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월드컵 축구 시합은 프랑스 축구스타 지네단 지단선수의 박치기 사건과 함께 막을 내렸다. 지단 선수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알제리계 이민 2세다. 자라면서 가난과 인종 차별의 아픔을 겪은 콤플렉스가 있고, 축구 하나에 혼신을 다한 나머지 마침내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언제나 긴장으로 굳어진 딱딱함이 베어 있어 발랄한 젊은이의 활짝 웃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이탈리아와의 결승 연장전 마지막 10분을 앞두고 상대방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넘어뜨렸다. 상대선수가 그의 어머니와 누이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어 그만 순간적으로 자제심을 잃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깊은 상처는 낫는 것 같다가도 쉽게 재발한다. 다 나은 것 같아도 잘못 건드리면 까무러치게 놀란다. 생각할 틈도없이 깜짝 놀라 펄쩍 뛰는 반응이 나온다. 마음의 상처도 이와 비슷하여 깊은 열등감의 상처를 건드리면 경기를 일으키기도 하고 미친 듯 흥분하는 경우들이 생긴다. 평소는 얌전한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큰 사건에 휘말리는 경우들이 종종 신문지상에 보도되기도 한다.
어릴 적 이웃집에 살던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이야기다. 무슨 공무원이었는데 다리를 소아마비로 약간씩 절룩거렸다. 그리 심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부 싸움 끝에 그만 그 양반이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가구들을 부숴 버리고 자기 부인과는 두 번 다시 살 수 없다고 하면서 집에 불까지 질러버렸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불은 껐지만, 수십년 함께 살아온 부인과 남남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서 싸웠다가도 곧장 화해하고 잘들 살던 때였다. 그런데도 그 순한 양반이 끝내 돌아서 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부부 싸움 중에 부인이 홧김에 “병신이 xx하네-”라고 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몹시 아픈 부위, 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었다.
인간은 모두 하나 같이 아픈 사람들이다. 겉은 멀쩡해도 속으로 신음하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키가 작으면 작아서 고민, 크면 키다리여서 고민이다. 체중이 덜 나가면 말라서 고민, 살이 찌면 뚱보여서 고민이다. 그래서 모든 조건이 완벽한 데도 키가 작아 고민인 남성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가 대단하다. 잘만 풀리면 오히려 나폴레옹이나 박정희같이 될 수도 있겠지만, 키 하나 때문에 인생을 기죽어 지내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상처를 주면서도 상대방의 아픔을 알아채지 못하는 무신경들이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자연 우리 주변의 삶 속에는 신음소리가 지천에 깔려 있게 마련이다.
소시민에서부터 대통령까지 인간이면 누구나 예외일 수 없겠다. 완전한 인간이 없기에 저마다의 열등감과 콤플렉스로 과민반응을 보이며 사는 것 또한 인생살이다. 얼굴 생김새뿐만 아니라 출신지역 학벌 콤플렉스까지 겹친 한국은 더 더욱 심할 수밖에 없겠다.
지난번 선거에서 현 정부의 여당이 사상유래 찾아볼 수 없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때 총 책임감을 느껴야 할 대통령이 ‘한두번 선거에 졌다고 해서 당장 나라가 망할 것도 아니지 않느냐!’하는 식으로 배짱 아닌 어거지(?)를 부린 것도 어쩌면 고졸의 학력 콤플렉스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잠재의식 속에 잠겨있는 서로의 아픈 상처들을 건드리지 말일이다.
아이 못 낳은 부부 앞에서는 부디 자녀들 이야기를 삼가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주위의 신음소리에 약간은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왜냐면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김재동
의사·한미 인권연구소
이사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