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조선 개국이래 두 번째로 신하들이 임금을 내쫓는 일이 일어난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연산군에 이어 두번째로 비극의 주인공이 된 임금은 광해군은 재위 15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긴 현군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명나라와 청나라가 교체되는 격변기에 두 나라와 등거리 외교정책을 펼침으로써 조선을 전란의 위기에서 수차례 구해낸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서인들의 생각은 달랐는데, 이들은 조선의 국익을 위한 광해군의 양면외교 정책이 임진왜란 때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명목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왕위에 앉힌다.
그러나 이미 천하의 패권을 목전에 둔 후금(훗날 청나라)을 배격하고 국운이 기운 명나라를 추종하려면 강력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후금에 있어 조선은 골칫거리였는데, 그들이 중원으로 쳐들어간 사이 조선이 명나라와 결탁하여 만주를 공격할 경우 두 개의 전선을 유지해야하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금은 중원을 완벽히 장악하기 위해서 먼저 조선을 우호국으로 만들던지 전쟁을 통해 속국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조는 향명대의(向明大義)의 기치를 높이 들고 8도에 후금과 싸우자는 선전교서를 내린다. 민족사 최악의 외교정책이었다. 인조와 서인들의 허세뿐인 명분론에 대한 후금의 대답은 병자호란이라는 또 한번의 무서운 전쟁이었고, 결과는 셀 수 없는 백성들의 죽음과 삼전도의 치욕이었다.
최근 한국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수백년 전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허세뿐인 명분론’만을 내세우는 최악의 대미 외교 정책으로 실익들을 순식간에 잃어가고 있는 한국 정부. 미국과 최대한의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일본 정부와 극명히 대조된다. 일본 정부는 과연 자존심이 없고 미국이 사랑스러워서 엎드리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한국 정부의 어설픈 외교 정책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3년 한국 고속철도 사업자 선정과정 중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이 프랑스 회사를 사업자로 선정할 경우 병인양요 때 약탈해간 외규장각 의궤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한국 정부의 어설픈 대응으로 지켜지지 않았고 올 9월 예정되었던 외규장각의 한국 전시마저 어렵게 되었다.
대북한 외교야 다른 부처에서 담당한다지만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북한에 끌려 다니는 우리 정부의 외교력이야 익숙한 이야기지만 북한이 지난주에 내놓은 조치만으로도 국민들은 충분히 어이가 없다. 이산가족 상봉 취소와 금강산 면회소 공사 중단, 개성공단 내 경제협력협의사무소의 북측 관계자 철수가 바로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한 쌀과 비료의 대가였다.
얼마전 중국 사회과학원이 종합적인 국력으로 평가한 세계 10개 대국 가운데 한국이 9위에 올랐다. 한국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으나 천연자원 분야와 외교력에서 최하위권의 점수를 받는 바람에 종합순위에서 크게 밀려났다. 무능한 한국의 외교력을 중국은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한국의 외교관들이 누구인가? 한국에서 제일 어려운 시험이라는 외무고시를 합격한 자들이 아닌가? 하긴 공부만 잘하면 기질이나 의식 수준에 상관없이 외교관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오히려 무능한 외교력 중요한 원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요즘 외교 분야에 있어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한미 FTA다. 혹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대사를 졸속 처리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국민들에게 정부는 마치 계몽이라도 한다는 듯 ‘국민들이 몰라서 그런다’는 식의 홍보를 해대고 있다. 잘하면 좋은 점이 많다지만 자칫하다간 경제적 대재앙을 부를 수도 있는 한미 FTA를 무능한 대한민국 외교관들에 맡기기엔 국민들은 너무나 불안하다.
김영무
월드 뱅크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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