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위스에 0-2…16강 탈락
안타까웠다. 아쉬웠다. 최선을 다해 뛰었지만 롤렉스시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조직력으로 무장한 알프스전사들의 벽을 넘기에는 우리의 힘과 세기가 조금 모자랐다. 우리로선 억울하게 느껴진 심판판정도 여러 번 나와 더욱 아쉬웠지만 어쨌든 패배는 패배였다.
23일 독일 하노버에서 벌어진 독일월드컵 G조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은 전반 23분과 후반 32분 스위스에 연속골을 내줘 0-2로 무릎꿇으며 조별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1승1무1패, 승점 4로 대회를 마친 한국은 스위스(2승1무·승점 7), 프랑스(1승2무·승점 5)에 이어 조 3위로 밀리며 16강 진출에 실패, 2002 한일월드컵 4강 진출이 상당부분 홈필드 어드밴티지 덕분이라는 세계의 시각을 바꿔놓지 못했다. 하지만 비록 16강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어도 월드컵 출전사상 처음으로 본선 원정경기에서 승리를 따내고 유럽에서 세계적인 강호 프랑스와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나름대로 간과할 수 없는 성과도 남겼기에 아쉬움속에서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희망을 본 월드컵이었다.
‘승리가 아니면 16강은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나선 아드보카트 감독은 예상을 깨고 박주영을 투입, 조재진, 박지성과 함께 스리톱으로 배치하고 이천수를 새도 스트라이커로 포진시키는 4-2-4 시스템이라는 깜짝 카드를 들고 나왔다. 미드필드에는 김남일과 이호가 나섰고 김동진-김진규-최진철-이영표가 포백으로 나섰으며 골문은 여전히 이운재가 지켰다.
이같은 공격적인 자세로 한국은 경기 시작 3분만에 왼쪽에서 김동진이 찔러준 패스를 받은 이천수가 중앙으로 위협적인 크로스를 올리며 먼저 기선을 잡는 듯 했으나 스위스 역시 만만치 않았다. 전반 6분 한국 진영 오른쪽 사이드라인에서 넘어온 롱 스로잉을 받은 하칸 야킨이 페널티박스 안에서 완벽한 득점찬스를 잡는 듯 했으나 마지막 순간 김동진이 몸을 날리며 걷어내 첫 위기를 넘겼고 9분에는 이영표가 뒤로 내준 볼을 후방수비가 주춤하다 트란퀼로 바르네타에 가로채여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으나 바르네타의 슛을 최진철이 몸을 날리며 블락해냈다.
이후 공방전이 이어지던 전반 23분 한국은 세트플레이에서 이날 승부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뒤흔든 뼈아픈 선제골을 얻어맞고 말았다. 시작은 역시 바르네타였다. 한국문전을 위협적인 드리블로 돌파하던 바르네타를 박주영이 잡아 넘어뜨려 프리킥을 내줬고 이를 야긴이 문전으로 예리하게 올리자 뛰어들던 필리페 샌데로스가 강력한 헤딩슛으로 한국 네트를 가른 것. 헤딩직후 샌데로스의 머리와 최진철의 머리가 부딪치며 양 선수 모두 유혈이 낭자해 치료를 받아야 했고 경기는 공식적으로 ‘혈전’이 됐다.
선제골을 내준 한국의 부담은 몇 배로 힘겨워졌다. 비록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G조 다른 경기에서 토고가 프랑스를 상대로 전반을 0-0으로 버텨줬으나 이들이 끝까지 버티지 못할 것은 누구 눈에도 분명했고 한국은 이제 한 골이 아닌 두 골을 넣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무엇보다도 상대인 스위스는 한 골을 넣은 데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날카로운 공세를 이어가 한국을 수세에 몰아넣으며 ‘공격이 곧 최선의 방어’임을 실천해 나가 더욱 경기를 풀기가 어려웠다. 전반 37분 야킨의 위협적인 프리킥을 이운재가 펀칭해내는 등 4분여동안 연속 3차례 코너킥을 내주며 계속 위험한 상황에 몰리던 한국은 41분 이천수가 상대 패스미스를 가로채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시작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이후 전반 종료때까지 김진규, 박주영, 이천수 등이 계속해서 좋은 찬스를 맞았으나 하나도 골로 연결되지 않은 채 전반을 마쳐야 한 것이 아쉬웠다.
한국은 후반 총 공세를 계속했으나 좀처럼 만회골의 실마리를 잡지 못했고 후반 10분과 16분 쾰른에서 프랑스의 연속골 소식이 날아오면서 16강 전선에는 본격적으로 짙은 암운이 깔리기 시작했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자 아드보카트 감독은 17분 수비수 이영표를 빼고 안정환을 투입, 공격수를 5명으로 늘리는 초강수를 들고 나섰으나 그럼에도 분위기는 돌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19분 왼쪽에서 단 한 번의 스루패스로 역습을 허용했으나 프라이의 강슛이 골 상단코너를 맞고 나가 한숨을 돌렸다.
20분 박주영 대신 설기현을 투입한 한국은 곧바로 이천수가 올린 코너킥을 조재진이 헤딩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 선방에 걸려 동점골을 놓친 뒤 32분 주심이 선심의 오프사이드 판정을 ‘오버룰’하는 바람에 프라이에게 사실상 16강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추가골을 내주고 말았다. 프라이가 비록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으나 그가 받은 볼이 패스를 가로채려던 이호의 발에 맞고 연결된 것이라 오프사이드가 아니라는 것이 주심의 주장이었다.
이날 주심의 석연치 못한 판정은 이외에도 여럿 있었고 특히 전반 12분과 43분, 그리고 후반 28분 페널티박스 안에서 혼전 중 볼이 스위스 수비 손에 맞았으나 단 한 번도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한국선수들은 끝까지 포기없이 경기를 계속했으나 37분 문전 혼전 중 페널티박스 5m 앞에서 김진규가 찬 슈팅이 크로스바에 맞고 튀어나가는 등 골운도 따르지 않아 끝내 스위스의 골문을 열지 못한 채 종료 휘슬소리를 들고 그라운드에 쓰러지고 말았다. 스위스는 이번 대회 출전국 중 유일하게 조별리그를 무실점으로 통과한 팀으로 남게 됐다.
<김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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