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명의 제자들이 중학교 때 수학여행처럼 선생님과 추억을 담아보자며 서해안의 춘장대로 모였다. 가을이 깊어가는 주말, 나를 환영하는 현수막에는 내 이름이 커다랗게 써 있었다.
고국에 살고 있는 30년 전 제자들의 초청을 받고 두 달 가량 한국에 머물다가 돌아왔다. 거의 매주 한 두 명에서 그룹 미팅까지 여러 제자들을 만나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지난 날 물상과목 선생으로, 담임으로 도시 인근의 시골중학교 풋내기 처녀선생이었다. 미리 수년간 가정교사와 야학선생, 교생실습으로 가르치는 경험을 쌓긴 했지만 실제의 교육은 힘든 일이었다. 사춘기의 시골아이들은 대부분 착했다. 몸집이 나보다 큰 남학생들에는 때론 주눅도 들었지만 날마다 당당히 교단에 섰던 기억이 남아있다.
60여명의 제자들이 중학교 때 수학여행처럼 선생님과 추억을 담아보자며 서해안의 춘장대로 모였다. 가을이 깊어가는 주말, 나를 환영하는 현수막에는 내 이름이 커다랗게 써 있었다.
성능이 좋지 않은 시골 식당의 마이크여서 사회자의 말을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다. 반가움으로 흥분했던 나는 제자들이 묻는 말에 동문서답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비디오 테입을 보면서 배꼽을 쥐었다. 감사패와 금으로 만든 행운의 열쇠, 그 당시 소풍가서 내가 불렀다는‘애모의 노래’까지 제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저녁을 먹고 여 제자가 운영하는 민박숙소에서 자정까지 그들과 놀다가 늦게 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창문너머로 기분이 좋아 술에 얼큰히 취한 제자들이 날을 지세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 왔다.
다음날 아침 텐트 속의 식당에서 서해안에서 나오는 싱싱한 바지락 조개국을 먹으며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시간들이 넉넉지 않아 일일이 대화를 나누지 못해 아쉬웠다. 여전히 수줍은 듯 선한 눈빛으로 조용히 웃고 있던 한 제자. 유난히도 눈썹이 까맣던 그 제자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충분한 대화를 못했기에 나는 미국에 돌아와 그의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제가 말주변이 없지만 그리운 선생님을 만나는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요. 중학교 때 가르치던 그 모습 그대로의 선생님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뜻밖에 나의 국제 전화를 받은 제자는 지난 날 춘장대에서의 반가움을 그렇게 피력했다.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도 못간 제자는 자동차 기술을 배웠다. 전북의 고창으로 와서 20여명의 직원과 함께 자동차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28년째 같은 장소에서 신용으로 사업을 한 덕에 지금은 고창의 터줏대감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제자와의 대화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타인과 키재기를 하지 않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가는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저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살아왔을 뿐입니다.” 공부하는 친구들이 때론 매우 부러웠겠지만 그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한없이 착한 제자들 의 삶을 듣노라니 나 혼자 알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연이었다.
16년이나 가보지 못했던 고국은 듣던 소문대로 천지개벽이 일어나 있었다. 물론 고국의 눈부신 발전도 가슴 뿌듯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지치고 피곤해 보였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그저 잘나가는 이웃과 비교하면서 쫓아가려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안 된다며 농사를 짓지 않고, 힘이 든다며 막노동을 포기하고 있었다. 외국에 이민을 와서는 부족한 영어 때문에 막노동도 가리지 않고 하면서들 잘도 살아간다. 남의 나라에 가서는 할 수 있는 일을 왜 대한민국에서는 할 수가 없단 말인가! 체면 때문이란다. 그 잘난 자존심도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허망한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을 향해서 욕심을 부리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부자와 서민, 또 중간층의 사람들이 모두 어울려 서로 존경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우리가 지금이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떠나버린 적막한 고국의 농촌 , 노동자를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실정에 나는 한국의 장래를 걱정했다. 이런 나의 염려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 나라가 언젠가는 외국인이 주인이 되어버릴까 걱정하는 분도 있었다. 체육관에 가서 돈을 들여가며 살을 빼기 위해 흘리는 비지땀을 자연과 공장의 일터에서 흘리며 보람을 찾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다행히 일부 아파트 주민들이 땅을 빌려서 자급자족한다며 즐거운 농사를 짓는 일은 참 보기 좋았다.
그들은 정당한 땀의 힘든 대가를 배우며 맛있는 채소도 먹을 수가 있으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나의 제자, 그는 하루 종일 손에 검은 기름때를 묻히고 살아간다. 평균 하루에 사 오십 대의 자동차를 수선한단다. 평일에는 외출을 못하니 일요일에 내가 고창을 방문한다면 함께 나들이를 가잔다.
제자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도 보고 함께 고창 선운사와 읍성, 고인돌도 보러 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두 자녀를 기르며 남편의 사업을 잘 후원해준다는 착한 아내가 누구인지도 나는 궁금해진다 .
■‘수필시대’신인상/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최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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