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는 쇠창살에 매달려 본청 망루 위의 시계를 내다본다. 아침 8시51분.
“9분! 이제 9분만 더 지나면 오늘 하루를 살 수 있구나.”
그의 갈라터진 음성은 스며드는 기대에 엉겨 붙으며 가늘게 떨려나온다. 뒤이어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진 그의 몸이 내 뱉는 한숨의 무게에 짓눌려져 비좁은 독방 침상 위로 풀썩 떨어져 내린다.
진수는 사형선고를 받고 집행 날짜만 기다리는 사형수다. 그가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는 그 자신도 모른다. 그는 살인을 하지 않았고 죄를 진 적이 없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하늘을 원망하고 땅을 치며 억울함에 혀를 깨물고 가슴을 쥐어뜯었지만 아무도 그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았다.
진수가 인기척에 의해 취중의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보니 옆에는 전날 밤 다른 친구의 화해 주선으로 함께 술을 마신, 평소에 사이가 안 좋던 친구가 가슴이 온통 피로 물든 채 누워 가녀리게 신음하고 있었다. 몽롱한 중에도 그는 황망히 몸을 일으켜 친구의 가슴위로 상체를 다가갔다. 그때 방문이 열리며 여관 종업원이 들이닥치다가 소스라치는 비명과 함께 뛰쳐나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피 묻은 칼이 자신의 손에 들려있었다. 친구는 절명했고 진수는 그 뒤 수갑을 찬 채 법정에 섰다. 여러 번의 논쟁이 지나갔다. 피를 토하듯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공판결과는 사형선고였다.
그는 매일 아침 9시까지 문으로 한 발자국씩 다가서는 죽음의 검은 그림자를 의식하며 심장이 멈추는 긴장 속에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주시하곤 한다.
사형집행은 통상 아침 9시 이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왼쪽 방에 있던 사형수가 아침 9시 되기 전에 불려나가곤 자기 방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른 쪽 방의 사형수도 마찬가지였다.
진수는 다시 침상 위로 올라가 발뒤축을 고이고 창살사이로 망루 위의 시계를 바라본다. 바야흐로 시계의 큰바늘이 12자를 넘어서고 있다. 그의 굳어졌던 전신의 근육이 한꺼번에 풀리며 몸은 침상위로 죽처럼 힘없이 흘러내린다. 창살사이로 엷은 햇살이 비껴든다. 이제 비로소 그에게 하루의 삶이 주어진 것이다.
그는 기록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여 쓰기 시작한다.
“세상이 안 믿어도 나는 나의 결백을 글로 남겨야만 해. 세월이 지난 후 어느 한 세대라도, 아니 다만 한 사람이라도 이 글을 읽고 그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이진수라는 청년이 있었다고 믿어 준다면 그것만이 내 영혼의 위로가 되겠지.”
그에게도 자신을 힘껏 껴안아주던 따뜻한 부모와 정 깊이 사랑하던 아름다운 여자가 있었다. 이루려던 무지갯빛 꿈도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 모든 것을 이유도 모른 채 앗겨 버리고 자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손에 쥐고 허우적거리며 마지막 숨결을 하나 둘 헤아려 가고 있는 것이다.
진수가 사형을 선고받고 감방으로 돌아오던 날 그는 몸부림쳐 울부짖으며 수십 번을 하늘에 대고 묻고 또 물었다.
“왜 내가 죽어야만 돼? 왜? 왜 내가 죽어야만 되느냐고요…?”
그러나 그의 울부짖음은 불붙은 소지처럼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에게 떨어진 답변은 재처럼 죽어야만 된다는 것, 그저 죽으려고 태어났다는 것밖에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었다. 그 후 그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말을 되씹으며 숨결마다 죽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그러나 갈수록 죽음은 그에게 더욱 생소해만 갈 뿐 전혀 가까이 다가오질 않았다.
어스름이 주변을 감싸 아쉬움과 죽음의 고뇌 속에 자신을 묻어 버릴 때면 그는 늘상처럼 절망과 희망의 교차로에 홀로 서있는 자기를 발견하곤 한다.
“나에게 며칠만, 단 며칠만 더 주어진다면 나의 가던 길이라도 끝내련만…”
오늘 이 밤이 마지막을 가져오는 전령사인지 아니면 다음날로 연결되는 고리인지 그저 미지의 안개 속에서 하루를 닫으며, 모래 한 알갱이만한 소망을 뼈만 남은 가슴속에 묻어버린 채 그는 바자윈 잠으로 죽는 연습을 또 한 번 가져본다.
미명이 새로운 하루를 가만히 그의 곁에 가져다 놓았다. 점점 퍼져드는 햇살은 그의 숨통을 자근자근 옥죄어든다.
“오늘이 나의 끝 날이라면…!”
그의 온 몸은 다시 굳어지며 심장의 박동이 점점 꺼져가기 시작한다. 전신에 식은땀이 배어 나온다. 안간힘으로 침상머리에 올라 다시 망루의 시계를 바라다본다.
그때 밖의 철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에 이어 자신의 수형 번호를 부르는 소리가 저승사자의 호출처럼 고막을 찢고 들어온다. 순간 하늘이 노랗게 그의 안구를 덮는다.
그는 침상에 그대로 고꾸라지는 자신을 애써 가누고 몸을 일으킨다.
‘때가 되었구나! 진수야 비겁하지 마라. 너는 죽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거야.’
그는 휘청휘청, 그러나 똑바로 걸어서 문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방문을 열어 잡고 서 있는 간수가 그의 망막에 부옇게 흔들린다. 흔들리는 상이 정지되며 숨이 끊기고 심장이 멎는 몇 초간의 진공이 머문다.
“xoxo번 이진수, 석방이야.”
불과 두 팔 거리에 선 간수의 입에서 터져 나온 그 말이 진수의 고막을 두드리기엔 너무 멀었다. 1년 전에 공판정에서 있어야 했을 말이었기에…
전혀 무표정한 그에게 간수는 의아한 듯 고개를 기우뚱하곤 다시 큰 소리로 되뇐다.
“이진수, 석방이야. 자네 무죄로 석방이라니까…
진범이 잡혔어.”
진수는 비척대고 돌아선다. 그리곤 창틀에 가려 반쯤 바라보이는 망루의 시계를 멍청하게 올려다본다.
시계는 아침 9시를 지나 있었지만 그는 예전의 진수가 아니었다.
■월간문학 소설 신인상(2004)
산비둘기(장편) 등 작품 다수
윤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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