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쏴댔나. 벌써 한 주 가까이 끌어온 질문이다. 온갖 해설이 쏟아진다. 그러나 결국은 추측일 뿐이다. 투명성이 결여된 체제다. 모든 것이 비밀의 장막에 가려 있다. 때문에 김정일의 속마음을 뒤집어 보기 전에는 정확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왜라는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 북한의 미사일 무력시위의 후폭풍이 여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한반도 사태가 시계제로의 상황에 빠져들 정도로.
모든 정권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에 있다. 그 명제는 이렇게 이어진다. ‘모든 독재체제의 진짜 이데올로기는 오직 독재자의 서바이벌에 있다’-. 고전이 되다시피 한 명제다. 이를 새삼 끌어대는 건 다름이 아니다. 왜 쏴댔나. 그 해답의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해서다.
미사일이 발사됐다. 전 세계로 충격파가 전해진 가운데 일본은 말 그대로 패닉상태에 빠졌다. 미사일이 일본 영공을 지난 것이다. 대대적인 선전이 펼쳐졌다. 영명한 장군님의 영도 하에 인공위성 발사가 성공했다는 거다.(사실은 실패작인데)
이게 1998년의 일이다. 북한이 최초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한 것이다. ‘강성대국’이란 기치 하에 핵에, 미사일 개발에만 열을 올렸다. 그 사이 최소 100만명 이상이 죽어갔다.
도시화된 나라, 문맹률 0%에 가까운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이, 그것도 평화 시에 굶어죽은 것이다. 세계적 기록으로, 오직 미사일을 위해 그 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강성대국이다. 선군(先軍)정치다. 김정일 체제의 이데올로기다.
“북한은 일찍이 스파르타가 되기로 결정한 나라다.” 북한문제 전문가 에이던 포스터-카터의 말이다. 그 결과 오늘날 북한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웃 국가에 대한 위협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선군정치를 모택동의 대약진운동과 비교한다. 대약진운동 결과 수천만이 굶어 죽었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매진하면서 김정일 체제는 수백만을 아사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선군정치 하에서는 북한 주민에게 주입되는 건 전쟁밖에 없다. 그러므로 항상 긴장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위기가 없으면 만들어내야 한다. 그 궁극의 목표는 오직 하나, 수령절대체제의 존속이다.
“국제적 긴장을 조성하고 이웃에 안보위협을 가함으로써 자체의 안보가 보장되는 전략이다.” 선군정치에 대한 또 다른 진단이다. 군사적 공갈이 북한의 생존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일체의 개혁은 거부된다. 개혁을 꾀하다가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소련 붕괴를 통해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선군정치의 또 다른 얼굴이다.
미사일 도발은 이런 체제의 속성상 필연적 선택이다. 그렇다고 계산이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다. 그 반대다. 상대가 약점을 노출한다. 그러면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즉각 공격기제가 작동된다. 파충류인 사이드와인더가 덩치는 크지만 겁 많은 포유류를 공격하는 것처럼.
여기서 새삼 관심이 가는 것은 미사일 도발이 계산대로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는가 하는 것이다. 판정은 부정쪽으로 기운다. ‘선군정치가 가져온 정치, 외교적 대재난의 서곡이 미사일 도발’이라는 진단이 나와서다.
대포동 2호 발사실험은 실패작이다. 북한의 미사일 수준만 노출시켰다. 선군정치·강성대국 이미지 강화에도 실패했다. 김정일의 체면만 꾸긴 것. ‘9.11 이후 달라진 미국’ 읽기에도 오류가 있었다. 중국의 입장도 난처해졌다. 국제여론은 말이 아니다. 해서 나온 진단이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셈법은 맞아떨어지고 있는 징후가 농후해서다.
“김정일은 한국에 만연한 민족주의를 바라보고 미사일을 쐈다.” 한 미국 관측통의 지적이다. 독도문제로 한국과 일본은 긴장관계에 있다. 게다가 오랜 ‘햇볕’탓에 한국민은 중증의 ‘평화 착시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을 바라보는 한국민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바로 이점을 노렸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은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없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정황에서 미사일 문제로 한미동맹, 더 나가 일본까지 잇는 삼각동맹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국제사회의 눈은 자연 서울로 쏠리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향배에 대한 관심이다. 그 동선(動線)은 그런데 벌써부터 혼란스럽다. 미사일 도발에 따른 정부 대응이란 게 그렇다. 한 마디로 뒤죽박죽이다. 그러면서 남북 장관급 회담은 예정대로 연다는 방침이다.
동시에 ‘미사일 발사는 민족의 영토를 지키려는 정당방위’라는 식의 옹호성명이 여기저기서 발표된다. 인민을 인질로 한 북의 도박을 민족적 쾌거인 양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궁금증을 자아내는 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말 못할 말을 쏟아내던 노무현 대통령의 처신이다. 도무지 말이 없다. 그 침묵의 의미는 뭘까. 어딘지 불길한 생각이 든다. sechok@koreatimes.com
옥 세 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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