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나의 신간 ‘방방 뜨는 여기자 생생 미국일기’의 북 사인회가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축하해주셨고, 오랜만에 가족 친지 친구들이 다 모여 담소도 나눌 수 있었던 화기애애한 행사였다. 이로써 생전 처음 책을 내고 마음 한구석 내내 신경 쓰이던 일을 끝마쳤다. 마음이 얼마나 편하고 홀가분한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모든 인간사에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정해놓고는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묻고 권하고 강요하고, 그래도 안 하면 화까지 낸다. 예를 들어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에게는 결혼 상대가 있는지, 언제 결혼할 것인지, 결혼을 하고 나면 언제 아기를 낳을 것인지, 첫아기를 낳고 나면 둘째는 또 언제 낳는지에 관하여 계속 묻고 괴롭히는 식이다.
책을 출판하고 나서 지난 두달동안 그와 같은 일을 수없이 겪었다. 모든 사람이 책을 냈으면 당연히 출판기념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만나는 사람마다 첫 인사가 “출판기념회를 언제 하느냐”는 것이었다.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처음에는 믿지 않거나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대부분은 “그래도 꼭 해야지”하고 다짐을 주면서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한 선배는 점심까지 사주면서 “왜 출판기념회를 해야하는가”에 대해 1시간반 동안 설득했고, 또 한 선배는 불러다놓고 거의 호통 수준으로 야단까지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세게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은 이유. 그럴만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쓴 책이 아니라 주방일기 몇 편을 모은 책이라는 점, 이곳 독자들보다는 한국의 독자들을 보고 낸 책이라는 점, 그리고 출판기념회를 하면 정말 참석하고 싶은 사람보다 인사차 참석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진정코 내 책을 사람들이 ‘인사차’ 사주길 원치 않았다.
내가 그런 이유들을 들며 수없이 설명을 해도 주위에서는 결코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출판기념회를 꼭 해야한다”, “안 할거면 우리끼리 파티라도 하자”는 의견이 겹치다가 중간 타협점으로 만들어낸 행사가 북 사인회였다. 축사, 격려사, 서평, 작가소개, 인사 등의 거창한 식순이 없이 부담없이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 문제는 내가 유명인사도 아닌데 독자들이 많이 안 오면 무안해서 어쩌나 하는 것이었는데 친구들이 “우리끼리 놀면 되지 뭐”하고 부추기는 바람에 일을 벌이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다. 북 사인회 일주일 전에 노형건 단장이 진행하는 라디오 서울의 ‘홈 스윗 홈’에 출연한 것과 우리 신문 사회면에 1단짜리 기사를 낸 것이 전부였다. 초청장 하나 만들어 보내지 않았고, 이 일로 아무에게도 일부러 전화하거나 알리지 않았다. 그러니 그날 와준 사람들은 진짜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온 사람들뿐이었다. 나는 그 사실이 정말로 기쁘고 마음이 좋다. 내가 원한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바람대로 거창하지 않고 아담한 북 사인회가 되었다. 나는 그날 입을 옷만 열심히 사러 다녔지, 와인 몇병 들고 간 것 외에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떡, 과일, 과자, 치즈를 각각 한두 접시씩 나누어 가져왔고, 배너를 만들어 붙이는 일부터 책상 셋업하고 책을 쌓아두고 꽃다발을 정리하는 일까지 모두 알아서 해주었다.
결혼식 이후로 내가 주인공이 된 행사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두시간 동안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와 손이 저리도록 사인을 했고, 남편과 아들도 출연하여 평소 두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했던 많은 독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해야겠지만 특별히 이번 북 사인회는 노형건 단장과 코리아타운 갤러리아의 세 친구-티나와 알린, 앨런 박 사장의 수고로 이루어진 것이다.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며 모두들 나서서 자기 일처럼 챙겨준 덕분에 주변머리 없는 내가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많은 편의를 제공한 세종문고 박창우 사장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저녁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준 모든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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