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당선 소감
“아버지, 비스듬했던 옆모습 기억합니다”
이권재
<뉴저지 거주>
아버지! 떠나오던 날. 가슴속에 떠오르는 만가지 말씀을 억누르시던, 그 비스듬했던 옆모습을 기억합니다. 결국은 무거운 악수로 아들을 보내시던 아버지. 투박했던 손길과 찰나를 머물다간 슬픈 표정이 마음에 박혀 아직도 딱지가 앉아 있습니다. 흑백사진 같은 그 이별의 순간을 가슴에서 끄집어내면, 채 새 살이 되지 못한 딱지 위를 가르고 다시 핏방울이 맺힐 것만 같아서, 소식 한 자 적지 못하고 3년 넘은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조금씩 되새김질하며 안으로 달래는 지혜를 배웠다면, 가끔씩은 그리움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으련만, 덜컥하고 무너질 가슴이 염려스러워 한 번도 꺼내지 못한 말들을 시로만 적었습니다.
순례자의 그것처럼 딱딱해진 발바닥으로 생의 정류장을 찾아 나서시던 아버지. 언젠가 아버지 앞에 그리도 고대하던 기차가 멈추어 서면, 그땐 오랜 세월을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나누려고 합니다.
떠나온 이 곳에도 여전히 좋은 사람들이 많아 사랑하는 법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가끔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이 들어 있는 성경책을 펼쳐 놓고 아버지가 물려주신 신을 신어 봅니다. 때론 맨발로 아버지 곁을 뛰어다니던 그 시간으로 간절히 돌아가고 싶지만, 그 날 아버지가 귓가에 속삭이시던 그 말을 믿으며, 언젠가 저도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아들에게 그 말을 들려줄 준비를 하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간절히 기다리면 누구에게나 한번은 기차가 와서 선단다. 항상 올라탈 준비를 해야 한다.”
■시 가작
손기식
<노스리지 거주>
산(山)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는
걸음을 앞세우고
겨울 텅 빈 산을 오른다
가슴속
퀘퀘한 구정물로 살아낸 세월이
걸음, 걸음마다 출렁일 때
바람이 불지 않았더라면
산도 구역질을 하였으리라
천년 세월을 품었던 바위는
깨치듯 솟아올랐고
산은
부처처럼 앉아
만년을 쌓은 침묵 도량에
그리도 높아질 수 있었으리라
산마루 검은 이끼 자란 바위에 앉아
해지듯 눈을 감아 본다
녹슨 문 돌쩌귀
뿌드득 굳은 관절 펴듯 열리는 문
마른 바람이 지나고
아스라이 맞은 산 산새 울음도 지나고
하늘로 가려 했던 푸른 꿈
낙엽 부석이는 소리도 지났다
침묵이 산처럼 들어와 앉는 마음의 빈터,
그 큰산을 가슴에 안고
휘적, 휘적 산을 내려오는 외로운 사람
■입상소감
부끄럽다, 그것도 대단히-.
살아 있는 아니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시와 그림을 춤과 노래를 한다고 생각한다.
몸으로 시를 쓰고 노래하는 자는 바위처럼 침묵하는데 도적놈은 제 잘났다 지껄이고 있는 꼴이 차마 부끄러워 그들 앞에 민망하여 고개 들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언젠가 한번쯤은 고개 들어 하늘을 보아도 그들이 다가와 등 두드려 줄 수 있도록 살라는 깨우침의 기회를 주신 것으로 알고 한국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 드린다.
스무살 그 좋던 시절, 나는 조용한 산골 마을에 떠있는 달(月村)이고 너는 흐르는 물(流水)이라 하고 그렇게 서로서로 가슴 묻고 살던 네가 정말 강물처럼 흘러 가버린 뒤 나는 혼자 또 부질없는 짓을 했는가 보네.
미안하다 친구야! 보고 싶다 친구야! 꿈에라도 오늘만큼은 꼭, 꼭, 꼬옥.
■시 장려
송호찬
<어바인 거주>
수 국
밤마다 있는 일은 아니겠지요
바람도 달빛에 흔들리던 밤
나들이 나선 조계사 부처님
풀어 놓은 마음 따라 개심사에 이르렀지요
댓돌 아래로 내려서는 터줏부처님 곁으로
수국도 활짝 반겼답니다
달도 서산을 넘는다는 걸
부처님도 잊을 때가 있나 봅니다
모두들 제자리를 찾는 새벽
‘많이 늦었소, 이제 그만 돌아가리다’
발걸음 가볍게 들어올릴 적에
가슴에 수국 한 아름 안겨드렸다지요
스러지는 은하수 건너가는 길에
제 몸 떨구어 공양하는 별똥별 하나
받으려다 그만, 수국 한 다발 놓쳤답니다
별똥별이 가리켜 굽어 본 그 자리
구로구 개봉동 봉제공장 안마당
수국이 수북수북 피어났지요
밤새 흔들리던 바람도 찾아와
머리를 부비고 있었습니다
■입상소감
시와 가까이 지내기 시작한 뒤에야 이미 내 주위 곳곳에 시가 있음을 알았다. 그저 보고도 지나치던 시가 어느 날 가까워졌다. 그러고 난 후 몇 년이 흘렀다. 그 중간 중간에 마디들이 여럿 있었다. 그 가운데 첫 마디가 시노래 동인 나팔꽃 캠프일 것이고 또 하나가 만해시인학교 일터인데 이번에 또 마디 하나가 생겼다. 이제 새 잎과 새 가지를 내 놓을 차례인가 보다. 시를 알게 해준 아내와 시를 살찌워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모 과
조옥남
<메릴랜드 거주>
과일가게 한 켠 철지난 모과 하나
참선하는 스님인 양 면벽 한 채 앉아있다
깨물면 녹을 듯한 맛깔과 빛깔로 꽃밭같이
환한 진열대 한 귀퉁이 후줄근한 옷을 입고
그렇게 앉아있다
태어난 얼굴이야 보름달이련만 이리저리
쥐어 박혀 구겨지고 이지러져 살아 온 날수
만큼 두터운 각질을 덮어쓰고 덤덤히 앉아있다
바랑하나 메고 구름처럼 떠돌던 여정을 반추
하며 간절한 사연을 담은 눈빛으로 절절히
앉아있다
그렇게 절절히 살다 옷자락 끝에 겨울 밤바람을
달고 총총히 길 떠난 사람이 있었다
그의 빈 집 마당 가득 떨어져 누워
가슴 아린 향기를 날리던 모과,
오늘 여기 문득 날라 와 앉아 있나.
그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입상소감
비록 턱걸이로 한쪽 발만 걸친 채 당선 된 것이지만 저에게는 소중하기 그지없는 삶의 한 이정표로, 사십년 동안 가슴 깊이 묻어 두었던 간절한 꿈이 크나 큰 기쁨으로 깨어 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용기와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심사평
“당선작, 밀도있는 은유 호감 심사과정 갈수록 어려워져”
“빈약한 상상력, 구태의연한 이미지 지난해 보다 수준 낮아 실망”
400~500편의 저가끔 정성들인 작품을 읽고 그 우열을 가리는 심사 과정이 점점 어려워진다. 믿고 있는 잣대로 휘두르던 칼날이 이제는 무디어진 것인지, 작품 하나를 읽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에 숨겨진 사연과 풍경을 찾아내려는 내 시도 역시 길어져만 간다. 특이나 올해는 열분 정도의 작품의 수준이 비슷한 것 같아 당선작을 골라내는 일이 지난했다. 그 말인즉 눈에 선뜻 뜨이는 뛰어난 작품이 없었다는 의미도 되고,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작품이 많았다는 뜻도 될 것이다. 당선작으로 밀게 된 이권재 시인의 ‘아버지’는 단순하지만 밀도있는 은유적 압축에 호감이 갔다. 아버지와 자식간의 사랑이 ‘신발’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출된 잔잔하면서 아름다운 표현에 후한 점수를 주게 되었다.
가작의 손기식 시인의 작품들 역시 시 공부를 많이 한 분같이 은유의 표현 기교가 뛰어난다. 그러나 기교에 비해 시 전체가 풍기는 절실성이 부족하게 느껴져 작품이 절절하게 가슴에 다가오지 않았다.장려상의 조옥남(모과) 시인은 같은 단어의 쓸데없는 반복 때문에, 송호찬(수국) 시인은 함축력이 떨어지는 약점 때문에 당선작에서 밀려나고 말았다.배전의 분발을 응모자 여러분께 당부 드리고 싶다.
마종기 <시인>
인터넷시대를 실감할 정도로 본국서 보내온 작품들이 제법 많았다. 바꿔 말하자면 마주서도 본국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좋은 시를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얼마든지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은 오히려 낮은 것 같아 실망했다. 소재의 빈곤, 빈약한 상상력, 구태 의연한 이미지 등등. 고만고만한 장단점을 가진 것 속에서 당선작을 가리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숙고한 끝에 응모작 전체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권재 님의 ‘아버지’를 당선작으로 뽑기로 했다.
이권재 님의 ‘아버지’는 언뜻 투박스러운 말투지만 거듭해서 읽을수록 아버지의 깊은 속내가 가슴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내게 남은 마지막 신발을 너에게 준다’고 말할 수 있는 아버지. 세상 아버지들 마음이 모두 이렇지 않겠는가. 육친을 소재로 한 시가 자칫하면 감정을 절제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그 수위를 잘 지킨 듯이 보였고, 이밖에 같이 투고했던 ‘붓꽃 피리’도 잔잔한 서정성이 돋보였다. 우수작 손기식 님의 ‘산’은 세월에 지친 사람의 모습을 산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어느 정도 형상화시켰다고 보여지나 3연의 진부한 표현이 거슬렸고 대상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조금만 더 깊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머잖아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다른 시를 통해서 충분히 본 셈이다.
장려상으로는 송호찬 님의 ‘수국’과 조옥남 님의 ‘모과’를 놓는다. ‘수국’은 ‘제 몸 떨구어 공양하는 별똥별’에서 보여주듯이 돋보이는 이미지를 가졌음에도 전체적인 시상의 모호함 때문에 주제를 살리지 못해 아쉬웠다. ‘모과’는 거듭해서 읽을수록 기존의 시에서 대했음직한 낯익은 이미지가 자꾸만 방해를 했고, 띄어쓰기를 지나치게 무시한 점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시작이 아니겠는가! 수상하신 분들은 운문이 숙명적으로 가져야 할 과제가 어떤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정진하기 바란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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