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하던 시절은 옛날
윔블던 8강에 한명도 못 들어
노장 대체할 새싹 없어 문제 심각
미국 테니스가 말이 아니다. 세계를 주름잡던 테니스 제국이 졸지에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이번 윔블던은 미국 테니스의 추락이 극명하게 드러난 대회. 미국 선수 남녀를 통틀어 한명도 준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까마득한 옛날 1911년에 일어났던 ‘황당한 참사’가 올해 발생한 것이다. 미국 테니스가 ‘새로운 신세계’로 들어섰다는 조롱이 나오고 있다. 지난 2년 연속 윔블던 결승진출자인 앤디 로딕은 3라운드에서 스트레이트 세트 패로 물러났고(그는 ‘미국 테니스의 희망’에서 ‘희미한 등불’로 변해버린지 오래다), 노장 안드레 애거시는 3라운드를 마지막으로 윔블던에 안녕을 고해야했던 것으로 의미를 찾아야 했다. 로딕을 제치고 미국 테니스 1인자 자리로 오를 예정인 제임스 블레이크도 윔블던의 첫 주말을 보낸 뒤 짐을 쌌다.
여자 선수도 마찬가지. 타이틀 방어에 나선 챔피언 비너스 윌리엄스 역시 3라운드의 벽에 걸려 넘어졌고, 전 윔블던 챔피언들인 서리나 윌리엄스, 린지 대븐포트는 출전조차 못했다.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을까? 바닥에 추락한 미국 테니스의 뺨을 후려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도 나온다. ESPN2는 미국 테니스가 ‘차갑게 식은 피자’가 돼버렸다고 마음껏 모욕하며 속죄양을 찾기에 바빴다. 피트 샘프라스가 미국 테니스를 지루하게 만들어버려 크게 될 재목들이 다른 스포츠로 새 나가버렸다는 말도 나왔다.
문제를 직시하기보다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분노를 달래는 형국. 나아가 자포자기적 발언도 나온다. “미국이 그러면 다른 스포츠는 잘하냐? 야구도 농구도 하키도 축구도 정상에 오르지 못하지 않았나. 테니스만 문제가 아니다. 모든 스포츠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전 프로 엘리엇 텔쳐는 말한다.
테니스 신생국인 중국 여자 선수도 세계 랭킹 50위 안에 미국선수만큼 많이들어 있다. 러시아 선수는 10명이나 된다. 프랑스가 5명이고 미국은 3명밖에 안된다. 30세 대븐포트와 26세 비너스 윌리엄스, 32세 질 크레이버스, 모두 늙은이들뿐이다.
5년전은 어땠을까. 윔블던 4강안에 미국여자선수가 3명이나 들어있었다. 제니퍼 캐프리아티, 비너스 윌리엄스, 대븐포트. 세계제일의 테니스 제전은 미국선수들의 잔치였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암담하다. 애거시는 이미 은퇴를 공식화됐고, 대븐포트는 와병중이다. 윌리엄스 자매는 파트타임이고, 로딕은 투지가 유리잔처럼 쉽게 부서진다.
앞으로는 좀 나아질까? 그럴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있다.
21세 아래로 ATP 랭킹 100위 안에 든 미국선수는 한명도 없다. 복식 스타였던 밥 브라이언은 “지금은 세르비아와 같은 전쟁으로 찢긴 나라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나온다. 이런 선수들은 생존을 위해 테니스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마리아 사라포바가 스타로 뜬 것은 인생을 걸고 죽기 살기로 테니스를 했기 때문인데 그럴 절박성을 미국선수들은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100위안에 러시아 여자 선수는 13명이나 들어있고 다른 동구 선수들도 위로 속속 올라오고 있다. 21세 아래 미국여자선수는 100위안에 4명뿐이고 50위안에 든 선수는 없다.
윔블던을 비롯해 올해 그랜드슬램대회 성적에서 드러난 성적도 실망스럽지만 앞으로도 빛이 보이지 않는다. 암담한 처지다.
전설적인 챔피언 지미 코너스는 “조속히 모종의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이번 세대와 그 다음 세대도 놓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쉽게 미국테니스협회(USTA)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협회가 나선다고 해서 뾰쪽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란 것을 모두들 잘 알고 있다.
가능성을 보이는 어린 선수들이 씨가 말랐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견해일 것이다. 큰 잠재력을 보이는 선수들로는 남가주의 어린 선수 3명이 꼽힌다. 사우전옥스의 18세 샘 퀘리는 5만달러 상금이 걸린 캘리포니아 유바시티 대회 싱글에서 우승한 선수로 ‘진짜배기’라는 말을 듣고 있다. 롱비치의 배니아 킹(17)도 떠오르는 스타고 킹의 친구 16세 알렉사 글래치(뉴포트비치)도 탑10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고 주위에서는 말한다.
테니스 신동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도널드 영은 성장에 제동이 걸린 상태. 지난해와 올해 프로 무대에 나서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하면서 도널드 돌풍은 어른들이 만들어낸 호들갑에 불과했음을 알게 했다.
14~15세 어린 선수중에 더 큰 가능성을 보이는 선수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여러 코치들의 말은 위안이 된다. 하지만 세계 정상급 무대서 미국선수들을 구경하기는 오래 걸릴 것 같다.
<케빈 손 기자>
안드레 애거시.
앤디 로딕.
제임스 블레이크.
비너스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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