼룸을 나와 호텔 방으로 들어가는데 과연 섹스를 할 것인가. 세월이 지난 후에 만난 연인들의 성적 육체적 매력과 욕망 등을 파헤쳐 본 영특한 영화로 액센트 있는 영어를 쓰는 귀여운 쥐 같은 카터와 덩지는 크나 아이 같은 에카르트의 콤비가 보기 좋다. 성인용. Fabrican. 선셋 5(323-848-3500), 웨스트사이드 파빌리언(310-281-8223), 원콜로라도(626-744-1224), 사우스코스트 빌리지3(OC).
목숨건 도박, 러시안 룰렛 승자는
‘13’(13 Tzameti)
★★★
새디스틱하고 냉소적이요 염세적인 느와르 스릴러로 손쉽게 한 몫 보려는 남자가 겪는 정신적 육체적 공포를 그렸다. 프랑스 영화로 조지아에서 이민 온 젤라 바블루나이가 감독한 흑백. 황량한 풍경을 찍은 촬영이 뛰어난데 ‘Tzameti’는 조지아어로 13을 뜻한다.
20세난 갈비씨 세바스티앙(조르지 바블루나이)은 프랑스 벽촌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막일꾼. 그는 어느 날 백발신사 장-프랑솨의 지붕을 수리하다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직업에 관한 집주인의 대화를 엿듣는다. 장-프랑솨가 몰핀 과다사용으로 죽자 세바스티앙은 사자로부터 고액의 대가를 지불하는 직업에 관한 정보가 적힌 편지를 훔쳐 글에 적힌 대로 기차를 타고 어느 목적지를 향해 간다. 이때부터 그는 계속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
세바스티앙이 목적지에 내리자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를 차에 태워 외딴 곳의 성으로 데리고 간다. 성 앞에는 고급 리모들이 주차돼 있다. 여기까지 미스터리 스타일의 분위기를 내던 영화는 세바스티앙이 자기가 치명적 게임을 위한 포로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영화는 ‘톱’과 같은 극단적 공포영화로 변모한다.
세바스티앙은 거액의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비밀 결사조직 도박꾼들의 장기 말과 같은 존재로 이들이 하는 경기는 러시안 룰렛. 도박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바스티앙처럼 이 곳에 끌려온 남자들이 각자 고유 번호를 받은 채 원을 그리고 서서 장전된 권총을 옆 사람의 머리에 겨냥하면서 게임은 시작된다. 세바스티앙의 번호는 13. 진행자의 구령과 함께 불켜진 전구가 깜빡하는 순간 총을 발사, 운 나쁜 사람들이 하나씩 쓰러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두 명이 서로 마주 선 채 상대의 이마에 총구를 대고 발사, 남는 사람이 거액의 사례금을 받는다.
과연 세바스티앙은 끝까지 살아 남아 목돈을 챙길 것인지. 불쾌할 정도로 가학적인 영화로 러시안 룰렛 장면이 긴장감을 일으키긴 하나 ‘디어 헌터’와는 다른 악의적 장난처럼 느껴진다. 성인용. 17일까지 뉴아트(310-281-8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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