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3주 동안 유럽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보이스카웃에서 어른아이 총 37명이 함께 7개국을 돌고 온 대장정이었다. 이 여행을 위해 스카웃 리더들이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였고, 부모들은 2년동안이나 매달 경비를 적립하고도 새 자전거에, 단체 구입한 각종 비품과 가방, 옷들, 현지에서 쓸 용돈까지 수억을 써가며 여행을 보냈다.
3주 일정중 1주일은 자전거로 움직이는 스케줄이었으므로 아이들은 1년 넘게 주말이면 수십마일씩 자전거 훈련을 했으며 떠나기 전에는 다들 자전거를 분해하여 싣고 가고, 현지에서 다시 조립하여 타고 다니다가, 돌아올 때 다시 분해하여 싣고 와서는 마지막으로 다시 조립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방문한 나라들은 스위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체코, 폴란드, 헝가리 등 주로 북구와 동구권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실망되었으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볼 수 있을테고,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동구권은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지금 가보는 것이 더 나으리라 여겨졌다. 나의 예상에 맞게 아들은 다녀온 후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도시로 체코의 프라하를 꼽았다.
아들이 없는 3주동안 얼마나 홀가분하게 잘 놀 수 있을까, 잔뜩 기대했던 나는 그만 작전미스로 금쪽 같은 날들을 하릴없이 흘려보내다가 막판에 친구들과 3박4일 와이너리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아들이 돌아오기 전날 집에 도착한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어’,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허무하게 달아난 시간들을 아쉬워하였다.
그런 반면 남편은 떠난 날부터 아들을 손꼽아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는 아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여인처럼 거의 한번도 생각나지 않았는데, 그런 나를 동물 바라보듯 하던 남편은 틈만 나면 이야기를 꺼내며 ‘녀석이 없으니 심심하다’고 안절부절을 못하는 것이었다.
밥을 먹다가도 ‘지금쯤 뭘 먹고 있을까? 밥 생각 엄청 날거야’, 툭하면 일정표를 들여다보며 ‘오늘은 여기 가 있겠군’ 그리고는 인터넷으로 날씨를 점검하면서 ‘어이구 유럽도 엄청 덥네’ 혹은 ‘내일부터는 계속 비오는 일기야’ 하며 걱정하였다.
심지어 오지도 않는 전화를 계속 기다리고, 이메일도 체크업을 하는데 얼마나 소식이 없던지 내가 다 안쓰러울 정도였다. 아들은 떠난 지 닷새만에 딱 한번 전화를 걸어왔는데 그날이 나의 생일이었다. 나는 일하다가 전화를 받고는 ‘하이, 원겸아. 전화해줘서 고맙다. 잘 먹고 잘 자니?’ 물은게 다였다. 헌데 남편은 너무 흥분하여 나에게 수차례 아들과의 대화를 전하고 또 전하였다. 사실 아들은 나의 전화번호를 묻느라 아빠에게 전화한 모양인데 남편은 자기에게 먼저 전화한 아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사내아이들이라 워낙 연락이 없으니 부모들끼리 서로 뭐 소식 들은게 없는지 정보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누구네 아들은 전화를 몇번 했느니, 누구는 엽서까지 보냈느니, 그런 이야기를 전해듣고 나면 남편은 한동안 너무 섭섭해서 실망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런 아들이 돌아왔다. 무정한 엄마는 그날 저녁 야근을 하였고,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던 아빠는 비행기 도착시간도 되기 전에 공항으로 달려갔다. 밤 11시에 집에 들어선 아들, 나 보기엔 3주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남편은 아이가 살도 빠지고, 키도 더 큰 것 같고, 왠지 의젓해진 것 같다고 난리다.
아빠의 애달픈 사모곡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들은 인간이 맡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냄새가 담긴 짐가방을 열고 선물을 풀어놓았다. 그때, 남편은 너무 속상하여 거의 화를 내려고 하였다. 자신을 한번도 그리워하지 않은 엄마에게는 예쁜 향수병에 장식용 금잔 세트, 거기다 스위스 초컬릿 한 상자까지 사왔는데 아빠 선물은 내가 봐도 후줄그레한 티셔츠 한 장이었던 것이다.
그러게 자식 사랑은 짝사랑이다. 그 나이 때 친구들과 신나는 유럽여행을 가서 부모 생각하는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잘 놀고 있으려니, 하고 나도 잘 놀고 있으면 그게 서로간에 가장 즐거운 휴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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