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특파원 부임 때 일이다. 전임자가 학교선배인지라 미리 집을 구해 달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부임한 즉, 백악관 맞은 편 호텔의 하루 숙박료가 400달러를 넘었다.
안되겠다 싶어 택시에 올라 무작정 떠났다. DC 근교 주택가인 락빌 집은 이렇게 구했다. 구해 놓고 본즉 온 동네가 숲이고, 아들이 다닐 고등학교도 명문으로 지척이었다. 석 달 후 첫 손님을 맞았는데, 아들의 클래스 메이트 조너던이었다.
“니네 아버지 어느 나라에서 오셨니?”
“할아버지 때 미국에 넘어 왔다는데..., 이란이래요”
그렇다면, 유대 이름 조너던이라는 이름을 봐서도 그렇고, 기원 전 600여 년 전 바빌론에 끌려간 유대인의 후손이 분명하다.
“너 다이아스포라 라는 말 들어봤니?”
“아니요 “
녀석한테 또 하나 놀랜 건, 잠깐 자리를 빈 내 아들을 대놓고 비방한다는 점이다. 이 놈 봐라!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을 디아스포라라 부른다. 미국 디아스포라에 대해 내가 유별 관심을 갖는 이유는, 좀 호전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우리 미주 이민(편의상 코라스포라라 부른다)들과 언젠가 승부를 벌여야 할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우리한테 그리 불리한 싸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 디아스포라와 코라스포라 사이엔 유사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유사점만 제대로 파악하면, 완승은 몰라도 지난 번 월드 컵 때 강호 프랑스와의 대결처럼 무승부쯤은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 디아스포라의 생리를 파악하는데 10여 년 전 케이블 방송 TNT를 통해 미 전역에 보급된 영화 ‘아브라함’은 더없이 좋은 텍스트다. 이 영화의 압권은 주인공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여 이집트 바로 왕에게 파는 대목인데, 상술로 치면 가히 발군이다.
아내 하나를 포기함으로써 많은 일족과 가축들이 기갈과 배고픔을 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대 중동사회는 사람 수를 셀 때 여자의 수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 점, “사내 잘나면 열 계집 거느린다”고 여겨온 한국 고래의 풍습과 딱 맞아떨어진다.
영화는 아내를 판 아브라함의 고민을 꽤 그려내고 있지만, 원전인 구약 창세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주인공이 그런 고민과 가책을 느꼈다는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주인공이 또 조카 롯과 분가 할 때 땅의 선택을 조카에게 일임, “네가 왼쪽을 차지하면 내가 오른 쪽을, 네가 오른 쪽이면 내가 왼쪽을 차지하겠다”고 양보하는 대목 역시 코라스포라의 고래 풍습과 일치한다. “계집은 옷, 형제(조카)는 수족”으로 본 흥부놀부전처럼.
우리가 디아스포라를 영영 따라 잡지 못하는 대목이 한군데 있다면, 주인공이 신의 명령에 따라 외아들을 번제 장소까지 사흘 걸려 끌고 가 아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대목이다. 우리 같았으면 사흘 전 내가 먼저 죽었거나 까무라쳤을 일이다.
아브라함은 그러나 신의 말을 준행, 이스라엘의 조상이 된다. 코라스포라에겐 이 필사적인 믿음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싸움에 진다는 말인가. 허나 적진(?)을 예의 관찰해 보면, 뭔가 가닥이 잡힌다. 언젠가 이 난을 통해 소개한, 중국 나병 환자 전담 목회자 김요석은 그 유대인들과 10년 넘게 산 적이 있는 유대 전문가다.
그의 체험에 따르면 “유대인 치고 제 이웃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 본 적이 없다”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 무조건 봐주고 단결한다고 믿는 코라스포라의 상식은 한갓 허구일 뿐이다.
또 하나의 징후로, 유대인들 거개가 정체성이 희박하다는 점인데, 미국 도처에 검은 옷, 검은 모자 쓰고 활보하는 유대인은 골수 유대인들일 뿐, 앞서 조너던처럼 유대 말은 물론이고 자기 내력도 모르는 디아스포라가 다수라는 점이다.
끝으로, 지금 미 전지역에 확대 보급되고 있는 `유대인 기독교`의 존재다. 자기네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을 한갓 율법이 강요하는 믿음으로 간주, 사랑 그 자체인 복음을 선택한 유대인 계층이 부쩍 늘고있다는 징후다.
그렇다면 이제 싸움이 된다. 60% 이상이 개신교 신자로, 믿음 싸움이라면 누구한테 져 본적 없는 코라스포라들 아닌가! 믿음(?)하나 걸고 무작정 나서, 좋은 집 구했던 나처럼 말이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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