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최 무용과 교수,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나의 춤, 거북 은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그분이 아주 훌륭한 성품의 소유자라고 들었다.
몇몇 한국 관련 역사서에서 이순신 장군에 대한 글들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의 생애를 그리 깊이 있게 다루고 있지는 않았다. 내가 찾아낸 영어로 된 간단한 역사 문헌을 바탕으로, 나는 이순신 장군과 그분이 발명한 거북선을 기념하는 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안무를 통해서 나는 7년 전쟁의 흐름을 급격히 돌려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거북선의 역사적 기원을 기념하고자 하였다. 또한 춤 동작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전투 의지와 창의적 발명품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는 군인다운 용맹한 동작뿐 아니라 쾌활한 동작들을 통해서 높은 권력에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유연성, 용기,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그 분의 마음, 그리고 지휘와 명예와 같은 특권을 누리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함께 표현했다. 그리고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 분의 목숨을 바친 마지막 희생으로 작품을 마무리 지었다.
<이순신 장군: 그분의 삶과 업적에 대해서> 라는 책자는 나에게 좀 더 구체적이고 훌륭한 정보를 주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메모와 일기 부분이 그러했다. 내가 어떤 해전을 춤으로 표현했는지 맞추어 보게 하려는 듯, 마치 내게 풀어야 할 퍼즐이 주어진 것과 같았다. 이 책자는 내가 앞서 조사해 보았던 자료보다 좀더 정확한 역사와 통계를 알려 주었다(1). 나는 7년 전쟁을 마무리 지은 1598년 노량 해전을 참고하여 나의 춤을 만들었다. 나는 4가지 비교 포인트를 이용해 국가간 전쟁 역사를 통한 이순신 장군의 독특한 전략과 성품을 강조했다. 첫째, 다른 나라를 정복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국을 보호하고자 했던 이순신 장군의 순결한 의도, 둘째,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조국의 위대함을 믿었던 이순신 장군, 셋째, 인습에 얽매여 있지 않은 이순신 장군의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감 그리고 넷째, 이순신 장군의 백성과 나라를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들.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는 달리 이순신 장군은 조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행동한 것이 아니었다. 그분이 바랬던 것은 적에게 상처 받고 포위당한 사랑하는 조국을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수호하는 것이었다. 16세기 이전과 또 그 이후에도, 일본은 한국을 열등한 나라, 착취와 점령의 대상으로 보아 왔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해 일본 해군 중장 사토 데스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중반에 살았던)는 이순신 장군의 출신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불행히도 생(生)을 조선에서 태어나… 이순신 장군이 그 당시에 살아있었다면 이러한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항변 했을 것이다. 그분은 당시의 정치적 부패와 경제적 불안을 넘어서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의 조국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나라를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헌신적 노력으로 이어지고 다시 구체적 실천으로 승화되었다. 그의 창조적인 상상력은 오로지 조선을 강하게 만들고 보호하는 군사적인 해결책을 강구해 내는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었다. 창의적이고, 놀랍고, 그러나 지극히 실질적이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 방법이 필요 했던 것이다. 그는 전쟁 중에나 전쟁 준비 기간에도 실수를 허용할 시간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의 전술은 필연적으로 상당히 새로운 것들이었다. 외세에 시달리고 있는 조국의 상황을 바꾸어 놓기 위해 그분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시도하고 기회를 포착할 필요가 있었다. 그분의 방법은 약 2400년 전에 쓰여졌던 손자병법에 나온 전술 중 하나와 정 반대되는 전략이다. 손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적은 수의 군대일수록, 적으로부터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하고, 약하면 약할 수록 적을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손자의 관점은 논리적이다. 만약 당신이 상대보다 더 적은 수의 군인을 가지고 있고, 더 약한 군대를 지휘하고 있다면, 도망가고 피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여전히 중국 무술 중 하나인 태극권의 핵심이 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이와 반대로 열등한 위치에 있는 그의 군인들에게 굴하지 않는 의지와 굳은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분은 장교들에게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만약 한 명의 군인이 길목을 튼튼히 지키면, 만 명의 적의 가슴에 깊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
의 꿈속에서 나타났던 선인의 말씀은 그런 굳은 마음가짐 만이 승리를 가능하게 하리라는 믿음에 확신을 더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이순신 장군의 성품은, 그의 일기에서 드러나듯, 그를 한 나라의 영웅에서 세계의 모범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준다. 이순신 장군은 간결하고 진실하게 그의 일기를 적었으며, 그의 자신감 있는 필체에도 나타나듯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개인의 명예와 정치적 영향력과 같은 문제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고문과 백의종군이라는 개인적 불행에 대해 이순신 제독이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한 것은 당시 그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위험했을 뿐 아니라 혼자서 불평 없이 버티어 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 할 수 있다. 그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깊은 애정은 그의 간결하지만 심오하며 시적인 문장에서 절실히 느껴진다. 촛불을 켜고 홀로 앉아 나라의 일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결론적으로, 내 무용에서 표현된 거북의 이미지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느리고 조용한 동물, 수명이 수세기 동안 이어지고, 그리고 많은 문화권에서 신성시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거북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춤을 만들었다. 나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고안
했을 때, 이러한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궁금하게 여겨본다. 거북이와 같이, 이순신 장군과 한국 역사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 시야에서 사라졌었지만 천천히 수면 위로 올라와 귀 기울이는 이들에게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