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게임’은 1970년대 초 레스터 써로우가 쓴 ‘제로섬 사회’라는 책을 통해서 잘 알려진 말인데, 우리말 번역인 영합(零合)게임이란 말로 짐작할 수 있듯이 ‘합(sum)해서 영(zero)이 되는 게임’을 가리킨다. 어떤 상황에서 이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사람이 있고 또 승자가 얻는 것은 패자가 잃는 것과 똑같아서 득실의 합계가 영이 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원래 써로우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제로섬게임, 특히 국가간의 무역 득실 면에서 제로섬 게임을 설명했다. 즉, 무역수지 흑자국의 반대편에는 반드시 같은 액수의 손실을 기록하는 무역적자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의 여러 상황에서 제로섬게임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주식시장을 제로섬게임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주식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 돈을 잃는 사람이 있고 번 돈과 잃은 돈의 합계는 영이 된다는 말이다.
제로섬게임에서는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정반대로 결정되고 득과 실이 정확하게 대칭되므로 자연적으로 승리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빚어진다. 속된 표현으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경쟁이 나타난다.
각종 운동경기도 일반적으로 제로섬게임의 양상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월드컵 축구 같은 구기 종목이 좋은 예이다. 축구 경기에서 무승부라는 다소 김빠지는 결과가 나오기는 하지만, 일단 승패가 갈리는 상황에서는 이기는 팀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팀이 있고 이긴 팀의 득점과 실점은 그대로 진 팀의 실점과 득점이 되므로 분명히 합해서 영이 되는 상황이다.
지금 월드컵 축구로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제로섬게임에 목을 매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혼신을 다해 싸우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갖가지 기발하고 현란한 응원을 펼치는 팬들의 광적인 모습에서 제로섬게임의 치열한 경쟁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 경기를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치른다.
무한경쟁의 시장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기업간의 경쟁도 제로섬 상황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더 나아가 개인들의 삶, 생존경쟁, 또는 인생 자체를 제로섬게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내가 출세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서야 한다는 전제하에 치열한 제로섬게임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합한 결과가 영(제로)이 아니라 음(네거티브)이 되는 네거티브섬 게임, 즉 음합(陰合)게임이다. 여기서는 득실의 합이 음수가 되므로 이론적으로 게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지거나 잃을 수 있다는 더욱 비참한 결과가 가능하다. 너 죽고 나 살자의 죽기 살기 경쟁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너 죽고 나 죽자’는 비이성적, 비합리적 상황이다.
가령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대립이나 보혁 갈등, 세대간 갈등, 노사 갈등, 빈부 갈등 등 여러 가지 이해관계의 대립 현상은 그 경쟁과 다툼의 도가 지나쳐서 제로섬보다 못한 네거티브섬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 전체가 음합게임의 상황이 된다면 사회가 창출하는 총이득보다 이에 소요되는 총비용이 더 커서 모두가 손실을 본다는 얘기다.
반면에 경쟁의 결과가 차등적이긴 하지만 그 합이 양(陽, 파지티브)이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위 파지티브섬 게임, 즉 양합(陽合)게임에서는 월드컵 축구나 도박과 달리 이론상이나마 모두가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향하고 추구해야 할 인류 발전의 모델이 바로 모두가 이길 수 있고 잘 될 수 있는 양합게임의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건 그렇고, 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제로섬이 아니라 파지티브섬이 된다고 보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장기적, 총체적, 그리고 경험적으로 보았을 때 시장은 확대되고 기술력, 노동력, 생산성은 발전, 향상되기 마련이고 이에 기업성장과 경제발전이 뒤따르게 되므로 주가는 (역시 장기적, 총체적으로 보았을 때) 상승하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주식시장이나 기업경영 나아가 국가간의 경쟁도 양합게임이 될 수 있다는 근거가 된다.
자칫 주식시장을 도박 같은 제로섬(또는 네거티브섬) 게임으로 보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자칫 인생을 월드컵 축구처럼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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