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강 전까지도 그토록 외면하던 네가 월드컵 때문에 약속을 연기한다는 거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지연희의 목소리는 놀라움이 감돌았다.
“아무튼 나는 어느 팀이 운명의 여신과 소위 뒷거래를 하는지, 어느 팀에게 운명의 여신이 미소를 보낼지를 지켜보며 팀가이스트와 사랑에 빠졌어.”
“사랑, 사랑을 외치더니 이제는 공하고 사랑한다고?”
불가사의는 바로 너다. 그리고 이병주 소설전집 30권은 축구공과의 내 사랑이 시들면 전해 주겠다고 했다.
공은 누군가 오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절대오지 않음을 축구를 통해서 배웠다고 대학시절 골키퍼였던 까뮤가 일찍이 설파했었다. 그럼에도 운명의 여신에 매달려 세계는 웃고 울며 열광하고 있었다.
“괴테도 살아 있었으면 월드컵에 빠졌을 거래. 나의 괴테말야. 괴테가 이 시대에 존재 했다면 함께 하고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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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꿈의 구장이라고 명명된 온화한 잔디. 그 잔디 위에서 불꽃 튀는 전투를 벌인 선수들은 마지막 휘슬과 함께 희비가 엇갈린다. 건장한 어깨가 축쳐진 채 눈물까지 흘리며 주저 앉는 팀, 관중의 환호 속에 웃음 꽃이 만개한 승자들의 춤사위. 그 안에서 <팀가이스트>는 침묵이다.
윤기 흐르는 순백의 원형에 검은 프로펠러 무늬를 하고 금색 테두리로 고고한 독일 월드컵 공인구. 그 도도하기까지 한 조화로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던 팀가이스트. 올리브 색채의 넓은 잔디 위에서 침묵한다. 희노애락이 교차되어 환희와 절망이 65억 인구의 지구촌을 뒤흔드는데 참으로 유연하다.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높이 오르기도 하고 잔디 밖으로 사라지기도 했던 공. 칠십 여 센티미터에 불과 사백 여 그램인 몸으로 잘도 묘기를 부리던 절묘한 공. 무수한 발길이 혹은 달래고 혹은 구술르고 혹은 후려 차고, 때로는 이마로 머리로 가슴으로 그리고 두 손까지 마주잡고 던져도 요리조리 잘도 유희하던 팀가이스트. 그 공이 품위있는 금색 테두리를 T.V.화면에 클로즈 업 시키더니 침묵으로 들어갔다.
“16강 전까지도 그토록 외면하던 네가 월드컵 때문에 약속을 연기한다는 거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지연희의 목소리는 놀라움이 감돌았다.
“그것도 신문기사 때문에 매혹 당해서라니 더더욱 이해가 안 간단 말이다. 축구기사 때문에 신문에 읽을 거리가 없다고 투덜대던 네가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게 말야.
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냐?”
“그렇다고 해도 축구게임이 온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에 칼인 네가….”
“남들은 경기가 끝나면 금단현상이 온다는데, 나는 경기 도중에도 오고 있는 것 같다.”
만사에 특별한 너를 일찍이 알고 있지만 말이다, 연희는 연발했다.
“아무튼 월드컵 드라마는 후유증마저 세계적이라더라. 책은 멀찌감치 7월말쯤 가지러 갈께.”
“책이 도착했느냐고 이병주, 이병주 하면서 안달이더니 7월 말까지?”
“이병주 소설마저 밀어내는 마력이 있더라니까.”
연희는 화랑을 겸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발레의 꿈을 접어야 했던 연희는 그 보상심리인지 발레에 관한 그림으로 서점을 장식했고 책 역시 발레에 관한 것은 거의 다 구비해 놓고 있었다. 나도 연희 덕분에 평생을 발레의 관심 속에 함께 있었다.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으로부터 마고트 폰테인, 그리고 안나 파블로바 등 발레리나의 삶에도 친숙해 있었다. 백조의 호수로부터 지젤, 목신의 오후, 사육제 같은 작품은 외울 정도로 많이 보았다.
“연희야, 축구는 거대한 발레 같기도 해. 너 그런 것 못 느꼈냐?”
기적이 따로 없다, 이게 기적이다, 연희는 기적만을 되풀이 했다.
“발레는 커녕 전투였다. 한국의 16강 전에 나도 사활을 걸었으니까.”
“하긴 나도 한국전 만을 보기 위해서 관람했다면 축구의 맛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 했을지 모른다. 한국의 승리에만 신경을 썼을 테니까.”
“맛이 어떤데?”
“그 불가사의한 맛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겠니?”
“너의 희한한 맛 내기가 이제는 축구에까지 확장 되었구나.”
연희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지구상에서 스포츠가 살아졌으면 하던 나에게 이번의 기회가 얼마나 다행이냐고. 더구나 월드컵은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가 되었다며 관람을 권유했었던 연희다. 이미 하나로 묶여버려 호흡까지 함께한다는. 나는 말했다. 아무리 세계가 하나로 되어간다 해도 관심이 없어. 신문이 배달되면 우선 스포츠란을 빼버려. 물론 경제란도 빼고, 음식 섹션을 빼고…, 나열했었다. 그럼 무엇을 읽는데? 연희의 물음에 동네 소식과 본국지 문화면 기사 그리고 관광…. 그 때마다 그래 너는 정혜성이다, 정혜성이다 였다. 그 뿐이냐,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데 우리의 승리에만 매달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월드컵이겠냐고, 보지 않는게 오히려 세계적이라고 억지까지 부렸다. 알고있다, 알고 있다, 일찍이 너를 알고 있다는 연희의 대답이었다.
“아무튼 나는 어느 팀이 운명의 여신과 소위 뒷거래를 하는지, 어느 팀에게 운명의 여신이 미소를 보낼지를 지켜보며 팀가이스트와 사랑에 빠졌어.”
“사랑, 사랑을 외치더니 이제는 공하고 사랑한다고?”
불가사의는 바로 너다. 그리고 이병주 소설전집 30권은 축구공과의 내 사랑이 시들면 전해 주겠다고 했다.
공은 누군가 오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절대오지 않음을 축구를 통해서 배웠다고 대학시절 골키퍼였던 까뮤가 일찍이 설파했었다. 그럼에도 운명의 여신에 매달려 세계는 웃고 울며 열광하고 있었다.
“괴테도 살아 있었으면 월드컵에 빠졌을 거래. 나의 괴테말야. 괴테가 이 시대에 존재 했다면 함께 하고싶은 심정이다.”
“한국의 발작이라던 너의 이병주 선생의 소설이 밀린 마당에, 네 삶의 멘토인 외삼촌을 닮았다는 요요마의 음악이 밀린 마당에 괴테는 존재하는 거니?”
“괴테와 함께라면 맛이 더 있을 것 같아.”
월드컵 기사가 지방판을 장식한 것이 동기였다. 만일 스포츠 섹션이나 본국지에만 나열 되었다면 나는 지금도 월드컵과는 관계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64부작 월드컵 드라마라는 제목의 지방판을 본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황금의 4중주, 마법의 4중주, 킬러들의 합창 그리고 중원의 지휘자하면서 음악 용어들이 현란한 서사시를 엮고 있었다.
스포츠 기사가 이토록 촉촉하고 맛이 있다니. 그 날부터 나는 스포츠 섹션으로, 본국지로 월드컵기사를 뒤져 나갔다. 그야말로 인생이란 NEVER SAY NEVER 이였다. 내가 스포츠에 열광하다니. 스위트 식스틴, 엘리트 에잇, 파이널 포…, 나는 기사를 읽고 T.V.를 틀고, 16강 이후 나의 일과는 오직 월드컵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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