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예전 놀부 같은 사람을 비아냥거릴 때 쓰이던 이 말은, 요즘처럼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세태에서는 말 그대로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행복하고 편안하게 잘 살아라”라는 축복의 뜻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분 웰빙(Well being) 바람과 높아진 경제력으로 인해, 단군이래 ‘배부르고 등 따시면’ 더 바랄 게 없던 한국 땅에도 이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게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하였다.
‘잘 먹고 잘 살자’로 종종 압축되는 웰빙 바람은 언제부턴가 ‘흰 쌀밥 한 번 실컷 먹어 봤으면’ 하던 소원을 옛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다. 통계적으로 보면 1980년 한 사람이 하루에 363g을 먹던 쌀 소비량은 그간 꾸준히 줄어들어 2005년에는 221g에 그쳤다. 25년 사이에 60% 수준으로 내려가서 한 사람이 하루 두 공기 정도의 쌀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 되었다. 반면 고기와 과일 소비는 꾸준히 늘고 있으며 특히 과실류 섭취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디 먹는 것 뿐인가? 가계의 총지출 중에서 여가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1980년에는 도시가계 총지출 중에서 교양오락비 지출 비율은 1.8%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5% 수준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웰빙은 무엇일까? 단순히 잘 먹고 즐기며 살자는 것인가? 웰빙의 영어 사전적 정의는 ‘행복하고, 건강하며, 번영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더 나아가 미 스탠포드 대학의 철학사전에 따르면 웰빙은 통상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다. 결국 무언가를 행함으로써 (먹는 일, 즐기는 일, 또는 돈을 버는 일이건 간에) 나에게 또 남에게 이롭고, 건강하며, 그래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더 잘 살 수 있다면 그게 웰빙이고, 이는 곧 삶의 목적인 행복으로 연결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
사는 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더 잘 살 수 있다는 데 웰빙을 추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웰빙의 본래 뜻을 왜곡시키는 일부 상업적 마케팅과 이로 인한 사회의 지나친 고급 소비 조장이다. 이들은 소비자들의 ‘웰빙’ 하고 싶어하는 심리에 편승하여 대중에게 ‘웰빙’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우유에 뭔가를 조금 더 첨가시키면 건강이 배가되는가? 굳이 고급 브랜드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을 해야 운동 효과가 배가되는가? 그 비싼 유기농이 아니면 좀 어떤가? 대중매체를 통해 온통 웰빙이란 이름으로 고급소비가 조장되고, 이에 따른 비싼 웰빙에 대한 이미지가 전달됨으로써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소위 ‘고급’ 웰빙을 하지 않으면 마치 자신의 삶의 질이 떨어지기라도 하는 듯이 느낀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는가?” 얼마 전 워싱턴 포스트 지는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지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는 기사를 내 보냈다. 돈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데 쏟는 시간이 더 적어진다는 점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한 연구자의 말을 인용해, 사람들이 경제적 부가 덜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즐길 수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일의 경우 급여 외에 일의 ‘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을 이 기사는 권하고 있다. 어디 일 뿐이겠는가? 단순한 우유를 마셔도, 잡곡 한 톨 없는 흰 쌀밥을 먹어도, 재래 시장에서 막 파는 유기농 아닌 과일, 채소를 먹어도, 이를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그 순간 나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낡고 헐렁한 운동복일지언정 입고 뛰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더 나은 내일을 맞을 수만 있다면 삶의 ‘질’이 왜 높아지지 않겠는가?
테리 헴튼과 로니 하퍼가 지은 ‘고래뱃속 탈출하기(1999)’란 책에 나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아는 사람 중에서 늘 행복하게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법이 없다. 그는 많이 웃고 항상 즐겁게 지낸다. 무슨 일이든 결국엔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행복은 어느새 당신 곁으로 다가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웰빙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행복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개인의 모든 이로운 행위일 것이며, 그 뒤에는 나의 ‘즐기기’가 달려 있다. 나의 일을, 웃는 일을, 먹는 일을, 가족과의 시간을, 긍정적인 사고를 즐겨보자. 그러면 행복이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미소 짓지 않을까? 내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때, 상대방에게도 축복의 마음을 담아 인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잘먹고 잘살아!”하고.
오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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