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 이은 한국 사랑 킨슬러 목사
부친은 선교사… 평양서 태어나
서울에 정착, 한국인 아내 맞아
북한 사역위해 등대선교회 설립
매일 2만명에 빵·콩우유 제공
북한 장애인 돌보기로 지경 넓혀
아서 킨슬러 목사(한국명 권오덕)는 1934년 일본 식민지 당시 북한 평양에서 태어났다. 1928년 24세 때 선교사로 평양 땅을 밟은 아버지 프란시스 킨슬러 덕택에 평양이 고향이 됐다.
아버지는 킨슬러라는 발음에 가장 가깝다고 믿은 권세열이라는 한국 이름을 썼다. 그만큼 한국을 사랑했다. 1940년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일본이 선교사들을 한국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48년 한국으로 돌아와 선교사에서 은퇴하던 70년까지 한국을 지켰다.
한국 사랑의 피가 대를 이어 흐르는 탓일까. 킨슬러 목사도 아버지를 따랐다. 6·25전쟁이 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돌아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 인턴십을 위해 57년 한국을 다시 찾았다. 이때는 경신, 대광, 숭실 등 기독교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신학대학원을 다 마치고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게 63년. 물론 65년 교회에서 기독교학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 68년 결혼을 한 아내 신영순(60·미국명 수 킨슬러)씨 덕택에 한국 사랑이 더 깊어졌다. 신씨는 “첫 눈에 빠진 사랑이었다”고 말한다.
2002년 68세 나이에, 평양을 떠난 지 62년만에 고향을 다시 찾을 때까지 킨슬러 목사는 어쩔 수 없이 북한을 잊고 살았다. 그 사이 베트남 전쟁에서 군목 장교, 이태원 미국 군인 봉사선교 센터, 순천 산업단지 선교, 예수장로회 해외선교부 동역 선교사 등으로 한국에서 계속 복음을 전했다. 일찍 국제결혼을 한 탓에 한국서 국제결혼으로 애를 태우는 후배들을 위로하는 사역도 했다.
킨슬러 목사의 북한 사랑은 아내 덕택에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96∼97년 잇따라 북한에 홍수가 발생해 식량난이 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에 신씨는 북한을 돕기로 결심했다. 남편이 미국에서 재정 도움을 얻어오면, 북한을 더 수월히 드나들 수 있는 한국인 신씨가 전달하기로 한 것이다.
기도와 긴 준비 끝에 북한에 처음으로 들어간 건 1998년이었다. 북한에 결핵약을 전달하고 있던 유진벨 재단과 연이 닿아 5,000명에게 지원될 약품과 트럭 한 대를 전달할 수 있었다. 킨슬러 목사의 아버지와 유진벨이 한국 선교사로 같이 활동했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순수하던지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특히 영양실조로 제대로 못 크는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무너졌어요. 저 아이들을 돕는 게 지금부터 제 할 일이구나 느꼈어요.”
북한에 대한 신씨의 첫 기억이다. 2000년 미국장로교 단체와 함께 평양 육아원과 사리원 국수공장을 둘러본 게 북한 사역에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이때 육아원에서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고 있던 미주한인 권사(이름은 신분 보호상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를 만난 것도 결심에 힘을 실어줬다.
3년간 두 달에 한번씩 북한을 찾던 신씨는 개인 차원의 지원에 한계를 느껴 2004년 3월 등대복지회를 설립했다. 북한 사역을 시스템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이때부터 북한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사리원에 콩우유 공장, 평양 대동강 구역에 평화빵우유공장을 설립했다. 350명을 수용하는 사리원 고아원 지원도 맡고 있다. 하루 평균 어린이 2만명이 등대복지회 덕으로 콩우유와 빵을 먹고 있다.
북한에 지원되는 밀가루만 한 달에 30톤이다. 콩, 설탕, 콩기름, 이스트 등 지원 품목도 다양하다. 콩 재배를 돕기 위해 농기계도 보내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북이 서로를 아는 게 중요한 때라고 믿어요. 60년 이상을 분단된 상태로 살았기 때문에 서로 너무 모르잖아요. 통일이 됐을 때를 대비해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고 건강하게 키우는 것도 그런 일환이죠.”
킨슬러 목사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북한 돕기에 쓰고 있다. 그렇다고 킨슬러 목사가 거창하게 남북 평화를 부르짖지는 않는다. “예수님이 힘들고 굶주린 자를 도운 것을 따라할 뿐입니다. 불쌍한 아이들이 굶고 있는 걸 안 도울 수가 없잖아요”라는 게 그의 말이다.
<김호성 기자>
열악한 북한의 보육시설.
아서 킨슬러 목사(오른쪽)와 신영순 사모가 등대복지회와 조선장애자보호연맹중앙위원회가 맺은 장애인 협력사업 합의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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