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在中) 조선족이 즐겨 읽는 `흑룡강 신문`의 이진산 사장(57)은 한마디로 못 말리는 사나이다. 2002년 월드컵 예선 때 중국 대표축구팀이 한국팀과 몇 차례 평가 전 끝에 번번이 패하자, 이를 중계하던 중국TV방송의 아나운서들이 “시답잖은 나라한테 지다니 말이 안돼…” 식으로 서울을 폄하 하는 방송을 일삼았다.
이 방송을 듣던 이진산은 당장 방송사를 찾아 “뭐, 시답잖은 나라?”라고 대갈일성, 문제의 발언을 늘어놓은 아나운서를 불러 호되게 나무라고, 방송사 간부들로부터 사과를 받아냈다. 현지 조선족들한테 지금도 한줄기 소나기처럼 시원한 일화로 남아있는, 해외동포 언론의 짱짱한 진면목이다.
유럽을 꼼꼼히 여행해 보면 누구나 공감하지만 도시의 한 가운데에 으레 교회가 있다. 재외동포 언론의 위상이 바로 이렇다. 동포들 사는 곳 어디에 가든 그 한 중심에 동포언론이 있다. 동포의 이민사가 바로 해외동포 언론사 그 자체다. 자랑할 만한 업적이다. 이 업적 중에서도 특히 미주 한국일보가 세운 기념비적 업적은 특출하다.
1969년 LA일원에서 한 페이지 짜리 200부를 찍던 이 신문은 지금 매일 150페이지 책 같은 신문을 찍어내는 공룡급 신문이다. “한인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던 탐 브래들리 전 LA시장의 표현이 빈말이 아니다.
두 번째 업적으로, 이 역시 동포언론이 총대를 멨던 70년대 `어린이 고추` 사건과 `이철수` 사건이다. 어린이 고추사건은 주유소에 들른 미국 소년한테 두 명의 한국인이 “야, 이놈 잘생겼다. 고추 한번 만져보자”로 시작된 사건이다. 미국에서 어린이 성범죄는 징역 3년이 선고되는 중죄다. 이를 성범죄가 아닌 한국인 고유의 풍습으로 여론을 몬 미주동포 언론 덕에 미 법원은 이 사건을 기각한다.
이철수 사건은 국제 결혼한 어머니가 한국에 남겨 둔 아들 철수를 데려온 데서 시작된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미국인과 함께 사는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으로 철수는 갱이 되고,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연루돼 교도소에 들어간다. 또 교도소 내에서 또 한 차례의 살인 사건에 말려든다. 동포후원회와 변호인이 끝까지 물고 늘어진 결과 철수는 첫 번째 살인의 진범이 아님이, 또 교도소 내 살인도 정당방위였음이 입증돼 석방된다. 이 과정에서 구심점을 맡았던 것이 동포언론이다. 동포언론에 대한 한인 커뮤니티의 신뢰도는 이처럼 대단하다.
LA 중앙일보가 2003년 조사한 `남가주 한인들의 의식패턴`에 따르면 동포 44.4%가 동포신문을 정보를 구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라 답했다. 이어 한국어 TV가 42.8%, 영어 TV 34.8%, 타인과의 대화 32.9%, 인터넷 26.7%(중복응답)… 순이다. 얼핏 고무적인 통계로 보이지만, 앵글을 바꾸면 비관적일 수도 있다.
재미동포들이 한글신문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민 1세의 언어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이기 때문인데, 영어와 한국어가 반반인 1.5세대 또 한국어와는 갈수록 멀어질 2, 3세대로 가면 장차 어찌될 것인가. 이런 우려는 미주 동포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동포도 마찬가지다.
이의 극복을 위해 동포신문에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우리에게 태생적으로 모자란 타민족에 대한 `나눔`을 캠페인으로 보도해주기 바란다는 점이다. 패전직후 당장 가래침 뱉지 않기 캠페인을 벌여 일본의 자긍심을 회복시킨 것이 아사히(朝日)신문이다. 나눔을 진작부터 고취했던들 LA 폭동사태는 미연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하나, 스칸디나비아 국민들이 이민대상지로 눈 많이 내리는 미네소타를, 또 지중해권 프랑스가 따뜻한 뉴올리언스를 골랐듯이 우리도 이민 초기 서울-미주 간 항공요금이 제일 쌌던 LA만 고집하지 말고 차제에 서울처럼 4계절이 분명한 버지니아, 매릴랜드 또는 뉴잉글랜드를 골라, 그것도 이왕이면 주민이 작은 주를 골라, 재 이주를 슬슬 시도해보기 바란다는 점이다. 이민 100년이 지나면 일본 하와이 이민처럼 연방의원이나 주지사가 몇 명쯤 나왔어야 할 것 아닌가. 이 역시 동포언론 아니고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역할이다. 해외 동포언론을 주목해 온 나의 주된 이유다.
김승웅
한국 재외동포재단
사업이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