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정(회사원)
우리는 지금 변화속도가 무척 빠른 시대에 살
고 있다. 그래서 흔히들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서도 변화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리’라고 부른다. 시대에 따라서 변한다면 그것은 이미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만고불변의 진리도 현자들이 적어놓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기 일쑤이다. 이를테면 내 얼굴에 무엇이 묻어있으면 남이 더 잘 보듯이 ‘나의 허물은 남이 더 잘 본다’는 것도 진리에 속한다.오래 전 한국에서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는 ‘윌리암스’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인이 하루는 “한국인들은 들쥐 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나는 즉각적으로 “아하! 한국사람들이 들에 나가서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근면하다는 칭찬이구나” 하고 지레짐작을 한 후, 그래도 확인해 보기 위해 “들쥐는 어떤 근성을 가지고 있느냐”고 되물어 보았다. 그는 “들쥐들은 떼를 지어 다니다가 그 중 한마리가 갑자기 어느 방향으로 뛰면 나머지 쥐들은 무조건 따라서 같은 방향으로 뛴다”는 것이었다.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나의 짐작은 영원히 오해로 남을 뻔 했다.
새벽 4시에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 독일에서 열리는 게임을 다른 잠 못이루는 시민들과 함께 관전하기 위해 전날 저녁, 이미 수 만명이 서울광장에 모인 광경을 신문이 전면에 실었다. 그리고 ‘응원의 물결’이라고 토를 달았다. 응원(應援)의 원래 의미는 선수들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경기현장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흥을 돋우어 사기를 높여주는 영어의 ‘Cheer’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하는 경기를 서울의 거리에서나 미국의 식당 안에서 하는 것이 어떻게 응원이 되는건지를 이해해 보려고 애쓰다가 문득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아 보려다가 숨이 차있는 애잔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행위는 세계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것을 한국이 지금 만들어내고 있어서 어휘 수가 수억개에 달하는 영어에도 해당되는 단어가 없다. 굳이 만들어낸다면 ‘Self-Cheer’에 해당된다. 그리고 한국어러도 응원(應援)이랄 수는 없지만 응원(應遠)이라고 우기면 안될 것도 없다. 역사의 창조다.‘지리산’을 쓴 소설가 이병주는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전설이 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밤중에 모였으니 태양에 바랠 리는 없고, 달빛만 비췄다면 전설은 만들어진 셈이 된다. 역사를 창조했고 전설도 만들었으니 신화만 창조되면 되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는 두뇌의 명령을 실천에 옮기는 몸동작이다. 그리고 인간의 두뇌는 오른쪽 뇌와 왼쪽 끝 뇌가 감성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사고(思考)를 분담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이 밝혀냈다.
이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감성적 사고를 하는 사람보다 반응이 느리다. 왜냐하면 이성적 사고는 행위 후에 뒤따라 일어날 결과나 현상, 즉 영어의 ‘Consequence’를 생각한 후에 행동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감성적인 사고는 반응은 즉각적이고 빠르지만 실수와 후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옛날의 한국인들의 특성은 ‘은근과 끈기’로 특정지운 적이 있었다. ‘은근’이란 이성적인 사고를 했다는 의미가 되지만 그것은 이미 역사가 되었고 이제는 ‘양철냄비’ 같이 빨리 달아오르는 감성적인 국민이 되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Consequence’를 얼마나 깊게, 그리고 여러 단계까지 유추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좌우된다고 할 수 있다. 바둑의 고단자도, 유명한 투자가도 이름난 경제나 정치전략가도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사후의 ‘Consequence’를 정확히 잘 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발목이 잡힌 것도 승전 후의 Consequence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인들이 감성적인 국민이 된 것은 혼자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치부하면서도 그토록 온국민이 열광하며 염원하던 16강 진입이 좌절된 지금, 따라오는 허탈감은 어떻게 처리할건지 하는 노파심과 제발 미국인 윌리암스는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밤새도록 같은 장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하는 생각이 각각 내 마음속에 한켠씩을 차지하고 앉아 서로 노려보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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