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회에서 다루는 많은 안건들은 물론 복잡하다. 다분히 정치적이어서 일일이 분석하고 평가하기가 일반인들에겐 쉽지않다. 그러나 수백 수천만 달러를 상속받는 소수의 부유층보다는 시간당 5달러의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근로자를 우선 배려하는 게 민주정치의 신념이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건 또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논쟁을 넘어서는 사람사회의 기본 도리이기도 하다.
지난 주말 공화당 주도의 연방하원이 한밤중에 통과시킨 최저임금 인상법안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속셈이 너무 훤히 드려다 보여서다. 과연 이들이 우리가 선출한, 특정 소수 ‘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대변인인가 의심마저 든다.
간단히 말해 현행 시간당 5달러15센트인 연방 최저임금을 앞으로 3년에 걸쳐 7달러25센트로 올리는 법안과 5백만달러 이상의 유산에 대한 상속세를 면제내지 깎아주는 법안을 묶어 하나의 법안으로 통과시킨 것이다. 어찌보면 상반된 두개의 이슈를 패키지로 엮은 것은 공화당의 정략이다. 민주당을 향해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 “최저임금 올리고 싶어? 그러면 상속세도 깎아! 상속세 깎기 싫어? 그렇다면 최저임금도 못 올려줘!” 사방에 돈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패리스 힐튼에게 감세혜택을 주지 않으면 가난한 고학생의 최저임금도 못 올려 주겠다는 경고인 셈이다.
6주의 긴 여름휴가를 떠나기 직전 하원이 이 ‘비상식적’인 법안을 밤새워 통과시킨 후 상원에 던지고 간 데는 또 그만한 배경이 있다.
원래 최저임금 인상은 지난 몇 년 민주당 이 공들여온 숙원 과제다. 1997년부터 10년이 다 되도록 한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기업에 부담이 되고 오히려 실업률이 높아져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공화당이 계속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아, 그런데 같은 기간동안 의원들은 자신들의 세비는 연 3만여 달러씩이나 올렸다).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최저임금 인상을 주요 이슈로 부각시키려 할 것이다. 다급해진 것이 재선에 직면한 공화당 중도파 의원들이다.
하원의 공화당 중도파의원 50명이 지도부에 대책을 호소했다. 가뜩이나 부유층의 대변자로 비쳐지는 공화당인데 이번에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했다면 표심잡기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투표기회라도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름휴회 연기도 불사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대책을 강구하던 하원 공화지도부는 마침내 ‘묘안’을 발견했다. ‘그래, 상속세 감면과 한데 묶어 표결에 부치자’
부유층의 상속세 감면은 공화당이 끈질기게 추진해온 과제다. 이번 회기 중에도 하원에서 두 번이나 통과시켰으나 상원에서 두 번 다 부결 당했다. 현행 상속세는 2백만 달러까지의 유산만 면제 대상인데 앞으로 개인 5백만 달러, 부부 1천만 달러까지 면제대상을 넓히고 2천5백만 달러까지는 현행 상속세 20%를 15%로, 2천5백만 달러 이상은 현행 46%를 30%로 내려 적용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이 상속세를 감면하면 앞으로 10년간 세수입이 약 7천5백억달러나 줄어든다. 가뜩이나 재정악화가 심하니 당연히 지출을 줄여야한다. 메디케어, 푸드스탬프, 실업수당등 저소득층 혜택이 깎일 것이다. 그래서 공화당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 못지않게 민주당도 상속세 감면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전혀 다른 두 이슈를 한데 묶은 하원 공화지도부의 ‘묘안’에선 두가지 계산을 읽을 수 있다. 첫째, 아무리 상원 민주당 의원들이 상속세 감면을 반대한다 해도 선거를 앞두고 감히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할 수 있겠는가. 둘째, 설사 부결된다 해도 우리 공화당 의원들의 최저임금 인상 ‘찬성’ 투표 기록은 남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는 올리려했는데 민주당이 반대했다고 유권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다.
‘비열한 정치 속임수’라는 민주당의 비난에 “우리 전략이 너희 보다 한 수 위라서 화났지?”라고 맞받아쳤다는 한 공화당 의원의 자화자찬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하원보다 한 주 더 일하고 있는 상원은 여름휴가 떠나기 마지막 날인 내일쯤 이 법안에 대한 표결에 들어갈 것이다. 양당 지도부는 표수 세기에 분주하지만 아직은 예측 불허일 만큼 막상막하다.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부유층 소수의 상속세 감면을 위해 저소득층 다수의 최저임금을 볼모로 잡아놓고 ‘우리들’의 세금으로 휴가를 떠난 ‘그들’의 의원님들에 대해 분노하는 유권자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rokpark@koreatimes.com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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