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계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한마디로 모순덩어리다. 워싱턴 포스트가 일찍이 내린 정의다.
라이프스타일은 비(非)서구권 나라 중 가장 미국적이다. 그러면서 반(反)미가 보편적 정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한국의 모습을 모순, 그 자체로 보았던 것이다.
하여튼 모순투성이다. 세계화를 외친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외국인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한국형 모순의 극치는 북한 핵문제다.
한국인들이 당연히 긴장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느긋하기만 하다. 아니,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뭐 어떠냐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한국인들의 모습에 당혹감을 내비치면서 한국인들을 알 수 없는 사람들로 그렸던 것이다.
이게 3년여 전의 일이다. 시간이 흘렀다. 상황은 나아졌을까. 아니 오히려 악화된 것 같다. FTA 결사반대를 외친다. 더 배타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는 감각상실증에라도 걸린 것 같다. 때문에 하는 말이다.
“…마치 몽유병자 같다. 몽환적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한국이 보인 반응을 보도하면서 아시아 타임스가 지적한 내용이다.
온 세계가 난리다. 그런데 한국은 평온하기만 하다. 여름 날 낮잠에서 깨 길게 하품을 토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분주한 세계의 표정과 극도로 대조되는 서울의 풍경, 그게 뉴스였고 그걸 몽유병자의 반응으로 묘사했던 것이다.
한국사태가 보도된다. 당혹감 같은 것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발견되는 건 배신감이다. 분노다. 그 분노와 배신감이 요즘은 아예 조롱으로 표출된다.
‘미국인의 분노를 자초하지 마라’-. 수년 전 로버트 새뮤얼이 쓴 칼럼이다. 논지는 이렇다. 미국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는 일부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정권유지 차원의 반미선동행위다. 이런 나라의 경우 백래시(backlash)를 각오하라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일고 있는 반미주의를 다루면서 한국의 반미정서를 많이 언급했다. 그 행간의 의미는 다른 게 아니다. 한국에서의 반미를 배은망덕 행위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가, 북한인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리처드 앨런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칼럼이 나온 것도 비슷한 시기다. 그 표현이 상당히 노골적이다. 좌인지, 우인지 한국정부에 방향성을 분명히 보이라고 요구하고 있어서다.
이제 와서 보면 이는 마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 같이 보인다. 반한(反韓)기류라고 할까. 코리아-배싱이 이후 하나의 뚜렷한 흐름으로 감지되어서다.
“은혜를 저버리는 자보다 나쁜 건 없다. 배은망덕 1등상은 한국이다.” “한미 양국관계가 역사적 망각상태에 빠져 있다.”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가 클로즈업 됐을 무렵 워싱턴 안팎에서 쏟아져 나온 소리였다.
맥아더 동상 철거문제만이 아니었다. 평택 미군기지 반대, 광주기지 패트리어트 미사일 철수 요구, 강정구 발언 등에서 나타난 일련의 반미움직임이 워싱턴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결과다.
‘반한(反韓)을 지나 혐한(嫌韓)의 분위기다’-. 요즘 워싱턴의 정서다. 이제는 화도 내지 않는다. 차가운 시선 속에 냉소와 조롱을 날릴 뿐이다.
“…어찌됐든 김정일은 한국인의 눈에 여전히 사랑스런 존재인 모양이다. 정치범 수용소를 통해 수백만의 자유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을 굶겨 죽였는데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김정일은 미사일을 쐈을 뿐 전쟁을 도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북의 미사일 도발 사태와 관련해 케이토(CATO)연구소의 덕 밴도가 북한이 아닌, 민주체제의 일본을 전쟁도발 세력으로 규탄하고 나선 한국정부를 겨냥해 쓴 글이다. 언어도단도 유분수라는 야유다. 결론은 툭하면 맹방인 미국을 비난하는 한국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이 정황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한 말씀하셨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는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뭐 잘못됐느냐는 것이다. ‘그 까이꺼 미국이 뭐냐’는 얘기다.
워싱턴이 아연 입을 벌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외교의 수장인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 결연한 자주적 자세에 기가 질린 것인가. 아니면 무지에 경악해서인가.
그건 그렇고, 이러다간 ‘미국교포 노릇도 못해 먹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한국 대통령의 그 말씀이 한국외교의 ‘왕따’는 물론이고 ‘코리안-아메리칸 배싱’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점에서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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