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위대한 세기:피카소’ 전시회에 미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수 겸 탤런트 이현우가 전시회장을 찾았다.
이현우는 MBC 드라마 ‘사랑은 아무도 못 말려’를 마치고 태국으로 2주일간의 꿀맛 휴가를 다녀온 뒤 제일 먼저 피카소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미국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에서 미술을 전공한 미술학도 출신답게 “피카소전을 기다려왔다”는 이현우는 전시회를 감상한 후 “그의 천재성이 부럽다”는 속내를 털어 놨다. - <편집자주>
피카소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꼭 한 번 관람해야 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지만 드라마 촬영,사업 등으로 바빠 쉽게 전시장을 찾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관람객이 적어 여유로운 시간이 언제인 지 알아보던 중 피카소전을 관람할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전시회장을 찾았다.
한국 사람이 김치를 좋아하듯,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카소를 사랑할 것이다. 아니,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마도 더 크리라. 피카소는 신이 주신 천재성을 지닌 화가였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보면서 죽기 전까지 소년같이 살았던 그의 일생이 얄미울 정도로 부럽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다. 피카소는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했고, 수많은 여인을 거느렸으며 재능도 인정 받아 막대한 부까지 누렸다.
노력도 노력이지만,신이 선택해 선물로 주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일생을 신이 펼쳐 놓은 놀이터에서 재미나게 살다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똑같이 천재이지만 반 고흐와는 대조적이다. 반 고흐는 죽어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갇히는 등 비극적인 삶을 살지 않았던가.
도슨트(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피카소 전시회를 둘러보니 역시 피카소 창작의 원동력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피카소가 사랑을 나눈 수많은 여성들이 그림 곳곳에 드러나는 것을 보며 피카소는 배터리를 갈아 끼우며 충전을 하듯 사랑을 통해 창작 에너지를 얻었다는 생각을 해 봤다. 육체적 본능은 물론,사랑과 애증의 대상인 여자에 대한 심리,종국에는 피카소 자신과의 일체화까지 뚜렷이 그림에 드러나 있다. 여든이 넘은 노후의 나이까지 끊임없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열정도 부러웠다.
피카소의 삶과 작품 세계는 이처럼 차가움 보다는 뜨거움에 가까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컬러보다는 흑백 작품에 마음을 뺏겼다. 때문에 1962년작 ‘앉아 있는 여인’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표현방식이 심플하고 명암이 뚜렷해 화려한 컬러 작품 보다 훨씬 강렬한 느낌을 줬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것은 피카소의 크레용 시리즈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계산하지 않고 그린 듯한 동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좋아했던 화가 램브란트의 작품에 자신을 대입시키듯 그린 ‘파이프를 문 남자’(1969)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웃었다. 놀이동산에 놓여진 얼굴 부분이 뻥 뚫린 슈퍼맨 모형 안에 한 어린이가 얼굴을 끼고 사진을 찍는 광경이 연상됐다. 어른이 된 이후에도 그런 천진난만함을 유지했던 것이 피카소다.
창작의 세계에서 순수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디자인과 순수예술을 복수 전공한 나는 연기, 음악, 사업 활동 등을 하는 요즘에도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렇지만 어쩐지 나 자신이 속세에 찌든 것만 같고, 그림에 계산과 셈이 들어간 것만 같아 부끄러울 때가 있다.
지난 봄 출간한 에세이 ‘이현우가 사는 법’에서 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소개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전시회를 여는 식으로 공개할 엄두는 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피카소처럼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 교육 방식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테크닉을 가르치기 보다는 창의력을 키워줘야 한다. 나는 어려서 테크닉만 배운 탓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애를 많이 먹었다. 내 그림의 선은 고왔지만 창의력이 떨어졌고,당시 친구들은 기술을 부족할 지 몰라도 깜짝 놀랄 정도의 기발함을 내놓곤 했다. 그 때 미술에 대한 눈을 떴다.
피카소전을 관람하며 두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한 가지는 내가 좋아하는 피카소의 도자기와 조각 작품이 여건이 맞지 않아 한국에 오지 못했다는 점,또 한 가지는 이런 귀중한 전시회를 항상 관람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삶, 바로 ‘포에버 영(Forever Young)’한 삶을 산 피카소를 마음 가득 만나고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정리=이재원 기자 jjstar@sportshankook.co.kr
ㆍ사진=박철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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