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인생을 예술에서 찾는 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들 다 크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모처럼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 한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카메라를 잡는 예가 최근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그림에 매달린 리사 이(64)씨, 글쓰기를 시작한 류민희(54)씨도 그런 사람중 한 사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54세에 수필가 등단 류민희씨
50대 중반에 글쓰기를 다시 시작한 류민희씨. 그녀 또래의 여성들에게 글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진천규 기자>
“일상의 의미 글에 담고싶어”
“이민 25년간 미뤘던 숙제
이제서야 시작하는 느낌
콩트·단편소설도 써볼터”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할 때부터 글쓰기는 마음의 숙제로 자리 잡았어요. 중년이 훌쩍 넘은 이제서야 마음속의 부담 하나를 덜었습니다.”올해 54세의 류민희씨는 얼마전 한국의 ‘수필시대’ 신인상에 당선돼 수필가의 길을 걷게 됐다. 짐 하나를 덜었다는 말은 그 말이다.
지난 81년 미국에 온 그는 이민생활이란 게 뻔해서 남편과 한창 커가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게 전부였다. 여고시절에는 문예반, 대학시절에는 학보사에서 활동하면서 일찍부터 글과는 깊은 인연을 맺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글쓰기를 미루는 데 좋은 핑계거리가 됐다.
미국 이민 뒤 25년간 글과는 무관한 삶을 살던 그는 풀러튼 서니힐스 고교의 한인 학부모회장을 지낸 것이 인연이 돼 지난해 본보 교육면에 ‘학부모가 쓴 교육칼럼’을 연재한 것을 계기로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칼럼을 쓰면서 재미수필가협회를 알게 돼 거기서 공부하면서 수필 몇 편이 서울로 보내져 등단이라는 선물도 안게 된 것이다.
이번에 당선된 작품은 ‘생일찬가’와 ‘은빛 머리칼의 아버지’등 두 편. 생일찬가는 그녀의 생일날 남편과 아들의 섭섭한 대우에 대한 자기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고 ‘은빛 머리칼…’은 6남매를 키워 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4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등단한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일상에서 소재를 찾아내 작품화하는 재능을 발휘했듯 그녀 역시 일상생활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이를 글쓰기로 연결시키고 싶다는 소망이다. 이런 그녀에게 ‘수필시대’ 심사위원들은 “소설적인 기법을 응용해 수필을 창작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체험을 소재로 문학의 쾌락성을 유도해내는 솜씨가 놀랍다”고 격려했다.
류씨는 앞으로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려 보겠다는 다짐이다. 여러 이유를 대며 글쓰기를 게을리 해온 것이 후회스럽긴 하지만 서둘지 않고 하나하나 해나갈 생각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에요. 콩트나 단편소설 등으로 쓰기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보겠습니다.”
64세에 미대 졸업하는 리사 이씨
60대인 리사 이씨는 그림을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가 그리고 있는 작품들 앞에서 짓는 미소가 편안하다. <진천규 기자>
“그림에 몰입할때 가장 행복”
시각디자인 전공 전과목 A
작년엔 작품전까지 열어
“대학원 가서 더 공부할터”
“그림에 몰입하면 나를 잊게 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올해 64세의 리사 이씨는 24일 AIU (America Inter-Continental University)를 졸업한다. 전공은 시각 디자인. 전과목 A학점을 받아 졸업생 대표로 인사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하지만 이씨는 젊은 동기생들에게 이 기회를 양보했다).
이씨의 인생에 변화가 생긴 건 지난 2000년. 20년 가까이 해오던 부동산 일을 접고 그 해 1월 LACC ESL 과정에 등록해 30여년만에 다시 학생이 됐다. 이 후 5년 동안 미술 관련 과목을 두루 수강했으며 지난해 초에는 교수들의 권유로 AIU로 편입하게 됐다.
“물론 쉽지는 않았어요. 영어가 문제였지만 어려웠던 만큼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컸죠” 이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지난 1992년 사랑하는 아들 폴이 서울대학교에 언어연수를 위해 갔다가 감전사고로 먼저 하늘나라에 간 것이다. 그는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글도 써보고 신학교를 나와 전도사로도 일했으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학교를 다니며 본격적으로 그림에 심취하게 됐다.“학교를 다닌 지난 6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제 또래 사람들과 어울렸다면 부정적인 생각과 근심걱정에 시달렸을 텐데 젊은 학생들과 같이 토론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아주 긍정적으로 변했거든요.”지난해에는 작품전을 열었다. 저녁에 미술학원에서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됐다.
그의 그림은 꽤 추상적이다. 그가 완성해 가고 있는 ‘조화’(Unity)라는 작품도 세상의 모든 원리가 하나로 통한다는 의미를 십자가와 연꽃 등을 사용해 추상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씨는 졸업 성적 우수자로 선정돼 7월부터 2달간 AIU-런던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특전도 받았다. 그는 칼스테이트 대학원에 진학해 미술을 더 깊이 공부할 계획이다.
“이제 살날이 많이 남지 않았잖아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지금부터 계획을 잘 세워 하나하나 다 해볼 생각입니다.”
<정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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