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서 자살골을 넣은 선수에 격분한 콜롬비아의 한 축구광이 문제의 선수를 사살했다는 뉴스를 아마 여러분들은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기막힌 사건이 일어난 것은 94년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 때의 일이다.
기대가 지나친 곳에서는 항상 증오가 생산되는 법이다. 당시 콜롬비아 팀의 수비 에스코바는 미국과의 1-1 동점을 이룬 긴장된 상태에서 백패스를 하다가 자살골을 넣어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사실 콜롬비아는 그 이전 루마니아와의 게임에서도 지는 등 감독의 게임운영에 미스가 있었다. 지금도 이 사건은 감독이 조직범죄단의 도박에 관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전국민들의 분노가 에스코바에게만 쏠렸다. 더 쇼킹한 것은 범인이 에스코바에게 12발이나 총알을 퍼부으면서 그 때마다 “골-”을 외친 점이다.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그 나라의 국민성과 문화를 보여주는 프리즘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게임에서 지면 감독을 원망한다. 한국은 특히 심하다. 지면 무조건 감독 탓이다. 98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계속 참패하자 경기도중 감독 차범근이 해임된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본프레레, 코엘류 감독도 이번 독일월드컵 경기 준비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프랑스 감독 도메네크가 엊그제 한국과의 경기에서 1-1로 비기자 “우리 선수(프랑스)들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한 것은 한국식으로 해석하자면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대신 이기면 한국에서는 모든 영광이 감독에게 돌아가 히딩크처럼 국민적 영웅이 되는 화끈한 면도 있다. 한국은 세계 축구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소리도 듣지만 아드보카트가 말했듯이 “왕처럼 대우받는” 감독들의 낙원이기도 하다.
축구에서 감독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는 어떤 게임에 어떤 선수를 내보느냐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이번 C조에서 세르비아가 아르헨티나에 6-0으로 대패한 이면에는 페트코비치 감독이 선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 아들을 기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져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된다. 프랑스의 도메네크 감독도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더니 팀이 맥을 못 쓰고 있다. 수퍼스타가 너무 많으면 감독이 선수들의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일본도 이 케이스에 해당된다.
과거 한국에서는 소위 고참선배라는 축구협회 임원들의 인사 개입이 항상 말썽이었다. 게임도중 작전문제에까지 콩 놔라, 팥 놔라 간섭했다. 히딩크가 감독을 맡은 직후 열린 컨페더레이션 대회에서 한국팀은 프랑스에 5-0으로 졌다. 이어 체코에게도 5-0으로 대패했다. 이래서 한때 히딩크의 별명이 ‘오대영’이 되는 등 해임직전까지 갔었다.
히딩크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한국팀의 지역과 학교 선후배로 얽힌 고질적인 인간관계다. 그것을 히딩크가 인정사정 없이 바로 잡은 후 한국 축구는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는 소신껏 자기 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외국인 감독 채용이 필요한 것이다.
네덜란드인은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부지런한 민족으로 불린다.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한국 축구에 네덜란드적인 정직성이 수혈되는 것은 또 하나의 수확이다. 이번에 한국팀이 기량 이상으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아드보카트 감독이 경기 운영에서 외부의 이러쿵저러쿵을 무시하고 소신껏 선수를 기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인이 감독을 맡았더라면 좀 분위기가 달랐을 것이다. 두 네덜란드 감독을 거치면서 한국 축구의 고질병이 많이 치료될 것으로 본다. 축구에서도 인사가 만사다.
clee@koreatimes.com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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