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세계 주식시장을 흔들고 있다. 물가상승을 염려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올리겠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가운데 마침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이 물가상승의 위협이 높아 경계태세를 갖추겠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소위 ‘버냉키 충격’이라는 증시 냉각현상을 가져 왔다.
세계 증시가 불안해하는 버냉키 충격의 핵심은 유동성 축소다. 유동성이란 시중에 흐르는 돈의 양을 말한다.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경제활동이 좋아지고 줄어들면 나빠진다고 쉽게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유동성을 계속 늘리면 경제에 좋을 텐데 왜 유동성 축소를 시사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물가상승이라는 인플레이션 현상 때문이다.
돈의 양을 늘리면 기업은 기업대로 투자와 생산을 늘리고 개인 입장에서는 고용 인구가 늘면서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늘어나며 소비가 많아지면 기업의 매상이 올라 기업의 이익도 오른다. 기업과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면 소득세도 늘어나 정부 수입도 올라가게 돼 재정적자도 줄어들면서 모든 게 잘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렇게 선순환만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기업의 생산이 늘어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생산이 늘기 위해서는 고용인구와 자원이 따라줘야 한다. 그러나 이들 자원이 공급되는데는 물리적 한계가 있는데 이를 잠재 성장력이라고 한다. 시중의 돈이 증가하는 속도가 바로 이 잠재 성장력을 넘어서게 되면 아무리 돈의 양을 늘려도 생산과 소비가 늘어나지 못하고 돈만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돈만 늘어나고 생산이 쫓아오지 못하면 가격만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이란 “너무 많은 돈이 너무 적은 상품을 쫓아다니는 현상”을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 뜻이다.
경제 정책의 핵심은 바로 어느 때가 돈이 너무 많은가를 예상하고 이를 미연에 방지해 돈의 양을 적정선으로 줄이는데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 연방은행을 위시한 세계 선진국 중앙은행은 이러한 물가상승의 위협을 2004년 초부터 느끼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유동성을 줄여왔고 그 결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동안 줄여온 유동성에 의해 세계 경제가 서서히 성장속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률이 올해 하반기부터 낮아질 것으로 예견되고 경제는 다시 잠재 성장력의 범위 안으로 들어서면서 물가상승의 위협이 통제된 상태로 순항하리라고 전망되었다. 소위 연착륙이다. 곧 이자율 상승도 멈추리라고 낙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자기 물가상승의 압력이 커지기 시작했다. 즉 예상대로 지금까지의 긴축정책에 의한 유동성 축소가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믿었는데 돌연 효과가 나타나려면 아직 멀었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버냉키 충격은 바로 이 효과 부족의 고백을 말한다. 효과 부족이라는 판단은 이자율 상승이 계속되리라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이는 바로 유동성 축소를 의미한다.
유동성 축소는 투자자금의 축소와 경기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투자시장이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버냉키 발언 이후 증시가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투자시장의 우려를 연방은행이 고려치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강경 발언을 이곳 저곳에서 되풀이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가져올 경제적 피해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종합하면 2000년 주식시장 붕괴와 9.11사태 그리고 기업 회계부정사건 등 여러 악재를 심각한 경기침체로 연결시키지 않기 위해 돈의 양을 급속히 늘려 경제를 지탱해 왔는데 이에 따라 커진 유동성의 양이 연방은행이 예상했던 규모보다 훨씬 커졌다. 이 커진 양을 줄이는 노력을 하면서 서서히 균형을 잡아가기를 시도했으나 너무 커진 유동성의 후유증은 이렇게 온건한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을 중증으로 보인다. 이제 어느 정도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강한 처방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인 것이다.
유동성 확대의 수혜자였던 부동산이 식어가고 있고 두번째 수혜자인 주식시장과 원자재 시장도 혼선을 시작했다. 재산 가치의 하락을 각오해야 한다. 버냉키 충격은 당대에 겪었던 유동성의 수혜자가 당대에 그 고통을 짊어짐으로써 후대에 그 고통을 넘기지 않으려는 책임 있는 결단으로 보인다. 물가상승을 잡지 않고 미루면 당분간은 무난하나 나중에 치러야 할 값이 크다. 그린스펀 전 의장이 남겨 놓은 숙제를 버냉키 새 의장은 풀어나가고 있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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