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대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행복론: 아름다운 노후를 위하여’ 란 제목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한국인들의 늘어난 평균 수명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 환갑을 맞고도 30년이라는 ‘알파’ 인생이 생기게 되었으니, 안이하게 보내기엔 너무 긴 여생이 아닌가하는 요지로 화두를 꺼냈다.
지금의 4-50대를 ‘낀 세대’라고도 한다.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 부양 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라는 차원에서 세대간의 단절을 이어줄 유일한 세대란 뜻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부어 온 계가 내가 탈 차례가 되었는데 깨진 꼴이라고나 할까? 필자가 강의 도중 우리가 바로 이 ‘낀 세대’에 해당한다고 했더니, 청중 가운데 문자 그대로 마지막이며 처음이란 의미의 ‘말초(末初)세대’로 부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다. 오늘은 바로 이 말초세대의 아름다운 노후를 위한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리 부모 세대는 자식을 여럿 낳아 길러 자신들의 노후를 자식들에게 맡겨왔다. 쉽게 말해 ‘자식보험’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말초세대’들이 나이가 들어 도움이 필요하게 될 때 과연 ‘자식보험’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난 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은 자녀 수 즉, 합계출산율이 1.08명으로 떨어진 현실을 생각해 보면 향후 자식보험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여기에 이제껏 당연시 여겨지던 ‘부모 모시기’에 대한 세태 또한 바뀌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고 보여진다.
몇 해 전 통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 생활비를 자식들에게 도움 받는 사람의 비율이 56% 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4%, 미국은 제로 수준에 불과했다. 지금의 세태를 감안해 보면 우리도 결국엔 일본이나 미국에 가깝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가 노후를 책임져 주는 사회보험을 생각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분이 계신다. 그러나 고국 한국에서는 당분간 이 사회보험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보험을 확대하려면 세금을 늘려 정부의 재정을 확충하는 일이 필요한데 이는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동포 여러분들은 이곳 미국엔 한국과 달리 소셜 시큐리티가 있어 얘기가 다르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의 연금도 현재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로 앞으로 지탱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논란이 적잖이 일고 있는 단계이다. 결국 남는 건 ‘자기 보험’, 즉 자기 자신이 저축하여 스스로의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자기 보험에 들 수 있는가?
첫째는 자식에 대한 지나친 사교육 투자를 줄이는 일이다. 자식에 대한 비용 가운데 가장 큰 짐은 사교육비, 즉 과외비이다. 과외비 마련을 위해 파출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부모의 허리는 학교의 등록금 부담도 부담이지만, 상당 부분 자녀들의 학원비 과외비 때문에 더 휘어지게 된다. 이제 자식에 대한 무리한 투자를 줄이고 자신의 노후를 위한 통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자신이 늙고 병들었을 때 자기를 지켜줄 진짜 보험인 셈이다.
두 번 째는 다 자란 자식들의 부양 부담을 줄이는 일이다. 요사이 한국에서는 청년실업이 한창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소위 3D(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업종에는 일 손을 구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한국에서 고졸 후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은 대략 80% 정도이다. 늦깎이 대학생까지를 감안하면 이는 90% 를 넘는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스무명 가운데 한명만 대학에 갔으나 이제는 한국에서 대학을 못 가는 사람은 열 명 가운데 한 두 명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대학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를 미처 깨닫지 못한 부모들이 “대학까지 나와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졸업 후 실업상태인 자녀들의 용돈을 대주곤 한다는 데 있다. 미국의 어느 부모가 대학 졸업 후까지 자녀들의 용돈을 책임져 주는가?
말초세대의 아름다운 노후를 위하여 오늘 필자는 이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말은 쉽지만 내 자식과 직결 된 일이다 보니 실천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새로운 ‘트리플 30’의 인생 주기에서 마지막 30년은 준비 된 자에게는 축복이지만, 준비 안된 자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 노후에 내가 어느 길로 가게 될 지는 지금 나의 선택에 따라 정해진다고 할 것이다.
오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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