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았고 6.25동란을 겪었으며 그래서 한국에 가면 기아와 가난에 쪼들려 각박해지고 신경질적일 것이다, 비아프라나 이디오피아의 난민수용소의 사람들이 우수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보아 왔던 것처럼. 그런데 실제 한국에 와서 보니까 한국인들의 표정은 밝고, 수염이 허옇게 난 노인이 유유한 팔자(갈지자)걸음을 걷고 있더라, 식민지 백성으로서의 고난을 겪은 사람들같이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 민족의 어디에서 저런 여유와 의연한 멋이 생기는가, 의구심을 가졌다는 것이지요.
외국인이 쓴 글 중의 한 대목을 이어령 선생께서 ‘한국인이여 한국을 이야기하자’라는 평론에 인용한 것을 필자가 재인용한 것이다.
이어서 작가 토마스 만의 아들 클라우스 만이 1930년 한국에 들어왔는데 어느 쪽이 지배자인 일본인이고 피지배자인 한국인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더라, 피지배자 한국인은 억눌림 당하고 있을 텐 데도 긴 담뱃대 입에 물고 여덟팔자로 여유 있게 걷는 반면 일본사람들은 허리가 구부정해가지고 안짱다리로 쫓기듯이 걷고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이 깃들어 각박하게 보이는데 어떻게 지배층보다 피지배층이 저토록 여유가 있고 늠름한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의연함이나 여유로움을 가졌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빨리빨리의 민족으로 인식될 만큼의 속도를 추구하다가 이런 여유롭고 의연했던 모습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면서 얻은 것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의연함이나 여유로움을 뒤로 밀어둔 채 앞으로, 앞으로 내 닫기에만 열중한 결과 경제대국 순위 열째에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정신적 여유로움이나 의연함을 다시 챙기지 않으면 더 내닫는 것도, 이미 이룬 것을 지키기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잃은 것이 마음이기 때문에 이것을 되찾지 않고서는 진정한 안정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사람이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소는 찾아 나서는데, 잃어버린 마음은 찾아 나서지 않는다. 우리가 학문을 하는 이유는 이 잃어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다”
쫓고 쫓기는 생존의 경쟁, 24시간 중 16시간을 생업을 위해 바치는, 너를 앞지르지 않고서는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그런 강박관념 속에 살고 있다 해도 15분, 30분 정도의 시간을 묵상, 묵념으로 학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상이나 이념논쟁을 떠나서, 그리고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는 발길을 잠시 멈추고서 60년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지요. 자식들이 친구를 사귀는 나이가 되면 그 친구 사귐이 얼마나 불안했고 염려가 컸습니까? 이런 아이들과는 사귀지 마라, 저런 아이들은 되도록 멀리하라, 알아보니까 그 아이는 공부보다 싸움질이나 놀기를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
마약하는 친구, 폭력을 휘두르는 친구, 무기를 소지하여 언제 사고를 일으킬지 모르는 불안한 친구, 술집이다 여자친구다 흥청망청 절제가 없는 정서불안의 친구, 자식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 중 한 사항에만 해당되어도, 사귐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귀지 못하도록 말린다. 그런데 이 나쁜 모든 모습들을 다 내포하고 있는 세계 유일무이의 정권에 걸만한 기대는 무엇인가요, 그 동안 1조원 이상의 지원금을 쏟아 붓고 얻은 것은 배신이 아니던가요? 그 돈이 불쌍한 이북동포들의 아사를 막아내는데 쓰였던가요?
이제는 금강산, 개성 관광 사업자를 바꾸라 하더군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룬다 해서 새 사업자와의 신의가 지켜질까요. 비위에 상하면 또 바꾸겠지요. 달라는 만큼 주지 않으면 말입니다.
이제 이쯤에서 한 발 물러서서 좀더 바른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의연하게 말입니다.
미국의 농담 중에 조금은 황당하다할 농담이 하나 있습니다. 예닐곱 되는 자녀의 말짓이 심하다보니 ‘이 녀석들을 한 10년쯤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철이 든 뒤에 꺼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말이 안 되는 푸념성 농담입니다. 필자의 심정이 이와 같다고나 할까? 통일이나 연대나 공조까지도 한 10년쯤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때가 이르러 통일 의욕이 무르익으면 다시 꺼내들 수는 없을까?
우리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통일 의욕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의연해질 수 있을 때에만 가장 이상적인 통일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굴레 속에 갇혀 있는 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설마 통일의 대명제가 중요하지 않다거나, 반대하는 주장쯤으로 오해하실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10년 후에 꺼낸다 해서 냉동된 아이가 10년 동안 성장하여 철이 들어 나올 수도 없겠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냉동실에 자식을 넣어둘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는 작년의 8.15 광복절기념식을 기억합니다. 태극기도 가지고 들어가지 말라, 대한민국 연호도 해서는 안 된다, 애국가도 만세삼창도 해서는 안 된다. 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광복절 기념식이었기에 아마 평생 잊을 수가 없으리라, 결국 다른 사건으로 국무총리는 야인이 되었지만, 그 시끌시끌한 3.1절 기념의 날, 선현들의 소중한 피 흘림과, 고귀한 함성을 되새기며, 해방의 기조가 되었던 그날의 그 정신을 무시하고 부정한 이들과 부정한 골프회동을 함으로써 국무총리의 옷을 벗었으나 올해의 광복절 기념식은 어떤 모습일지 자못 우려된다.
국민의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닦아주고, 서민들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어루만져 주는 그런 정부, 일상생활이 고되어 짜증이 날 때에도 정부나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안도할 수 있는 그런 정부, 그런 대통령을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가? 차라리 내가 잊고 사는 쪽이 쉬운 길인가, 다른 사람처럼 잊으면 그뿐인걸 왜 그리도 연연하며 속을 끓이느냐는 그 길이 훨씬 쉬운 길인가, 이러한 모든 염려에서 자유 할 수 없는 것은 연정보다 더 질긴 정 때문이다. 애국이라는 말은 여기에 대치시키지 말자, 잘라도, 잘라도 잘리지 않는 이 정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문형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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