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우(세종연구소 부소장)
냉전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등이 위치해 있는 동북아는 냉전적 요소의 잔존으로 인해 갈등을 노정할 것이라는 견해가 탈 냉전기 초기부터 지배적이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90년대에 있어서 동북아지역 국가들의 군사력 경쟁은 오히려 증가일로를 보였고, 북한으로부터 시작된 핵 및 미사일 위협은 2000년대 중반에 접어든 지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이에 더하여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쟁점들이 새롭게 부상하여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센타쿠열도나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나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신사참배로 인한 갈등이 그 예라고 하겠다. 그 중에서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는 20세기 후반부의 평화에 대한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이제 막 들어선 21세기의 세력구도에 있어서 彼我의 구분을 불명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일본과 천황을 위한 대내외 전쟁에 의해 죽어간 넋을 안치한 곳이다. 1869년에 처음 설치된 이후 세이난전쟁·태평양전쟁 등에서 숨진 전몰자 246만 여명의 명부가 놓여있는데, 이 중에는 일제에 의해 전쟁터에 끌려간 한국인, 대만인 희생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한 참배, 특히 일본의 최고 권력자인 수상에 의한 참배가 문제시된 것은 이미 단죄된 도죠 히데키 등과 같은 14명 전범들의 위패가 비밀스럽게 봉안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하겠다.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간단 명료하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이들에 대해 참배한다는 의미를 포함하며, 이는 일본의 전쟁 정당화로 연결되고 잘못된 과거사를 청산하겠다는 의지의 부족을 보여준다고 우려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황궁 옆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고, 오히려 과거 전쟁에 대한 자랑 내지 정당화만이 전쟁박물관인 유슈칸이나 가미가제 돌격대원의 동상 등에서 배어 나온다. 특히 유슈칸의 경우 전쟁의 책임을 오히려 연합군 측에 돌리고 있는데 ‘태평양전쟁은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라면서 합리화 하고 자신들이 오히려 피해자인 것 같이 왜곡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자기중심적 왜곡된 논리를 일본 국민은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 홍보, 국제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일본 국내에서도 수많은 일본인들을 잘못된 전쟁에 동원해 목숨을 잃게 만든 장본인들이기에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또한 종교기관인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있다. 매년 참배하겠다는 공약에 따라 2005년에도 세칭 ‘郵政선거’를 성공리에 끝맺은 이후인 10월17일에 참배를 감행한 고이즈미 수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서 정당화했다. 첫째는 전몰자에 대해서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기” 위해서라는 것으로, A급 전범이 초점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 둘째는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으로, “두 번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참배했고, “현재의 평화는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만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다”. 즉 전몰자들의 희생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10월14일에 자신의 주요 정책목표였던 郵政 민영화 법안이 마침내 통과된 것을 감사하고 기념하기 위해 가을대제가 시작되는 첫날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중대한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戰後 평화는 평화헌법이 제시하듯이 전쟁에 대한 반성을 기초로 하는데, A급 전범의 合
祀로 인하여 야스쿠지신사는 그러한 반성을 대변하지 못하며 따라서 戰後의 평화를 위한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A급 전범의 合祀가 전범재판은 승자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는 피해의식에 기초한 것이지 반성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이에 따라 그들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한 일반 전몰자들도 피해자에서 그들과 동일한 가해자로 둔갑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및 대만인 희생자 유족들이 명부에서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하겠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가 새롭게 부상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을 비롯한 각 정치세력들이 헌법개정 등과 같이 그와 연관된 논의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냉전이후의 국제질서가 다양한 경향이 혼재된 가운데 여전히 불확실하기에, 이를 위한 대비로서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정체성을 과거의 오점을 미화하여 변색하는 것에서 찾는 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일본이나 동북아 및 전 세계를 위해서도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불확실하기에 오히려 더더욱 올바른 방향으로의 정립이 중요하다. 탈 근대적인 국가정체성의 방향이라는 것이 다소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20세기의 뼈아픈 경험과 그에 대한 반성은 민주국가의 새로운 방향이 국가보다는 개인에게 비중을 두도록 제시한다고 하겠다. 거의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를 채택한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그것이 선진이요 문명의 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총재선거 및 수상 선출에 대한 자민당 내의 현재 논의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논의 중이라고 생각되는데, 아무쪼록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서 올바르게 결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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